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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부정과 긍정
설교본문 민 13:25-33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9-01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901m.mp3

20190901m

민 13:25-33

부정과 긍정


(민 13:25-33, 개정) [25] 사십 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수기는 백성의 수를 기록한 책입니다. 영어로는 Numbers입니다. 민수기에는 모세가 실시한 두 차례 인구조사 결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종살이했던 애굽에서 430년 만에 탈출할 때 20세 이상 청장년이 60만이었습니다. 출애굽 직후 광야에서 실시한 첫 번째 인구조사의 결과입니다. 민수기 1장 44절 이하입니다. “[44] 이 계수함을 받은 자는 모세와 아론과 각기 이스라엘 조상의 가문을 대표한 열두 지휘관이 계수하였더라 [45]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 조상의 가문을 따라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이스라엘 자손이 다 계수되었으니 [46] 계수된 자의 총계는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더라” 이 숫자가 바로 출애굽 제1세대입니다. 여기에 여성과 출애굽 1.5세대를 더하면, 전체 인구가 200만이 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출애굽 탈출 1세대 60만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들이 천수를 다해 광야에 죽었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모두 객사했습니다. 마지막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출애굽 1.5세대나 2세대입니다. 출애굽할 때 20세 이하였거나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이 제1세대들을 고의로 가나안에 못 들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제1세대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모세와 아론도 못 들어간 가나안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가나안에 들어갔습니까? 못 들어간 60만은 왜 못 들어갔습니까?


본문은 모세가 가나안 문턱인 가데스바네아에서 지파당 1명씩 차출해 정탐꾼 12명을 가나안에 밀파하여 보고를 받는 장면입니다. 그들이 40일간의 정탐을 끝나고 돌아와 보고하는 장면입니다.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12지파를 대표하는 정탐꾼들의 보고 내용이 둘로 갈렸습니다. 12명 가운데 10명은 한마디로 가나안 정복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본문 28절입니다.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31절 이하입니다.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 정복이 불가능하다고 보고했습니다. 


그야말로 절망적입니다. 12명 가운데 10명이 부정적인 보고를 한 것입니다. 낙심천만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반응합니다. 14장 1절 이하입니다.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은 이러한 백성들 앞에 엎드려 그들을 진정시키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렇게 보고합니다. 13장 30절입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14장 7절 이하입니다.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그들은 가나안에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보고했습니다. 아니 똑같은 장소를 똑같은 기간 동안 정탐하고 왔는데 어쩌면 보고가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까? 어디에서 이 차이가 왔을까요?


우선 믿음의 차이입니다. 당시 정탐꾼들은 각 지파의 지휘관들이었습니다. 13장 2절 이하를 보면 그들이 지휘관이요 각 지파의 수령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신앙적이지 않았습니다. 분명 그들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리더들이었지만 믿음은 없었습니다. 그들의 언어 어디에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의 긍정적 보고에는 어디든 하나님이 등장합니다(14:8-9). 구구절절 여호와 신앙입니다. 그들의 긍정적 보고는 인간적 허세가 아니라 그들 믿음의 산물이었습니다. 


정탐꾼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장 1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백성들의 리더라는 10명의 정탐꾼의 보고도 불신앙의 소치이고, 밤새도록 출애굽을 후회하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난리를 친 백성들의 행태도 불신앙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판단이요 지적입니다. 그들은 무늬만 하나님의 백성이지 신앙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 밥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 한다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당연히 이렇게 보고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10명의 정탐꾼은 불신앙의 비관주의, 회의주의,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적들은 거인이요 우리는 메뚜기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그들의 보고를 듣고 희망적으로 보고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했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입니다. 십자가를 보십시오. 더하기 표시입니다. 내 인생, 존재, 운명에 하나님을 더하는 게 신앙입니다. 나 혼자라면 안 됩니다. 세상에서 나보다 더 약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약해도 나라는 존재에 하나님이 더해지면 대역전이 일어납니다. 세상에서 내가 이기지 못할 적은 아무도 없습니다. 요즘 슈퍼마켓에 가면 1+1 상품이 많습니다. 나라는 존재에 하나님을 더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민수기 14장 9절에서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 하시니 그들을 두려워 말자. 우리가 그들을 이긴다는 것은 바로 이 믿음에 근거합니다. 바울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누가 능히 우리를 대적하리요 라고 했습니다. 나는 메뚜기 같고, 벌레 같고, 먼지 같지만, 내 존재에 더해진 하나님은 크신 분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에 하나님을 플러스하십시오. 그래서 매사를 부정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전망하고 기대하는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그래야 가나안을 차지합니다. 


두 가지 보고의 차이는 과거지향적이냐 미래지향적이냐는 차이입니다. 개인이나 공동체는 언제나 미래를 지향해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할 수 있고 발전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과거에 삽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12명의 정탐꾼도 10 vs. 2로 갈렸습니다. 10명은 과거지향적이고 2명만 미래지향적입니다. 이처럼 지금도 많은 사람이 과거를 돌아보며 거기에 붙잡혀 삽니다. 당시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애굽의 옛 생활을 잊지 못했습니다. 민수기 14장 3절 하반절입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절 하반절입니다.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나님이 굳이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은 배수의 진입니다. 더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끊임없이 애굽을 돌아봅니다. 그들은 지금 가나안 문턱까지 왔는데 다른 지휘관을 세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미래가 없습니다. 주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과거를 다 해로 여기며 배설물처럼 버린다고 하며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간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서적 실존입니다. 앞으로 달음질하는 존재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과거로 회귀하지 맙시다. 오직 미래와 가나안을 바라보며 날마다 앞으로 나아갑시다. 하나님도 언제나 맨 앞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진두지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앞에서 나아가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는 후진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초등학교 때 반장한 얘기, 유치원 때 수석한 얘기를 자랑합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언제 받은 구원인데 우리는 아직도 구원받은 감격만 우려먹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가나안 밖에 없습니다. 왜 우리는 아직도 애굽의 문턱에 앉아 공기놀이만 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가나안 문턱까지 와서 10명의 정탐꾼과 함께 다시 애굽, 과거로 돌아가자며 선동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으로 진군하자, 미래로 나아가자, 원주민들이말로 우리의 밥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느 쪽에 서시렵니까? 우리 사회, 우리 한국교회는 중요한 기로에 섰습니다. 향후 우리의 진로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과거를 고집하며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을 거절한 대가는 혹독합니다. 민수기 14장 29절 이하입니다.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35절 이하도 보십시오. “[35]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36]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37]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38]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이렇게 출애굽 제1세대 60만이 광야에서 뼈를 묻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전철을 밟지 맙시다.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후예가 되어 매사를 신앙적이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봅시다. 불신앙적이고 부정적인 사고는 우리를 망하게 합니다. 과거지향적, 회귀적인 사람은 결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부디 10대 2라는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시대의 여호수아와 갈렙이 됩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는 주인공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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