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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새해는 이렇게 살라!
설교본문 벧전 4:7-8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12-31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1231.mp3

20191231 송구영신

벧전 4:7-8

새해는 이렇게 살라!


(벧전 4:7-8, 개정)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밤이 깊었다는 것은 새벽이 가깝다는 것을 뜻합니다. 새해를 맞았다는 것은 우리의 시간이 단축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종말론적 신앙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삽니다. 우리는 깨어 근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오늘이라도 오실 수 있다는 위기의식 가운데 영적으로 긴장하여 사는 것이 종말론적 신앙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종말론적 신앙이 대단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재림하실 것을 믿고 뜨거운 종말론적 신앙 가운데 살았습니다. 주님이 승천하시며 ‘내가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나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모두 자신들의 생전에 주님의 재림을 볼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정작 주님은 어느 시대의 성도들이나 다 긴박한 종말의식, 종말신앙으로 늘 깨어있게 하려고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주님의 말씀을 자기들 시대에 재림할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종말론적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승천 이후에도 주님의 행적을 서둘러 기록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가장 먼저 기록된 복음서가 주님의 승천 후 4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기록되었습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5-7장에 나오는 주님의 산상보훈을 누구나 실천할 수 있을까요? 오른 뺨을 치면 왼 뺨을 돌려대고,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도 주고, 원수를 갚지 말고 오히려 사랑하는 것 등인데 그것을 인정은 하지만, 누구도 그 말씀을 실천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실제 그 말씀을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들은 종말론적 신앙에 투철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늘이나 내일 다시 오신다는데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그들은 심지어 자기들의 재산도 팔아서 공동생활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도들이 그 헌금을 관리하며 구제하다가, 그 규모가 커지자 최초로 일곱 명의 집사(디아코노스)를 선출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집사의 본래 임무는 교인들의 헌금을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들은 주님이 오시면 곧 천국으로 갈텐데 재산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하면서 다 헌금했습니다. 


여러분, 종말신앙에 투철하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주님이 1년 뒤에 오신다고 하면 우리도 산상보훈 그대로 실천하며 살 수 있습니다.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을 우리가 절대 못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긴박한 종말의식, 종말론적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1년 후가 아니라 내일이라도 주님이 재림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은 도적처럼 오신다고 했습니다. 도적은 십년 후일 수도 있지만 오늘밤에도 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깨어 근신해야 합니다. 주님이 곧 오신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언제나 주님 맞을 채비를 하며 신앙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2020년 새해에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종말론적 긴장이고 위기의식입니다. 


새해 첫 시간 여러분께 소개한 본문도 베드로 사도의 종말론적 교훈입니다. 베드로는 먼저 정신을 차리라고 했습니다. 7절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요즘은 자연환경보다 사람의 정신이 훨씬 더 황폐해졌습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우리는 다 지금 제 정신이 아닙니다. 요즘은 정말 멀쩡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다 중증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어떤 사람은 권력에, 명예에, 도박에, 마약에, 술에 제 정신을 빼앗긴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문은 이런 우리 시대의 성도들을 향해 정신을 차리라고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불어넣어 주신 맑고 투명한 정신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야만 이 어지러운 마지막 때를 제대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에도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디 새해에는 정신을 차립시다. 군인정신이 해이해지면 얼차려를 실시합니다. 얼빠진 상태에서는 전쟁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주님이 주신 그 원초적인 본래의 정신을 반드시 회복합시다. 제 정신으로 살아갑시다. 그래야 주님이 오실 때 뛰어나가 주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모든 일을 삼가 조심하고, 그러한 삶 자체가 주님께 바치는 기도가 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너의 삶, 행위가 곧 주님께 바치는 기도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가장 치명적인 한계와 약점이 무엇일까요? 분열증입니다. 신앙과 삶의 분열, 기도와 노동의 분열 등입니다. 이러한 표리부동한 이원론이 우리 신앙의 가장 심각한 병입니다. 우리는 몸으로 믿어야 하는데 입으로만 믿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만 잘 믿고 바깥에 나가서는 믿지 못합니다.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것은 몸으로 믿으라는 뜻입니다. 개신교는 모든 직업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신성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천직 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모든 직업, 노동은 주님이 주신 소명입니다. 그래서 독일말로는 직업과 소명이 같은 단어(Beruf)입니다. 어떤 일이든 우리는 그것이 주님의 소명이라고 확신하고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 직업이 주님이 받으시는 합당한 기도가 됩니다. 우리는 언어로 하는 것만 기도로 생각합니다. 몸으로 노동으로 직업으로 기도하라는 것이 본문의 뜻입니다. 환경 미화원이 낙엽을 쓸고, 눈을 치우면서 짜증내기보다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한 모퉁이를 청소하게 하셨다는 소명의식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일 자체가 하나님께 바쳐지는 아름다운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새해에는 몸으로 믿고, 삶으로 기도합시다. 노동으로 직업으로 땀으로 호흡으로 기도합시다. 그렇게 근신하여 기도하는 여러분에게 주님이 크신 은혜를 베푸실 줄 믿습니다. 


다음은 열심으로써 사랑하라고 합니다(8절). 새해에는 사랑하며 삽시다. 본문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가 왜 서로 열심히 사랑해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하면, 나의 숱한 죄악이 내 사랑에 덮여서 하나님 눈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내가 이웃을 열심히 사랑하면 이웃의 허물이 내 눈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내 사랑에 덮여서 말입니다. 아무리 못난 이웃도 사랑과 기도의 대상이지 더는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누군가 미우십니까? 그것은 여러분에게 사랑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이 이웃을 사랑하면, 이웃의 모순이 다 은폐됩니다. 대지가 아무리 누추하고 남루해도 흰 눈이 내리면 온 천지가 순백의 세상이 됩니다. 이성간에도 서로 사랑하면 사랑에 눈이 멀어 상대의 흠이 안 보입니다. 노란 안경으로 세상을 보면 다 노랗습니다. 사랑의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사랑의 대상으로 보입니다. 새해에는 사랑의 안경을 끼고 삽시다. 가족도, 이웃도, 주님도 더 사랑하며 삽시다. 모든 죄와 허물이 그 사랑에 다 덮이는 은혜가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경자년 새해가 가장 복 있고 길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