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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대강절 모범
설교본문 눅 2:25-38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12-15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1215m.mp3

20191215m

2:25-38

 

(2:25-38, 개정)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오늘이 벌써 대강절 셋째 주일입니다. 왜 대강절이 중요할까요? 대강절 없는 성탄절은 없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대강절이 없는 사람에게는 성탄절이 없습니다. 주님은 올해도 반드시 새롭게 성탄하십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오시는 것은 아니고 반드시 기다리고 준비하는 자들에게 오십니다. 경건하게 대강절을 지키는 자들에게만 새로운 감격으로 성탄하십니다. 대강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성탄절을 그저 2000년 전 주님의 탄생을 회고하는 축제로 지킬 뿐이지만, 대강절을 지키며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과거를 반추하는 기념일이 아닌 성탄을 올해도 실존적으로, 현재적 사건으로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의 주제입니다.

 

본문은 2000년 전 첫 성탄 때 가장 모범적으로 대강절을 지킴으로써 가장 감격적으로 주님의 성탄을 체험한 두 사람이 소개됩니다. 이들은 오고 오는 세대에게 훌륭한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므온과 안나입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역사적인 성탄 드라마에서 큰 비중은 아닙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주연급입니다. 목자들과 동방박사 같은 사람들은 조연급입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그저 단역 쯤 됩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주님과의 만남은 극적이고 아름답고 모범적입니다. 올해도 우리가 맞이 할 성탄이 이들처럼 아름답고 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의 대강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은 무서운 집념으로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고 대망했습니다. 시므온을 보십시오. 25절입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이것은 메시야, 그리스도를 기다렸다는 뜻입니다. 메시야가 이스라엘의 미래요 구원입니다. 26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시므온은 죽음마저 유보한 채 주님 뵙기를 기다린 사람입니다. 실향민은 대다수가 고향 땅을 밟기 전에는 죽지 못한다고 합니다. 집 나간 자식 돌아오기 전에는 눈 못 감는다는 노모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29절을 보면 주님을 만났으니 여한이 없다고 합니다. 얼마나 무서운 사람입니까? 죽음마저도 미뤄가며 주님 뵙기를 대망하다가 기어이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나서는 이제 데려가 달라고 합니다.

 

안나는 인간적으로 보면 불행했습니다. 36절 이하를 보면 결혼한 지 7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84세가 되도록 오직 메시야의 성탄만을 기다린 사람입니다. 안나 또한 시므온 못지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의 기대와 바람을 무참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기어이 생전에 성탄을 맞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올해도 준비하며 기다리는 자들로 하여금 성탄하신 주님을 안고 기뻐하게 하십니다. 성탄하신 아기 예수를 품에 안는 감격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들은 철저히 성전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27절 이하입니다.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시므온과 안나의 주님과의 만남이 다른 곳이 아닌 성전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주목합시다. 자기 집 안방이 아닙니다. 캐롤이 울려퍼지는 저 거리가 아닙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이 요란한 백화점이 아닙니다. 그들이 늘 금식하고 기도하며 기다리던 성전에서 주님을 품에 안았습니다(37). 우리도 성전을 우리 삶의 구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집착이나, 이슬람 교도들의 메카에 대한 집착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성전과 신앙, 성전과 경건 사이의 깊은 함수 관계 때문입니다. 요즘 그리스도인은 교회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나와 교회와의 거리가 그대로 주님과의 거리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지금 나와 교회와의 관계가 주님과의 관계를 반영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교회의 머리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리 믿음만큼만 교회와 관계합니다. 나의 교회생활 지수와 신앙생활 지수는 정비례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밤낮 세상을 중심으로 삽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교회를 중심으로 사는 게 옳습니다. 여러분, 늘 성전에서 기도하고 금식하고 섬기며 주의 성탄을 기다린 시므온과 안나가 바로 그 성전에서 성탄하신 주님을 뵙고 품에 안았던 것처럼 여러분도 올해 교회에서 성탄하신 주님을 뵙고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는 복된 체험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늘 성령의 감동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것 또한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때는 아직 오순절 성령강림 이전입니다. 본격적인 성령의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입니다. 그런데도 보십시오. 25절과 26절 하반절과 27절 상반절을 보면, 모두 성령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성령의 계시와 감동과 인도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이 그 위에 계시고, 지시를 받고, 순간마다 성령의 감동을 체험한 사람 시므온과 안나는 마침내 주님을 품에 안았습니다. 시력이 좋다고 사물을 보는 게 아닙니다. 빛의 조명이 없으면 우리는 눈 뜬 장님입니다. 원리가 같습니다. 성령의 조명과 인도가 필수입니다. 우리의 눈이 아무리 좋아도 성령의 조명이 없으면 영적인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성령의 조명과 감동이 없다면 시므온과 안나가 그 아기가 메시야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만, 시골 부부가 데려온 아기가 메시야임을 그 두 사람만 알아보았습니다. 오직 그 두 사람만이 성령이 주신 영감으로 주님을 알아보고 품에 안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적으로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만나게 하십니다.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알아보게 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주님을 품에 안게 하십니다.

 

이제 아기를 안은 시므온의 입에서 저절로 찬송이 터져나옵니다. 32절입니다.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이 얼마나 간명합니까? 주님은 올해도 이 어두운 세상에는 빛으로 오시고, 믿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무한한 영광과 기쁨으로 오십니다. 부디 성령 충만하셔서 올해도 빛으로 영광으로 오실 주님을 꼭 만납시다. 반드시 주님의 성탄을 온 몸으로 체험합시다. 여러분의 가정마다 성탄의 빛과 영광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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