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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그들의 믿음
설교본문 막 2:1-12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6-30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630m.mp3

20190630m

막 2:1-12


(막 2:1-12, 개정) [1]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원래 믿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믿음으로 주님과 관계를 맺고 죄 사함과 구원을 얻습니다. 가끔은 내 남편, 내 아내가 잘 믿으니 그를 의지해서 천국에 가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법은 없습니다. 아무리 부부간 부자간이라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은 한 영혼일 뿐입니다. 각자의 믿음으로 죄 사함과 구원을 얻습니다. 물론 내 남편과 아내, 가족과 친지의 믿음을 도울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믿는 사람이 언제나 최선을 다 해야 할 신성한 사명입니다. 그럼에도 최종적으로는 각자는 모두 자기의 믿음으로 천국에 갑니다. 남의 기도와 도움과 격려를 받을 수는 있지만 자기 자신의 믿음이 중요합니다. 내가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 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중풍병자의 믿음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입니다. 그들은 한 중풍병자를 주님 앞에 메고 온 친구, 지인, 이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은 언제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말씀합니다. 마가복음 5장에 등장하는 혈루증 여인, 7장의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도 주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경우에 주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합니다. 그들의 믿음을 보신 주님은 중풍병자의 영혼도 육신의 병도 고치셨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은 언제나 전인적 구원입니다. 내적이고 외적인 병, 영혼과 육신의 병을 함께 고침 받는 것이 구원입니다. 현장에서 사건의 전말을 지켜본 사람들이 모두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지 않고 그의 친구들의 믿음만 보시고 구원해 주셨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보다 환자 자신이 가장 절실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 좋은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극적으로 주님 앞까지 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본문은 그들의 믿음을 강조한 것은 그만큼 믿음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환자 못지않은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본문은 그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12절 하반절은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고 합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놀랐습니다. 그것은 환자 자신의 믿음과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그를 운반한 네 사람의 믿음이 연출한 합작품입니다. 이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 본문의 취지입니다. 네 사람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그들의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실천하는 믿음, 삶으로 믿는 믿음, 역동적인 믿음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말로써 믿습니다. 오죽하면 신자들이 죽으면 입만 천국 간다고 할까요? 예수쟁이는 다 말쟁이라는 것도 억울하지만 사실이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2장 16절 이하입니다.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이는 머리로만, 어떤 이는 가슴으로만 믿습니다. 원래 기독교 신앙은 입과 머리, 가슴으로 믿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온몸으로 믿는 것입니다. 행함으로 믿는 것입니다. 


전설적인 외줄타기 곡예사 찰스 브론디는 최초로 외줄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횡단하여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1858년 6월 30일이었습니다. 높이 70미터, 길이 790미터의 외줄을 치고 맨손으로 균형을 잡으며 미국에서 캐나다 쪽으로 건너갔습니다. 다시 건너올 때는 맨손이 아니라 작은 수레를 들고 건넜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환호했습니다. 브론디는 맨손으로 건넜다가 돌아올 때는 수레를 끌고 건너고 있습니다. 맨손보다는 뭔가를 의지해 외줄을 타는 게 좀 더 쉽습니다. 브론디는 이번에도 무사히 건널 수 있다고 믿는 분들은 박수로 화답해주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냅니다. 그런데 브론디가 제안합니다. 박수를 보내신 한 분만 이 수레에 타십시오. 제가 안전하게 저편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도 자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특별열차까지 편성해 모인 사람들 가운데 단 한 명도 빈수레에 탄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입으로만 아멘, 할렐루야 하는 게 아닙니다. 가슴으로만, 머리로만 믿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수레에 던지는 겁니다. 구원의 방주에 자신을 던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행동, 결단입니다. 주님은 지상에서 하늘까지 구원의 튼튼한 외줄을 치고 우리를 안전하게 천국에 데려가기 위해 지금도 우리에게 타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긍정은 하지만 몸은 던지지 못합니다. 행함으로 결단하지 않으면 나이아가라를 건너 미국 땅을 밟을 일도 없지만 천국 갈 일도 없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합심하고 합력하는 믿음이었습니다.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예수께 나왔다고 합니다. 네 사람이 의기투합한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런 그들의 믿음을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동역하는 믿음 말입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는데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합심하여 동역하면 주님이 그만큼 더 기뻐하십니다. 교회에서 합심기도를 강조하는 이유는 거기에 놀라운 시너지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개인기도는 잘 하는데 합심기도는 건성으로 합니다. 기도가 모아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혼자서는 잘 믿고 일도 잘하고 기도도 하지만, 합력하는 일에 미흡합니다. 혼자 믿지 마십시오. 점점 더 혼자 믿는 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나안 신자(교회 안 나가는 신자)가 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상처를 입고 시험에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 영적 시너지를 체험하기 어렵습니다. 믿음의 사회성을 생각합시다. 상처도 크지만 부대끼고 합력하여 신앙생활 할 때가 더 좋습니다. 에베소서 4장 2절 이하입니다.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부디 본문의 사건처럼 우리의 함심과 협력으로 말미암아 꺼져가는 심령이 구원을 얻는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믿음은 포기할 줄 몰랐습니다. 네 사람이 친구를 메고 왔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이 문 앞에도 설 자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동역하더라도 주님 앞으로 나가는 일이 막히면 체념했을 텐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모험적이고 도전적이었습니다. 어떻게 남의 집 지붕을 뜯습니까? 발상이 기상천외하고 황당합니다. 들것에 누운 사람을 달아 내리려면 큰 구멍을 뚫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말도 안 되는 모험을 감행합니다.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확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공수작전에 주님이 불편보다는 감동하셨습니다. 주님은 중풍병자의 죄 사함과 함께 육신의 병까지도 깨끗이 낫게 하셔서 그로 하여금 누웠던 상을 들고 가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일은 처음 본다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도 모험할 줄 모릅니다. 믿음의 용기나 담력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모세가 출애굽하여 백성을 이끌로 광야로 나왔는데 초기에 사면초가에 몰립니다. 앞은 홍해, 좌우는 가파른 산이 있고, 뒤는 애굽의 군대가 추격합니다. 그때 모세는 감히 홍해를 가르려는 모험에 도전합니다. 그 절박한 순간에 모세는 지팡이를 바다 위로 내밀었을 때 바다가 갈라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신 확신과 담력으로 비상한 모험을 단행해 바다를 갈랐습니다. 여러분, 지금 사방이 막혀 있습니까? 나를 둘러싼 상황이 절망을 선언할 때, 지붕으로 올라갑시다. 때로는 그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네 사람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한 중풍병자의 영혼과 육신을 구원에 이르게 했습니다. 부디 진정한 믿음의 모험으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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