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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명절이 가까운지라
설교본문 요 6:4-13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9-08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908m.mp3

20190908m

요 6:4-13

명절이 가까운지라


(요 6:4-13, 개정)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4절을 보십시오.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그러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이 유대인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을 며칠 앞두고 일어난 사건입니다. 우리의 최대 명절인 추석도 며칠 남지 않았으니 굳이 말하자면 오늘쯤 발생한 기적입니다. 주님이 하필이면 왜 명절을 앞두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을까요? 명절을 풍성하고 넉넉하게 맞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깊은 뜻대로 올해 추석도 떡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도 12바구니가 남는 풍성하고 넉넉한 추석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어떻게 발생했습니까? 6절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주님은 이미 이 난감한 문제를 해결하실 비책을 갖고 계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굶주려 늘어져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어떻게 구제하실지에 대해 주님은 대책이 있습니다. 다만 제자들의 반응,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앞에 문제를 던지시고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시험하십니다. 우리가 시험을 통과하면 은혜와 기적을 베푸십니다. 주님이 왜 그러실까요? 주님은 결코 은혜를 남발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함부로 기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주님은 준비되고 감당할 수 있는 자에게만 기적을 허락하십니다. 그래야만 그 은혜와 기적이 그에게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오히려 주님의 은혜와 기적이 불행이 되고 저주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고 로또를 사지만 안 됩니다. 


당시 주님의 시험대에 오른 제자들의 성적표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빌립입니다. 7절입니다.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빌립은 정말 계산이 빠릅니다. 우리가 떡을 사서 사람들을 먹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빌립은 이해와 타산에 몹시 밝은 현실주의자, 합리주의자, 냉철한 이성주의자였습니다. 이런 사람들 많습니다. 모든 일을 치밀한 계산으로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전에 승산을 저울질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일찌감치 포기하거나 체념합니다. 대단히 이성적이고 상식적이지만 신앙적이지는 않습니다. 신앙은 때로 산술적 계산을 뛰어넘습니다. 신앙은 때로 이성이나 합리적 사고를 초월합니다. 믿는 자들은 은혜와 기적으로 떡을 구하기도 합니다. 빌립의 답안은 절대 주님이 기대한 모범답안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출제하신 문제는 수리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산술적 답안을 작성했습니다. 


다음은 안드레입니다. 8절 이하입니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그런데 안드레는 빌립보다는 낫습니다. 빌립은 계산만으로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안드레는 실제 먹을 게 있는지 없는지를 전수조사했습니다. 하지만 안드레 역시도 주님이 기대하신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무리 중에서 오병이어를 발견하고도 이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합니다. 빌립이 현실주의자였다면 안드레는 오병이어가 어림도 없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일은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부지런히 떡을 찾아다니기는 합니다. 그러면서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관적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사람이 더 심각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빌립 같은 계산에 능한 현실주의자나 안드레 같은 일을 하면서도 부정적인 회의주의자나 비관주의자를 통해서는 결코 기적을 베풀지 않습니다. 이들은 아직 주님의 은혜를 감당하기에는 준비가 안 된 사람입니다. 


이제 한 아이입니다. 9절입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이 아이는 대체 어떤 생각으로 오병이어를 내놨을까요? 빌립처럼 나름대로 계산하고 바쳤을까요? 그렇다면 바치지 못했을 겁니다. 안드레처럼 부정적인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것을 가지고 기적을 행하신다는 기대를 갖고 바쳤을까요? 그 아이는 단지 그냥 주님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주님이 먹을 것을 찾으신다니까 자기 가진 것을 소박하게 내놓은 것입니다. 빌립처럼 계산을 하거나 안드레처럼 적은 것이라고 회의에 빠졌다는 그 아이는 절대 오병이어를 못 드렸겠지만, 주님 말씀에 단순하게 반응해서 최선을 드린 것입니다. 빌립은 묵살하고 안드레는 비웃었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그 아이는 자기 수중의 것을 주님께 내드린 것입니다. 뜻밖에도 주님은 그 아이의 초라한 헌상을 통해 놀라운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주님은 이름 없는 한 아이의 헌신을 통해 당신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십니다. 주님은 빌립도 안드레가 아니라 그저 말씀에 단순하게 순종하고 소박하게 결단하며 최선을 다하는 한 아이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여기서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사건이 아무리 주님이라고 해도 최소한 오병이어 정도는 있어줘야 기적을 행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말씀이 주님은 작으나마 뭔가 우리가 먼저 성의를 보여야 뻥튀기하듯 그 양을 부풀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주님은 그게 무엇이든 우리의 중심과 우리의 진심, 우리의 믿음을 확인하고 싶어 하십니다. 따라서 당시 주님이 받으신 것은 한 아이의 남루한 도시락이 아니라 오병이어에 담긴 이름 없는 이 아이의 사랑과 믿음과 순종과 결단이었습니다. 그것이 확인되었기에 주님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당시 주님이 오천 명을 먹이신 것은 오병이어를 뻥튀기해서 먹이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먹이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중심을 보고 기적을 베푸시지 우리가 제공하는 오병이어를 소재로 기적을 베푸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심을 드려야 합니다. 보리떡 5개가 아니라 1개면, 물고기 2마리가 1마리면 어떻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사랑이라면 주님은 얼마든지 기적을 베푸십니다. 여러분, 중심을 담아 오병이어를 바칩시다. 그러면 이 시대에도 주님이 우리를 통해 놀라운 기적을 허락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빌립 같은 이성주의자나 안드레 같은 회의주의자는 다 배척하십니까? 주님은 빌립이나 안드레에게 사도의 자격이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오병이어의 기적 속에는 빌립과 안드레 같은 이들에 대한 배려도 숨어 있습니다. 주님의 모든 기적은 결코 비이성적 사건이 아닙니다. 사실 주님은 오병이어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주님이 오병이어로 기적을 행하신 것은 실증주의자, 이성주의자, 합리주의자, 회의주의자, 비관주의자에 대한 깊은 배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이 행하신 모든 기적은 절대 자연적 질서나 순리를 파괴하거나 거스르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최대한 자연 질서와 순리를 존중하셨습니다. 주님이 언제 돌로 떡을 만드셨습니까? 주님이 언제 나무막대기로 물고기를 만드셨습니까? 주님이 언제 무화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까? 보리떡으로 더 많은 보리떡, 물고기로 더 많은 물고기, 물로 포도주입니다. 그것은 다 자연의 법칙이요 순리입니다. 보리떡 다섯 개로 오만 개를 못 만듭니까? 물로 포도주를 왜 못 만듭니까? 보리떡 다섯 개를 빚을 만큼의 보리를 땅에 심고 거두는 것을 반복하면 됩니다. 물고기도 마찬가집니다. 포도나무도 키워서 그렇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시간이 걸리지만, 주님은 단 몇 초 만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도 유전자 조작 등을 하면 그 기간을 단축할 수도 있습니다. 절대 무로부터 이 오묘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주님이 보리떡 다섯 개로 오만 개를 만드는 긴 시간을 한순간으로 단축하지 못하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기적 때문에 회의에 빠지지 맙시다. 기적을 반자연적이고 반합리적인 미스터리로 치부하지 맙시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얼마든지 떡과 물고기를 만들 수 있음에도 굳이 오병이어로 그렇게 하신 것을 이해하고 감사합시다. 여러분 수중에 오병이어가 너무 작고 초라하고 보잘 것 없다고 좌절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포기하지 맙시다. 주님께 아낌없이 헌상하여 본문의 한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과 주님에 대한 깊은 신뢰의 마음을 담아 온전히 드립시다. 그러면 주님이 여러분의 순수한 감사를 접수하여 허기진 우리가 배불리 먹고도 12바구니가 남는 기적을 베푸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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