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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부르짖으라!
설교본문 렘 33:3-9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8-18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818m.mp3

20190818m

렘 33:3-9

부르짖으라!


(렘 33:3-9, 개정)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5]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6]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7]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8]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9]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3절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목이 터져라 큰소리를 지르며 기도하라는 뜻입니까? 예레미야 애가 2장 18절 이하입니다. “[18] 그들의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딸 시온의 성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를 쉬게 하지 말지어다 [19]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 어귀에서 주려 기진한 네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이것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부르짖으라고 한 말씀을 풀어서 설명한 것입니다. 


부르짖으라는 것은 눈물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 애가는 그가 쓴 눈물의 기도입니다. 예레미야는 그만큼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고, 밤낮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입니다. 그의 조국 유다가 망하고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가장 비극적 시대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그는 평생 눈물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백성 앞에서 눈물로 예언했던 비운의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며 기도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눈물의 기도가 하나님의 심금을 울립니다. 우리도 눈물에 약합니다. 주님은 우리보다 더 눈물에 약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약점입니다. 우리가 울면 주님은 안절부절 못하십니다. 우리가 울며 회개하면 잽싸게 용서하시고, 울며 기도하면 서둘러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며 기도하라고 합니다. 눈물의 진정성만 확인되면 주님은 즉각 응답하십니다. 


부르짖으라는 것은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꾸준히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기도를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꾸준히 하지 못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에 꾸준해야 합니다. 호흡은 한꺼번에 몰아서 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호흡은 우리가 잠을 잘 때든 길을 갈 때든 언제나 해야 합니다. 기도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기도 쉬는 것을 죄라고까지 말합니다. 기도가 우리의 생활이 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부르짖으라는 것은 주를 향해 두 손을 들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만세 부르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서 완전히 항복을 선언하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더는 자신을 고집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겠다고 결단하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3절 하반절입니다.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크고 은밀한 일은 위대하고 기상천외한 일을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 이상의 놀라운 응답을 보장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인간적 기대나 상상력을 뛰어넘는 기발한 것을 허락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지혜나 방법, 상상력은 늘 협소한 한계와 제한 속에 갇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인간적인 것을 초월해 계십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크고 비밀한 것으로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방법이 없지만 하나님께는 크고도 은밀한 해결책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보여주시겠다는 겁니다. 여러분, 인간적인 생각이나 계산으로 포기하거나 절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초월하십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좌절하면 안 됩니다. 부르짖어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은밀한 응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초토화된 예루살렘 성을 일으켜 평안이 풍부한 성읍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당시 유다와 예루살렘의 형편에 대해서는 동시대에 활약했던 이사야 1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 1장 5절 이하입니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지 않습니까? 오늘날 우리네 교회의 적나라한 민낯 아닙니까? 요즘은 모두 상처투성이입니다. 겉만 그럴듯할 뿐입니다. 아픔 없는 사람 없고, 피 흘리지 않는 가정이 없습니다. 나라 사정은 더 합니다. 우리의 중병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년 총선 때 국회의원만 잘 뽑으면 될까요? 누구도 그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우리의 병든 사회와 망가진 가정을 온전케 할 수 없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우리는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해, 우리의 병든 사회를 위해, 우리의 가정을 위해 주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성을 치료하사 낫게 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능히 병든 성, 황폐한 우리의 성을 고쳐 평안과 진실이 풍성한 성으로 새롭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과 개인의 중병도 치료하여 낫게 하실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입니다. “...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말라기 4장 2절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역대하 7장 14절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으면 우리뿐만 아니라 만신창이 대한민국도 고쳐주십니다. 


우리가 주께 부르짖으면 찬송과 영광과 평안의 복을 주십니다. 본문 9절입니다.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우리의 삶과 가정에 평안이 있습니까? 우리 입에 찬송이 있습니까? 오늘도 우리나라 국민 중 40명이 자살을 예약해 놓았습니다. 평균 33분에 한 사람씩 자살하기에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시간도 어디선가 두 사람이나 자살했습니다. 그만큼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고, 아무 보람도 기쁨도 희망도 살 가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불문하고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죽음에 자기 생명을 내던지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 대한민국 국적 포기자가 3만 명이 넘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위기이고 절망적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표정을 보면 모두 살기 싫은 얼굴입니다. 모두 분노에 가득 찬 모습입니다. 얼마나 뾰족하고 까칠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그렇게 메마르고, 삭막하고, 거칠고, 황폐한 정서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울화가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사람이 우리입니다. 이런 심령 상태에 무슨 기쁨과 찬송, 평안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믿는 우리에게는 길이 있습니다. 수습하고 회복할 방법이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건성으로 형식으로 종교의식으로 하는 기도 말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며 자복하고, 쉬지 않고 삶으로 기도하고, 두 손을 들고 주님께 투항하며 부르짖는 것 말입니다. 이것이 본문이 말씀하는 처방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사 우리 마음과 영혼에 기쁨과 보람을 주시고, 입에 찬송과 웃음을 주시고, 삶에 즐거움을 주십니다. 부디 모두가 하나님께 힘껏 부르짖읍시다. 그래서 약속한 큰 은혜를 체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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