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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아굴의 기도
설교본문 잠 30:7-9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20-01-05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200105m.mp3

20200105m

잠 30:7-9

아굴의 기도


(잠 30:7-9, 개정) [7]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8]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성경에는 유명인의 기도가 많이 나옵니다. 광야에서 아말렉을 물리친 모세의 기도, 태양을 중천에 머물게 한 여호수아의 기도, 자신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한 히스기야의 기도, 하늘에서 불을 내렸던 엘리야의 갈멜산 기도 등이 있습니다. 아굴의 기도는 그런 기도들보다는 소박하고 현실적이고 단순합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은 아굴보다는 야베스의 기도를 더 선호합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역대상 4장 10절에 나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욥기에 나오는 ‘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말씀과 함께 한국교회 성도들이 가정마다, 사업장에 걸어두는 기도가 야베스의 기도입니다. 야베스의 기도 내용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모든 것이 다 잘 되기만 하는 것이 축복일까요? 만사형통이 우리에게 은혜와 덕이 될까요? 사업도 잘 되고, 돈도 잘 벌고, 건강한데도 방탕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날마다 사업이 잘 되는데 계속 하나님을 믿을 사람이 있을까요? 아굴의 기도에는 어디에도 구복적인 내용이 없습니다. 이 기도가 부나 성공, 형통과는 거리가 먼 매우 진솔하고 소박하고 정직한 기도여서 우리로서는 아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굴보다는 야베스의 기도를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굴의 기도야 말로 우리를 깊은 성찰에 이끄는 참으로 아름답고 정직하고,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우리도 이렇게 기도해야 할 우리의 인생 기도입니다. 


아굴은 솔로몬 시대의 현자요 랍비였습니다. 그는 솔로몬 왕 곁에서 국사를 조언하고, 백성에게 잠언을 가르치고, 예부터 전래되어 오던 잠언들을 편집한 학자였습니다. 잠언은 삶에 도움이 되는 경구입니다. 그는 대단히 경건했고, 인생을 깊이 관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굴의 기도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7절입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이것은 죽음이라는 엄숙한 숙명을 앞에 둔 사람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언제든 죽을 수 있는데,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나를 부르셔도 부끄럼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 위해 드리는 기도입니다. 아굴의 기도에는 죽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는 나이순입니다. 죽을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이순도 건강순, 재산순, 권력순, 미모나 인기순도 아닙니다. 죽을 때는 예외 없이 우리는 다 주님이 부르시는 순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주님의 부르심을 누가 과연 책임적으로 준비하며 사는가,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기 전의 신앙과 기도가 죽은 후의 영원한 삶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있을 때 잘 살고 잘 믿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굴의 기도야말로 우리에게 대단히 소중한 모범이고 귀감입니다. 무엇보다 죽음이라는 인생의 적나라한 진실, 엄숙한 사실을 전제한 기도이기에 그렇습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말입니다. 로마 군대가 승전하고 돌아올 때 개선 퍼레이드가 열리는데, 개선 장군의 전차에 노예 한 사람이 타서 장군이 개선 행진을 할 때, 장군 뒤에서 그가 외치는 말이 바로 메멘토 모리입니다. 이것은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우쭐대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당신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항상 겸손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로마의 오랜 예전이었습니다. 아굴의 기도는 메멘토 모리를 생각하게 하는 엄숙한 기도입니다. 


죽음을 전제한 아굴의 기도는 8절 상반절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아굴이 얼마나 정직합니까? 이스라엘의 현자인 자신이지만 그는 자기 입에 거짓말이 있음을 시인합니다. 여러분, 헛된 일과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좋고 선하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은 아닙니다. 악한 일이 더 많습니다. 자신은 절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사람은 자신의 장담 자체가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늘 헛된 일에 바쁘고, 거짓의 홍수 속에서 그야말로 거짓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날마다 거짓에 속고, 남을 속이며 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애굽에 갔을 때 자기 아내를 빼앗아 갈까봐 아내를 아내라 하지 않고 누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아내라고 하면 자기를 죽이고 뺏어 갈까봐 그랬던 겁니다. 다윗도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미친 사람 흉내를 내며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우리는 올해도 야베스의 기도보다 아굴의 기도가 훨씬 더 절실합니다. 거짓이 문화가 되고, 헛된 일이 일상이 된 세상을 살면서 그런 것들을 아예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주시고, 그런 것들로부터 멀어지게 해달라는 기도는 참으로 아름답고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기도입니다. 부디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일, 한 마디라도 진실을 말하기를 기도합시다.


다음으로 아굴은 ‘나를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마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먹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진심으로 이 기도를 나의 기도로 드릴 자신 있으십니까? 이 기도가 우리에게 용납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밤낮 기도하는 것이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잘 먹고 잘 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굴은 그렇게 기도하지 않고 일용할 양식만을 구합니다. 여기에 동의하실 수 있습니까? 아굴은 어째서 이렇게 기도했을까요? 


그는 이스라엘의 현자로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인간의 모순과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왜 부하게 마옵시고 라고 기도했을까요? 9절입니다.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아굴은 부자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라고 별 수 있습니까? 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돈 때문에 신앙을 충분히 버릴 수 있습니다. 물질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다 돈 때문에 신앙을 버립니다. 돈 앞에서는 장사가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목사들이, 교회들이 돈 때문에 영혼을 팔고 있는지 모릅니다. 9절 말씀 그대로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면서 여호와가 누구냐고 합니다. 배부른 사람 치고 기도하는 사람 봤습니까? 건강하고 사업 잘 되는 사람 치고 신앙생활 잘 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건강하면 여행 다니기 바쁘지 언제 주일을 지킵니까? 건강하고 돈 많으면 밤새 술 마시고 도박해야지 신앙생활 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기도원을 가 보십시오. 7,80프로의 사람들이 다 탕진하고 거덜 난 사람들입니다. 아굴이 섬겼던 천하의 솔로몬도 보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버려도 솔로몬 만큼은 절대 그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의 말년을 보십시오. 부요하고 평안해지니 그 역시도 밑바닥까지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향락에 빠지고, 우상에 빠지고, 전 세계 미녀들에게 빠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의 다음 대에 우리나라처럼 남북이 분단되게 하셨습니다. 아굴도 그런 솔로몬의 타락을 끝까지 다 지켜봤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은 절대 부자가 되게 하지 말라고 기도한 겁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부자가 되게 하지 말라는 기도가 가난하게 해달라는 기도는 아닙니다. 아굴은 가난하게도 만들지 말라고 기도했습니다. 부도 아니고 가난도 아닙니다. 사람은 부자여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지만, 가난해도 하나님께 욕을 보입니다. 9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사실 우리는 부해야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실은 가난해야 무엇을 먹어도 맛있습니다. 가족끼리도 소박하지만 그 가운데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난도 적당해야지 너무 가난하면 덕도 안 되고, 자칫 주님께 누가 될 수 있습니다. 속담에 3일 굶고 남의 집 담 넘지 않을 사람 없다고 했습니다. 잠언이 기록된 게 주전 950년경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의 말씀인데도 예나지금이나 사람은 똑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배부르면 배불러서, 배고프면 배고파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니 부하게도 가난하게도 말라는 아굴의 기도, 얼마나 인간의 한계와 모순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습니까? 아굴은 부하게도 가난하게도 말고 오직 필요한 양식을 달라고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보장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생활 할 때 그들에게 하나님은 일용할 만나를 공급하셨습니다. 아굴은 바로 그런 상황을 기도한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아갈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기도가 아굴의 기도입니다. 이것이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의 가장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올해도 세상은 계속 우리를 속이고 세뇌할 게 뻔합니다. 가난이 저주고, 일용할 양식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다다익선이 옳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행복을 보장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3000년 전의 현자 아굴은 우리가 머지않아 다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며 건강한 영혼으로 기도하며 살라고 합니다. 그것이 너희의 영원한 행복을 보장한다고 합니다. 부디 아굴의 기도가 우리에게 불편하거나 아쉬운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새해기도의 모범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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