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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사회개혁 교회개혁
설교본문 막 1:14-15, 요 2:13-19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10-27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727m.mp3

20191027m

막 1:14-15, 요 2:13-19

사회개혁 교회개혁


(막 1:14-15, 개정)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요 2:13-19, 개정)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오늘이 종교개혁 502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이것은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 정문에 가톨릭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을 고발하는 95개조의 항의문을 게시한 날이, 1517년 10월 31일이기에 1517년을 기준으로 하면 이번이 502주년입니다. 사실은 1517년의 루터가 아니라, 2,000년 전에 주님이 개혁의 진정한 원조이셨습니다. 더구나 주님은 종교개혁만이 아니라 사회개혁의 원조이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요즘 주님을 개혁가나 혁명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주님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성화에 나오는 모습입니다. 한없이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이 주님의 이미지입니다. 요점처럼 피켓을 들고 종교개혁, 사회개혁, 검찰개혁, 사법개혁 등을 외치며 거리에서 시위하는 사람의 모습으로는 주님의 모습이 연상되지 않습니다. 어쨌든 주님이 개혁의 원조이십니다. 주님으로부터 사회개혁과 종교개혁이 촉발되었습니다. 


주님이 공생애를 31세 되던 해에 비로소 시작하셨습니다. 그 구체적 시점은 이렇습니다. 마가복음 1장 14절입니다. 이 본문이 중요한 것은, 주님이 30년간의 사생활을 청산하시고 3년간의 공생애를 시작하게 된 동기와 시점, 구체적 장소를 특정하기 때문입니다. “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세례요한이 당국에 체포된 사건이 주님의 공생애의 직접적 계기와 시점, 장소를 특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공생애를 시작한 주님의 첫 마디가 15절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면 한반도, 일본 열도, 중국 대륙 같은 지리적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죽어서 가는 저 세상, 천당, 천국, 내세 등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바실레이아 투 데우)는 영토가 아닌 주권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지배, 정치가 주님이 외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고, 주님의 주권이 관철되는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굳이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어도 어디서든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실현되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야 죽어서 천국에 갑니다.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벽하게 이룩된 세계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이미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가정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지배 아래 있으면 우리 가정에 하나님이 임하신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된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 하나님의 주권이 관철되고 있다면, 우리 교회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늘 주님의 통치를 받고 살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례요한이 왜 헤롯에게 왜 잡혀갔습니까? 세례요한이 헤롯의 폭정을 성토했기에, 일명 내란선동죄로 잡혀갔습니다. 세례요한이 잡힌 직후에 여전히 공안정국인데 주님이 사건현장인 갈릴리로 직행하여 공생애의 첫 발을 내딛으며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주권을 외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도발적입니까. 세례요한이 붙잡히자마자 예수님이 헤롯의 주권이 난무하는 곳에 가셔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신 것이 얼마나 혁명적입니까. 주님은 당시 정권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공생애 시작 당시의 모습니다. 주님의 모습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개혁적입니까. 


당시 주님이 외치신 하나님의 나라, 주권, 정치, 통치가 관철되는 세계란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일까요? 그곳은 무엇보다 공의로운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품성으로 우리가 공의를 꼽습니다. 하나님은 공평무사한 분입니다. 공명정대한 분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계는 절대적으로 공의롭습니다. 우리 사회에 개혁이 절실한 이유, 우리 사회에 하나님의 나라를 외쳐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공의롭지 못합니다. 어제만 해도 거리와 광장 집회에 시민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번 우리나라의 소위 조국 사태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진영 싸움입니까? 우리 사회가 여전히 불공정하고, 특권과 반칙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불쾌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면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공정, 공평해집니다. 공의로운 하나님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정의가 그야말로 강처럼 흐르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도 악한 세상 권력이 횡행하는 시대를 향해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를 선포하시며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사회개혁, 정치개혁의 원조가 주님 맞지 않습니까. 주님은 헤롯의 권력에 맞서 하나님의 통치를 외치셨습니다. 


주님의 그다음 행보는 요한복음 2장에 나옵니다. 13절 이하입니다.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주님의 공생애 첫 사역인 갈릴리에서 하나님의 주권 선포가 사회개혁, 국가권력에 대한 개혁을 의미했다면, 예루살렘에서의 개혁은 종교개혁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주님이 유대교의 심장인 예루살렘 성전에서 거의 폭력적으로 성전 정화작업을 하신 사건입니다. 이 이야기는 네 복음서에 다 나옵니다. 그만큼 이 사건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예루살렘 성전이 시장이 된 걸 보신 주님이 장사꾼의 상을 둘러엎으시고, 다 몰아내시며 ‘네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더 신랄하게,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젊은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내고 지지한 반면에, 소위 성전 주인을 자처한 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은 이를 갈며 네가 무슨 자격으로 이런 짓을 행하느냐며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당시 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주님의 행동은 그야말로 난동이었습니다. 성전 관리자가 따로 있는데, 갑자기 시골뜨기가 등장해 순식간에 성전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으니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겠습니까.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려면 제물이 필요하고, 순례객들을 위해서도 제물이 필요했고, 외국 돈을 유대 돈으로 환전도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제물 판매와 환전소를 필요에 의해 만든 것입니다. 하나도 문제될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너희가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었다고 하십니다. 만인이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강도들이었습니다. 순례객들이 외부에서 제물을 준비해오면 무조건 퇴짜를 놓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제사장들이 공인한 성전 뜰에서 파는 양이나 비둘기를 사게 했습니다. 예배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성전 뜰에서 파는 비싼 짐승을 사야했습니다. 환전도 마찬가집니다. 외국 돈으로는 성전세를 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만들어 놓고, 유대 돈 세겔로 환전할 때 터무니없는 환율을 적용한 것입니다. 환전소의 사람들은 모두 제사장과 서기관, 장로들의 관리 아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사람들은 눈 뜨고 그냥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소리 지르고 채찍을 휘두르며 예배하는 곳을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가들의 분노도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당시 가톨릭 교회가 베드로 성당을 짓다가 자금이 부족하자 면죄부를 팔기 시작합니다. 면죄부는 그야말로 부적이었습니다. 그걸 사는만큼 지은 죄가 사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특히 생전에 공적이 없어 연옥에 대기중인 부모나 조상들에게 즉각적으로 그 효험이 미쳐서 헌금함에 돈이 떨어지는 순간 그 영혼이 천국으로 간다는 논리였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 면죄부를 사면 그 사람은 연옥을 거치지 않고 천국에 간다고 홍보했습니다. 교회가 대대적으로 장사하는 집, 완벽한 강도의 소굴이 된 것입니다. 


당시 루터는 수도사요 신부요, 비텐베르크 대학의 철학과 성서신학 교수였습니다. 루터는 하루하루가 괴로웠습니다. 교수로서 성서를 연구하면 할수록, 성경의 가르침과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이 생판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주 갈등하고 회의에 빠졌는데, 때마침 면죄부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루터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교회 문에 95개조의 항의문을 게시했는데, 그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시발이 된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어떻습니까? 이 시대 한국 교회에는 주님 시대처럼 성전의 시장화는 없습니까? 중세 가톨릭은 면죄부 장사를 했는데, 한국 교회는 그런 일 없습니까? 한국 교회치고 강도의 소굴 아닌 곳이 있을까요? 주님이 한국 교회를 찾아오신다면 어떻게 하실까요? 저는 주님이 틀림없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신 일을 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대형교회치고 멀쩡한 곳이 있습니까? 날마다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으며 온갖 비난과 원색적인 욕을 듣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90% 이상 다 돈 때문입니다. 교회가 강도의 소굴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교회가 장사하는 집으로 전락해서 그렇습니다. 


주님의 개혁사상은 교회, 종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교회만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온 세상, 온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이 관철되어야 합니다. 세상도 정치도 문화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개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가 무시되는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공의가 관철되게 하는 투쟁입니다. 개혁의 진정한 주체가 개혁의 원조이신 주님의 분신들인 우리입니다. 종교개혁기념주일에 다시 한번 그 사실에 대한 깊은 자각과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