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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기도의 등불을 밝히라
설교본문 레 24:1-4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10-13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1013m.mp3

20191013m

레 24:1-4

기도의 등불을 밝히라!


(레 24:1-4, 개정)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 [3] 아론은 회막안 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4] 그는 여호와 앞에서 순결한 등잔대 위의 등잔들을 항상 정리할지니라



3절에 나오는 회막은 성막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광야생활을 할 때 사용했던 이동식 성전이었습니다. 이것은 텐트식 간이 성전이었습니다. 광야생활은 한 장소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이동했기에 언제 어디서나 쉽게 설치하고 쉽게 철거할 수 있는 간이 성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회막에 대한 구체적인 계시를 주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설계대로 회막을 만들어 레위 지파에게 그 성막을 관리하게 했습니다. 이동할 때는 여섯 대의 수레에 실어 운반하도록 했습니다. 이후 가나안에서는 붙박이 성전인 예루살렘 성전이 됩니다. 회막은 예루살렘 성전의 전신이었습니다. 회막이나 성전이나 기본적인 기물은 같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멈추면 어디서든 그곳 제일 중앙에 회막부터 설치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면 회막부터 철거해 여섯 대의 수레에 실었습니다. 이동할 때도 회막을 실은 수레가 가장 중앙에 서고, 그 앞뒤로 여섯 지파씩 위치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회막이나 성전이 이스라엘의 구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회막/성전이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할까요? 성막이나 성전에는 지성소가 있습니다. 그 지성소에는 하나님이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습니다. 3절에도 증거궤라는 말이 나옵니다. 지성소 안에는 증거궤, 곧 법궤가 놓여 있습니다. 언제나 성막을 내 삶의 중심에 둔다는 것은 하나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전이 내 삶의 가장자리로 밀려나서는 안 되고 언제나 내 행보의 구심점이 되어야 하는 필연의 이유입니다. 옛 유럽의 도시들뿐만 아니라 시골 작은 마을에는 그 중앙에 교회가 있습니다. 뮌헨, 쾰른, 하이델베르크 등 어떤 도시나 마을에도 교회가 그 도시와 마을의 중앙에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경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중심에 성막을 두었습니다. 성전 안 지성소에 여호와가 계시는 증거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자신의 삶 한복판에 회막을 두어야 합니다. 교회를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 삶의 모든 행보가 회막,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내 삶이 든든하고 건강하고 복됩니다. 회막을 중심으로 산다는 것은 결국 지성소를 내 중심에 두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 산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 때 내 생애가 복됩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려는 것은 그 회막의 기물들 가운데 등불입니다. 회막의 구조는 막으로 쳐진 바깥뜰이 있고, 거기에 번제단이 있습니다. 번제단을 지나 실내 공간인 성소로 들어가면 물두멍이 나옵니다. 제사장이 성소로 들어가려면 물대야에서 깨끗이 씻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성소로 들어가면 그 앞에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이 쳐져있습니다. 그 휘장 앞, 우측에는 떡상이 놓여 있습니다. 떡상 맞은편, 성소 좌측에는 등잔이 놓여 있습니다. 왜 성소 휘장 앞에 등잔이 놓여 있을까요? 그것은 조명이 아니라 성도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성소의 등잔불은 곧 기도의 등불입니다. 


성소의 등잔대에 관해 상세하게 말씀하는 출애굽기 37장 17절 이하입니다. “[17] 그가 또 순금으로 등잔대를 만들되 그것을 쳐서 만들었으니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이 그것과 한 덩이로 되었고 [18] 가지 여섯이 그 곁에서 나왔으니 곧 등잔대의 세 가지는 저쪽으로 나왔고 등잔대의 세 가지는 이쪽으로 나왔으며 [19] 이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고 저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어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이 그러하며 [20] 등잔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고 [21]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위하여는 꽃받침이 있게 하였으되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였고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였고 또 다시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되게 하였으니 [22] 이 꽃받침과 가지들을 줄기와 연결하여 전부를 순금으로 쳐서 만들었으며 [23] 등잔 일곱과 그 불 집게와 불 똥 그릇을 순금으로 만들었으니 [24]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는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었더라 [25] 그가 또 조각목으로 분향할 제단을 만들었으니 길이는 한 규빗이요 너비도 한 규빗이라 네모가 반듯하고 높이는 두 규빗이며 그 뿔들이 제단과 연결되었으며” 


등잔대를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고, 가운데 줄기에서 좌우로 세 가지를 만들어 그 꽃에 받침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성소의 등잔대는 살구나무를 형상화한 것이고, 등잔대의 꽃은 살구꽃을 형상화했습니다. 왜 살구나무일까요? 히브리어로 살구는 <샤케드>입니다. 이 말은 깨우다라는 뜻의 동사와 그 발음이 같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깨우는 방편이 기도라는 것을 계시하기 위해서 굳이 깨우다는 동사와 같은 발음인 살구나무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등잔 가지와 등잔이 일곱 개인 이유는 성소에는 성도의 기도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7은 언제나 가득 찬 수입니다. 


성도의 기도를 상징하는 등잔을 어떻게 관리해야 합니까? 등잔은 순결한 감람유, 곧 올리브유로 밝혀야 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 성경에 나오는 감람나무는 언제나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란 성도가 자신의 가장 순결한 기름을 짜서 주님께 바치는 행위입니다. 기도는 아무 기름이나 등잔에 붓고 불만 붙이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가장 순결한 언어, 눈물, 영혼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요즘도 기름도 가짜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도만큼은 내 속 깊은 곳에서 퍼 올린 가장 순결한 것을 바쳐야 합니다. 형식이나 외식은 안 됩니다. 자신의 가장 순결한 것으로 등불을 밝히는 행위가 기도입니다. 그런 순결한 기름을 얻으려면 자신을 찧어야 합니다. 순결한 기름은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을 으깨는 아픔과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좀처럼 자신을 찧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해도 희생이나 양보 없이 공짜로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왜 새벽기도를 잘 못할까요? 새벽기도를 하려면 당장 포기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새벽기도를 하려면 일찍 자야 하니까, TV 못보고 야식 못 먹고 무조건 일찍 자야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 자체가 끔찍합니다. 새벽기도 후에는 한숨 자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날 오전을 다 허비하게 됩니다. 안 자고 버텨도 하루 종일 몽롱합니다. 이렇게 새벽기도 하나도 뭔가를 양보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기도란 원래 그렇게 손해를 감수하고 고생을 하고 자기를 으깨는 아픔을 얼마간 감수하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반드시 자신을 으깨는 결단을 하는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성소의 등불은 절대 꺼지면 안 됩니다. 2절 하반절입니다.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 이것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성소에는 성도의 기도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소의 등잔대는 살구나무를 닮은 가지가 가운데에 있고, 양쪽으로 각각 세 개씩 나와 일곱가지가 있습니다. 거기에 일곱 개의 살구꽃 모양의 등잔이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일주일 내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쉼 없이 기도의 등불을 밝히라는 뜻입니다. 성소의 등불을 끄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쉬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자신의 가장 순결한 기름을 짜서 등불을 밝히는 것이기에 기도를 쉬면 불 꺼진 성소가 됩니다. 내 심령이 캄캄해집니다. 내 가정, 교회, 사회가 캄캄해집니다. 반대로 아무리 어두워도 기도의 등불을 켜면 어둠이 달아납니다.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고, 희망이 보입니다. 기도는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기도의 등불을 끄지 맙시다. 자신의 기도의 등불이 꺼져있다면 어서 다시 점화합시다. 디오게네스는 세상이 어둡다며 항상 등불을 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실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그래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의 등불을 켜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 가정, 교회, 사회도 늘 밝은 빛과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은 항상 등잔불을 정리해야 합니다. 3절입니다. “아론은 회막안 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4절도 보십시오. “그는 여호와 앞에서 순결한 등잔대 위의 등잔들을 항상 정리할지니라” 성소의 등잔불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정리 작업입니다. 등잔불을 저녁부터 아침까지 밤낮으로 정리하라는 것은 부단히 자기의 기도 자세를 확인하고 점검하라는 뜻입니다. 기도는 조금만 늦춰도 집중력이 흐트러집니다. 그러므로 자기 관리와 감시에 소홀하지 않아야 기도생활에 성공합니다. 마치 성소의 등잔불을 살피며 늘 깨끗이 하고 기름 상태를 확인하고, 심지도 돋우듯이 절대 기도가 꺼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자기의 기도생활도 늘 점검해서 꺼지지 않도록 관리하라는 겁니다. 


마귀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어떻게든 방해합니다. 성령은 그 반대로 기도하도록 이끄십니다. 마귀는 가족을 이용하기도 하고, 기도한다 해도 졸게 만들고, 기도 자체에 회의가 생기도록 방해합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 기도를 점검하지 않으면 성공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기도의 등불을 확인합시다. 기름 상태, 심지 상태 등을 다시 점검합시다. 새롭게 결단합시다. 내일 새벽부터 4주간 특별 새벽기도회가 열립니다. 우리의 기도 등불, 불씨를 꼭 되살립시다. 그래야 우리가 살고, 희망의 내일이 보장됩니다. 기도의 계절인 가을에 모두가 기도의 등불을 환하게 밝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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