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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호세아와 고멜
설교본문 호 1:1-9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9-15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915m.mp3

20190915m

호 1:1-9

호세아와 고멜


(호 1:1-9, 개정) [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3]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6]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구약성경 39권 가운데 선지자들의 행적과 예언을 기록한 책을 선지서로 분류합니다. 선지서가 16권입니다. 이사야에서 말라기까지가 16권입니다. 선지서 16권을 대선지서와 소선지서로 구분합니다. 대선지서는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에스겔을 말합니다. 나머지는 소선지서입니다. 호세아부터 말라기까지입니다. 대선지서와 소선지서를 구분한 기준은 선지자들의 능력이나 영성의 차이가 아니라 예언한 분량의 크고 작음입니다. 책의 두께 차이로 나눈 것입니다. 호세아는 전체가 14장입니다. 


본문의 주인공은 호세아입니다. 호세아의 뜻은 <구원>입니다. 호세아를 그리스어로 표기하면 <예수>입니다. 호세아는 이름이 주님과 같은 선지자였습니다. 이것이 우연일까요? 아니면 계시일까요? 둘은 이름만 같았을까요? 


원래 호세아 선지자는 우리나라처럼 남북으로 분단된 이스라엘의 북왕국 출신이었습니다. 그의 활동무대도 북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본문 1절을 보면 여러 명의 왕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모두 남왕국 유다의 왕들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왕은 단 한 사람 여로보암이 나옵니다. 호세아가 활동하던 시대에 북이스라엘의 왕이 여로보암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그런데 호세아 1장 1절은 남왕국 유다의 왕들을 거명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출신이지만 다윗의 정통, 이스라엘의 정통은 어디까지나 남왕국 유다에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맹목적 소속감이나 편견, 지역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신앙의 정체성이 계승되기를 바랐던 강직한 선지자였습니다. 호세아 4장 15절입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음행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지 말지어다” 그는 이렇게 말할 정도로 다윗의 전통과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하는 남왕국에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주님도 남왕국 유다 지파를 통해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1절 하반절에서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만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로보암을 제외하고는 모두 쿠데타로 집권한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는 이런 인물입니다. 얼마나 강직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도덕적인 인물에게 하나님이 어느 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선지자더러 음란한 여자와 결혼해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고 합니다. 레위기 21장 11절 이하를 보면 선지자는 자기 백성 중 순결한 처녀를 취해 아내를 삼아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율법인데, 호세아의 경우는 참으로 곤혹스런 명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시는 BC 8세기입니다. 그 때는 선지자 전성기였습니다. 아모스, 예레미야, 미가, 요나가 다 BC 8세기에 활동했습니다. 호세아야말로 인간적으로 가장 비운의 선지자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선지자라는 사람이 세상이 다 아는 음란한 여자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선지자의 체면이 어떠했겠습니까? 이 얼마나 난감한 일입니까? 호세아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한들 그것을 누가 믿겠습니까? 사람들이 호세아의 선포를 하나님의 계시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호세아 이야기는 창작이 아닙니다. 호세아의 강직한 성품이나 정서로 봐서는 상상할 수도 없지만,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그는 고멜을 자기 아내로 삼습니다. 고멜이 결혼한 후에 조신한 아내가 된 것도 아닙니다. 고멜은 가출을 일삼고, 외도하고, 남의 자식을 낳습니다. 그럼에도 호세아는 아내를 찾아옵니다. 어떤 때는 호세아가 인신매매 당한 아내를 몸값을 지불하고 사오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왜 호세아를 부르셔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황당하고 가혹한 사건을 연출하셨을까요? 그것은 경건하고 강직한 하나님의 선지자가 그 성읍에서 가장 이름난 음녀 고멜과 결혼해서 고통당하는 본문보다 실은 훨씬 더 황당하고 불가사의한 사건이 있음을 계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우리를 불러 당신의 신부로 삼으신 사건입니다. 이것은 호세아 사건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불러 당신의 신부로 삼은 사건보다 역설적인 사건은 없습니다. 호세아가 바로 주님입니다. 구약에 계시된 가장 구체적이고, 역동적이며, 생생하고, 입체적인 주님의 그림자가 바로 호세아입니다. 그러면 고멜은 누구입니까? 두 말할 것도 없이 오늘날 우리입니다. 날마다 호세아를 힘들게 하고 난처하게 만드는 고멜이 오늘날 우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에서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선 주님의 사랑입니다. 도저히 아내로 삼을 수 없음에도 고멜 같은 여인을 호세아의 아내로 삼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신부가 되고 나서도 얼마나 자주 세상과 눈이 맞아 가출했습니까? 주님이 그럴 때마다 우리를 다시 불러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언제나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셔서 주님의 신부의 지위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호세아를 통해 주님의 무한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깊이 느껴야 합니다. 호세아서의 주제가 여호와를 알자입니다. 호세아 4장 6절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우리는 이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실제 삶을 통해 생생하게 연출한 주님의 불가사의한 사랑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다음은 주님의 아픔입니다. 지독한 원칙주의자요 다윗의 혈통을 중시했던 정통주의자요, 쿠데타로 집권했다 해서 왕으로 취급하지도 않던 강직한 호세아가 천하의 음녀 고멜을 아내로 만났으니 그가 겪었을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호세아의 뼈아픈 고뇌가 그대로 주님의 고통이요 고뇌입니다. 우리가 옛 버릇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처절한 사랑만이 아니라 주님의 피눈물 나는 아픔도 함께 깨달아야 합니다. 사실 주님의 사랑을 말하는 사람은 많아도, 주님의 아픔을 말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신부로 맞이하기 위해, 우리의 쓴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가 세상과 수작하면 주님은 그만큼 아파하십니다. 


부디 이 사색의 계절 가을에 주님의 사랑뿐만 아니라 주님의 아픔도 깊이 묵상합시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알고, 주님의 뜻을 깊이 헤아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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