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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가을 패션
설교본문 롬 13:12-14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10-06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1006m.mp3

20191006m

롬 13:12-14


(롬 13:12-14, 개정)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날이 점점 더 추워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옷도 바뀌고 있습니다. 본문도 옷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의식주라고 합니다. 먹고 거주하는 것보다 옷을 먼저 꼽습니다. 아마 전통적인 체면 문화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옷 잘 입는 나라도 흔치 않습니다. 패션의 나라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가봐도 우리나라보다 좋고 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모두 수수하게 입습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옷에 대한 관심은 그런 데 있지 않다고 합니다. 12절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4절 상반절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우리의 올 가을 패션은 바로 <빛의 갑옷>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빛의 갑옷,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본문의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빛의 자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라는 말입니다. 옷은 그 사람의 신분 등을 나타냅니다. 기모노를 입으면 일본 사람이고, 한복은 한국 사람입니다. 이슬람은 어디서나 자기들의 전통 복장을 고집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보면 그가 이슬람 문화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빛의 갑옷인 그리스도로 옷 입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주일 아침에 교회 나올 때만 빛의 갑옷을 꺼내 입고 옵니다. 언제 어디서나 빛의 갑옷,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 빛의 갑옷을 입고 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분명히 하라는 주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2절에서 바울은 지금 밤이 깊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 교회가 직면해 있던 박해 상황을 뜻합니다. 네로가 로마에 불을 지르고 그 화재 주범을 그리스도인으로 지목합니다. 이후 엄청난 박해 상황이 벌어집니다. 어떤 이는 카타콤으로 들어가고, 어떤 이는 배교하고, 어떤 이는 익명의 신자로 살았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입니다. 드러내놓고 믿으면 콜로세움으로 끌려가거나 십자가에 달려 화형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밤이 깊다, 어둠이 짙다는 것은 그만큼 새벽이 가깝다는 뜻이니까 비겁하고 비굴하게 어둠에 숨어서 믿거나 타협하거나 동화되지 말고 빛의 갑옷을 입고 당당하고 담대하게 살라고 합니다. 잠수 탄다는 말이 있지요. 아무 소식도 연락도 없이, 휴대폰도 끈 채 실종된 사람처럼 지내는 걸 잠수 탔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 가운데도 잠수 타는 신자가 많습니다. 소위 가나안 신자들이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가 문제가 많고 손가락질 당하니 자기가 신자라는 사실이 하나도 자랑스럽지 않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래서 아예 교회에 발을 끊고 익명의 신자, 잠수 탄 신자가 됩니다. 바울은 절대 그렇게 믿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비굴한 신자가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비록 시대가 절망스럽고 어둡고 깊은 밤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더 빛의 갑옷과 그리스도로 옷 입고 당당하고 용감하게 살아가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빛의 갑옷을 입으라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라는 뜻입니다. 옷은 그 사람의 정서와 교양을 표현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요즘은 교회나 신자의 품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극단적으로 혐오하기도 합니다. 신자나 교회가 자초한 측면이 많지만 어쨌든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개독교가 된 시대 말입니다. 안데르센 동화에 벌거벗은 임금님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옷을 입어야 할 임금님이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시가지를 행진합니다. 이 이야기가 절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그리스도인이면 당연히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빛의 아들이면 당연히 빛의 갑옷을 입어야 빛이 나고 품위가 있는데, 우리는 벌거벗은 신자, 벌거벗은 목사뿐입니다. 기독교 자체가 벌거벗었습니다. 가장 품위 있고 세련된 옷을 입고 있어야 할 기독교가 벌거벗고 있습니다. 요즘 부쩍 많이 들리는 이야기 가운데 빤스 목사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 교회를 비웃고 벌거벗은 목사, 벌거벗은 신자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반드시 이 가을에 그리스도로 옷 입고, 빛의 갑옷으로 코디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이 시대 그리스도인의 숨김없는 민낯이라면, 이제 빛의 갑옷과 그리스도로 옷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면하고, 그리스도인의 품위와 격조를 드러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처럼 고상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 본래의 품위를 과시하자는 겁니다. 


바울은 본문 13절에서 그리스도로 옷 입은 품위 있는 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단정한 삶을 말합니다. 올 가을에는 그리스도,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그래서 벌거벗은 신자, 벌거벗은 목사 말고, 어둠에서 비루하게 사는 어둠의 자식말고, 그리스도로 코디한 격조 있는 삶을 삽시다.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말씀은 그리스도를 내 삶의 절대적 보호자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옷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몸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름에는 얇은 옷을, 가을에는 따뜻한 옷을, 겨울에는 더 두꺼운 옷을 입습니다. 옷이 몸을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인류 최초의 옷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스스로 무화과나무 잎사귀를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은 것입니다. 그게 금방 말라버리니까 하나님은 가죽으로 옷을 입히십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만든 옷은 무화과나무 잎사귀 옷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하나님이 지어주신 가죽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몸과 영혼이 보호를 받습니다. 사람이 만든 옷은 아무리 멋져 보여도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치마에 불과합니다. 내가 모으고 쌓아 올린 권세나 지위, 재물은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엮은 치마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내 안녕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마련해주신 가죽 옷인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안전하고 가을도 추운 겨울도 건강하게 날 수 있습니다. 그것만이 우리 영혼이 항구적인 안녕을 보장받는 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여전히 빛의 갑옷, 그리스도로 옷 입지 않고 날마다 어둠이나 내가 만든 옷을 고집할까요? 결국은 불신앙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 입어봐야 불편하고 방해만 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실제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어둠의 옷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려면 반드시 어둠의 옷을 과감히 벗어 던져야 합니다. 따뜻한 빛의 갑옷,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삶이 따뜻하고 아름다워집니다. 품위 있고 격조 있는 삶이 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고, 빛의 갑옷을 입어 새로워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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