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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엘리야, 빗속을 달리다
설교본문 왕상 18:41-46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7-21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0721m.mp3

20190721m

왕상 18:41-46

엘리야, 빗속을 달리다!


(왕상 18:41-46, 개정) [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태풍 다나스가 어제 오전 남부지방에 상륙하며 소멸되었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래도 제주도와 남부 지방에는 엄청난 비가 왔다고 합니다. 한라산에는 1000mm가 넘게 왔다고 합니다. 


본문을 보면 엘리야 시대 갈멜산에도 물폭탄 같은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가 그 비를 다 맞으며 미친 듯이 빗속을 달렸다고 합니다. 마차와 사람이 시합을 하면 누가 이길까요? 당연히 마차가 이깁니다. 더구나 본문의 마차는 아합 왕의 마차입니다. 그런데도 본문의 대결에서는 아합보다 맨발로 장대 빗속을 질주한 엘리야가 이겼습니다. 갈멜산에서 이스르엘까지는 약 22km입니다. 그 긴 구간을 엘리야가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달려서 끝까지 아합의 마차 앞에서 달렸습니다. 46절입니다.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그렇다면 엘리야가 50리도 더 되는 길을 장대 빗속을 뚫고 달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너무 기쁘고 감격하고 감사해서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무려 3년 반 동안 비 한 방울 오지 않던 땅에 지금 큰 비가 오고 있습니다. 아마 그때도 1000mm 이상 쏟아졌을 겁니다. 요즘 시대에도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는다면 국가적 재앙이 없을 겁니다. 하물며 하늘만 쳐다보고 살던 고대 시대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 엘리야가 기도해서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니 그 감격이 얼마나 남달랐겠습니까?


그러면 엘리야는 어떻게 기도했길래 그런 응답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엘리야처럼 장대 빗속을 달리는 감격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우선 엘리야는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는 절대 막연하게 애매하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확실하게 비를 내려 주십시오. 죽은 아이를 살려 주십시오. 빈 통에 가루를, 빈 병에 기름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바로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모호하게 하면 응답도 모호합니다. 본문 앞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갈멜산에서 맞장 뜨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서 엘리야는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18장 38절입니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엘리야는 이렇게 불을 주십시오, 비를 주십시오하며 언제나 자신의 필요를 콕콕 찍어 기도했습니다. 그는 중언부언하거나 횡설수설하지 않았습니다. 불을 달라는 것인지 물을 달라는 것인지, 시를 쓰는지 소설을 쓰는지 애매하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기도원에 가보면 중국 대륙을 달라, 세계를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기도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소박하고 적나라하고 원색적으로 자신의 절실함과 필요를 확실하게 부탁하십시오. 돈이 얼마 필요하다, 병을 낫게 해달라, 직장을 달라, 대학에 합격하게 해달라, 누구와 꼭 결혼하게 해달라,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고 수습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드리는 올바른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의 필요와 소원을 다 아십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굳이 구체적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생각합니다. 주님은 그게 무엇이든 그냥 알아서 해주시지 않고 꼭 나로 하여금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하신 후에 응답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건강과 돈과 비를 구하게 하신 후에 응답하십니다. 주님이 굳이 왜 그렇게 하실까요? 우리가 구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미리 주시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인정하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에 미리 주신 게 있습니다. 공기나 햇빛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누가 공기나 햇빛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까? 자연이라 생각할 뿐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도 없이 하나님이 알아서 거저 주시면 우리는 다 배은망덕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반드시 우리로 하여금 먼저 기도하게 하신 후에 응답을 베푸십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사악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알아서 뭔가를 주시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재수, 요행, 운으로 돌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하신 후에 응답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만들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엘리야처럼 알아서 해달라가 아니라 불을 달라, 비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응답도 확실하고 구체적입니다. 


엘리야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42절입니다.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유대인들은 보통 서서 눈을 뜨고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들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전형입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기도를 보십시오. 그는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얼굴을 두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런 자세는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만큼 엘리야가 간절하게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원래 기도는 간절하게 하는 겁니다. 주님의 최후의 기도를 보십시오. 누가복음 22장 41절 이하를 보면 주님이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고, 땀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기도합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엘리야의 기도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5장 17절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엘리야 기도의 비결은 간절함입니다. 기도는 간절함입니다. 내 간절함을 어떻게 주님께 전달할까 입니다. 금식이나 철야기도는 하나님 협박이 아니라 내 간절함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의 기도에는 간절함이 없습니다. 죄다 형식이고 건성입니다. 얼마나 우리 기도의 매너가 깔끔한지 몸부림 치지 없습니다. 엘리야 같은 위대한 선지자도 양 무릎 사이에 얼굴을 박고 기도하고, 주님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면, 우리는 아예 머리를 묻고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응답을 체험하고 싶다면 간절히 기도합시다. 간절히 기도해야 메아리가 있습니다. 엘리야 같은 기도의 전설, 달인도 그토록 간절히 기도해 마침내 응답을 체험했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엘리야 같은 사람도 산꼭대기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얼굴을 쳐박고 그것도 일곱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하물며 우리들이겠습니까? 


엘리야의 기도는 확신에 찬 기도였습니다. 41절입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이때는 아직 엘리야가 비를 달라는 기도에 들어가기도 전입니다. 그는 아직 갈멜산 아래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큰 비 소리를 듣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기도하기 전에 믿음으로 응답부터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비 오기 전에 비 소리를 들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기도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세입니다. 기도자는 무조건 종달새 알에서 종달새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너희가 믿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믿고 구하고 의심치 않으면 이 산더러 바다에 던지우라 해도 그대로 이룬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기도의 치명적 약점은 확신보다는 패배주의에 사로잡혀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해서 응답되면 다행이고, 응답이 안 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패배주의! 그러니까 우리는 기도하기도 전에 이미 불신으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를 내려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기 전에 이미 비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여러분, 기도는 확신입니다. 비를 위해 기도하기 전에 이미 큰 비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엘리야처럼 말입니다. 이런 사람 앞에서는 주님도 대책이 없습니다. 누가 말리겠습니까? 주님은 언제나 거저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의 응답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되었는지를 확인한 후에 응답하십니다. 주님은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누구도 실수로 혹은 우연히 기도 응답을 받을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은 이미 비 소리를 듣는 자에게 비를 주시고, 이미 구하는 것을 받은 줄로 믿고 감사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위대한 기도의 사람 엘리야의 기도는 늘 그러했습니다. 부디 확신을 갖고 담대히 기도해서 올 여름에는 우리의 바람을 다 이룹시다. 그래서 모두 엘리야처럼 기쁨과 감격으로 신나게 빗속을 달음질하는 우리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