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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다말의 도박
설교본문 마 1:1-6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12-22
설교오디오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1222m.mp3

20191222m

마 1:1-6a

다말의 도박


(마 1:1-6, 개정)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사람들은 성경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책이고, 유대교나 기독교의 경전이니까, 성경에는 오직 성스럽고 은혜로운 이야기만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거룩한 이야기뿐 아니라 인간사의 온갖 지저분한 이야기가 다 나옵니다. 성경은 그런 난잡한 이야기들을 미화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마치 고발하듯이 그런 것들을 그대로 소개합니다. 주님의 족보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훌륭하니까 당연히 주님의 조상들도 훌륭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주님의 족보의 특이한 점은 여성들이 등재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여러 명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족보에 나오는 여성들이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입니다. 이것은 파격입니다. 우리나라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들은 족보에 등재되지 못했습니다. 유대 사회도 전통적으로 완고한 가부장 사회였습니다. 지금도 중동 이슬람 국가들의 여성 인권이 보장되지 않듯이 옛 유대 사회가 그러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족보에 여성들의 이름이 오른 것은 당시 사회 통념상 매우 특이하고 예외적인 일입니다. 더구나 족보에 오른 여성들은 이방 여인이거나, 그들의 품행이 올바르지 못한 사람입니다. 라합은 창녀였고, 룻은 이방 여인이고, 우리야 아내 밧세바는 불륜녀였습니다만, 그들이 다 주님의 족보에 이름이 올라가서 주님의 조상이 되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특히 다말의 이야기는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3절 상반절입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유다는 야곱의 아들입니다. 유다와 다말은 부부지간이 아닙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관계입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이런 망측하고 패륜이 없습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와 관계해서 쌍둥이를 낳았고, 그 가운데 베레스의 계보에서 주님이 성탄하신 것입니다. 원래 유다는 엘, 오난, 셀라를 두었습니다. 장남 엘이 다말과 결혼해 자식을 못 보고 요절합니다. 형이 자식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 형의 대를 잇게 하는 게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시형제 혼례법입니다. 당시 근동지방에는 어느 나라나 이러한 관습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엘이 죽자 오난으로 하여금 형수와 결혼하게 합니다. 


그런데 정작 오난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비록 전통과 율법을 거역할 수 없어 형수와 결혼은 했지만, 그는 자기의 씨로 낳은 자식이면 자기 아들이지 왜 형의 아들이 되어야 하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내 아들이 자기를 왜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삼촌으로 부르냐는 겁니다. 오난은 체외 사정을 합니다. 창세기 38장 9절입니다.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하나님은 그를 징계하여 오난마저도 요절하고 맙니다. 다말은 두 번째 남편마저도 허무하게 잃고 가장 박복한 여인이 되고 맙니다. 

 

시아버지 유다도 며느리 한 사람 잘못 들어와 가문이 거덜 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다가 막내까지도 잃고 가문의 대가 끊길지 모른다고 생각해 다말을 친정으로 보냅니다. 창세기 38장 11절입니다.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다말은 너무너무 슬펐습니다. 다말은 시집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말이 시아버지 유다 앞에서 애걸복걸하지만, 유다는 단호하고 강경했습니다. 막내가 성인이 되면 다시 너를 부르겠다고 합니다. 결국 다말은 친정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시아버지가 자기를 불러주지 않습니다. 그 사이 시아버지 유다도 아내를 잃고 홀아비로 살아가고 있었고, 막내 셀라도 성인이 되었지만, 다말을 불러주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다말이 시아버지가 양털 깎는 일로 친정과 가까운 딤나에 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다말은 계략 한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사실 그것은 모험이라기보다는 목숨을 건 도박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그런데도 다말은 기상천외한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그녀는 진하게 화장하고, 과부 복장을 벗고 화려한 옷을 입고, 성문에 나아가 요염한 자태로 시아버지가 그 길을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시아버지 유다가 성문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다말을 창녀로 알고 접근해 수작을 걸었습니다. 창세기 38장 16절 이하입니다. “[16]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17]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18]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다말의 전략은 치밀했고 적중했습니다. 화대로 염소 새끼를 받기로 하고, 일단 유다의 끈과 지팡이와 도장을 담보물로 잡은 다음 시아버지와 관계합니다. 이튿날 염소 새끼를 데려와 담보물을 찾으려 하지만, 다말은 사라지고 맙니다.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났을 때 시아버지 유다가 친정에 간 다말이 임신했다는 겁니다. 유다가 사람을 보내 며느리의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당장 그녀를 데려와 율법에 따라 화형에 처하라고 합니다. 다말이 시아버지 유다 앞에 끌려와 심문을 당하는데, 이렇게 진술합니다. 과부가 수절하지 못하고 임신한 것은 사실이니 어떤 처벌이든 달게 받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아버지의 담보물의 주인을 찾아달라고 그것을 내놓습니다. 순간 유다가 경악을 하며 두 손을 들고 맙니다. 네가 옳았다고 합니다. 막내 셀라를 주지 않자, 이렇게 해서라도 가문의 대를 이으려고 했음을 인정합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이 사건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윤리적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패륜의 극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이 주님의 조상으로서 주님의 족보에 등재되고, 그녀와 시아버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베레스가 다윗의 10대조가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옳을까요?


다말이 이렇게까지 모험하고 도박하고, 패륜을 불사한 이유는 그녀가 아브라함의 복이 유다의 가문에 이어지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필사적으로 그 가문에 남아 있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아버지를 직접 공략하기에까지 이른 겁니다. 당시 다말로서는 후사도 얻고, 유다 가문에 남을 수 있는 길은 그 길 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시할아버지 야곱의 경우와도 같습니다. 야곱도 원래는 차남이었기에 하나님의 장자의 복을 승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초유의 반칙을 범합니다. 그는 형을 등치고, 아버지를 기만해서 형의 장자권을 훔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십니다. 구원의 계보에 서고 하나님의 복을 승계하는 일에 죽을지도 모를 모험을 기어이 결행하는 믿음을 높이 사셨기 때문입니다. 다말도 마찬가집니다. 그것이 계명을 범하는 일이고, 화형을 당할 일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가계에 남을 수 있는 길이라면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달려들 때, 하나님이 거기에 승복하셨습니다. 다말은 그런 비상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다말의 모험과 도박은 시아버지 유다에 대한 인간적 보복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시조부 야곱 못지않은 치명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녀의 부도적이나 불륜, 패륜보다 그녀의 죽음을 불사하는 믿음에 더 많은 점수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유사 이래 처음으로 여성이 족보에 오르게 하시고, 주님의 조상이 되는 영예를 얻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야곱의 이야기나 야곱의 손자 며느리 다말의 이야기가 정당화 될 수 있을까요? 헌금하려고 강도짓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다말 사건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교훈은 우리가 메시아 족보에 우리 이름을 등재하는 일은 절대적인 가치이기에 그것이 불륜, 천륜을 어기는 것이라 해도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기어이 쟁취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어 불륜의 자식을 낳는 한이 있어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절대적 선택이요 결단이라는 것입니다. 다말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구원의 가계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성탄의 계절에 여성으로서 최초로 메시아의 계보에 이름을 올린 다말의 가공할 믿음을 다시 한번 깊이 사색합시다. 목숨을 걸고 도박한 다말의 비상한 선택과 결단을 마음에 깊이 새깁시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뿐 아니라 다말, 라합, 룻, 우리아의 아내 이름도 예수님의 족보에 올랐음에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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