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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자유에 대하여
설교본문 갈 5:1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6-23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623m.mp3

20190623m

갈 5:1

자유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성경의 중요한 메시지 가운데 하나는 자유입니다.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고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의 본질, 그리스도교 진리의 핵심을 말씀하는 중요 대목입니다. 본문 하반절도 보십시오.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합니다. 13절도 보십시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또한 본문 앞 절인 4장 마지막 절도 보십시오.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자유는 추상명사입니다. 바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과연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요 해방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힙니다.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우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바울 당시 갈라디아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율법주의입니다. 이것은 복음도 믿어야 하지만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도 받아야 하지만 할례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이 이런 주장을 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절 이하입니다.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이것은 통렬한 비판이자 무서운 책망입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해방되어 복음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더는 율법에 구속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완전히 놓여난 자유인들입니다. 구약 시대 때는 십계명, 모세 5경, 안식일 등을 지켜야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율법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공덕을 축적하라고 가르치는 가톨릭이나 유대교도나 음식물의 부정을 엄격히 따지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안식교도나 도덕이나 치성을 강조하는 종교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다 율법주의에 속합니다. 


우리가 흔히 저 사람은 착해서 죽어서 천당 갈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 사람은 상대적으로 착할 뿐 아무리 착하다 해도 하나님의 율법 기준을 충족해서 천국에 갈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는 다 똑같습니다. 도토리 키재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500m가 넘는 높은 빌딩이나 2층 상가나 다 똑같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이보다 더 명쾌한 말씀은 없습니다. 율법으로 구원 얻을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성인군자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일개 인간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율법이 아닌 새 길을 여셨다는 게 복음입니다. 


그러면 궁금한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유인이니 더는 율법이 필요 없냐는 것입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이렇게 주장하는 교파도 다수 보입니다. 이제 우리는 분명 율법에서 해방된 자유인입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율법 무용론자나 폐기론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하신 주님, 복음의 화신이신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오지 않고 완성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결코 율법을 폐기처분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아직도 그 유통기간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제는 용도가 달라졌을 뿐입니다. 이전에 우리는 구원을 얻기 위해 율법을 지켰으나 이제는 거룩해지려고(성화) 율법을 지킵니다. 이전에는 율법을 강제로 지켜야 했는데 이제는 자발적으로 지킵니다. 그러면 그것이 우리 영성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만큼 우리가 거룩해진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구원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제는 구원의 조건이 율법이 아닌 믿음입니다. 이제 구원은 율법의 반대급부가 아니라 율법을 지키면 그만큼 우리 삶이 경건해집니다. 율법주의도 잘못 되었지만 율법 무용론과 폐기론도 잘못된 것입니다. 율법으로 자유하시되 율법을 버리지는 맙시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더욱 거룩한 모습으로 성화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것도 매우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로마서 8장 1절 이하입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것은 제가 가장 강조하는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위대한 해방과 자유의 의미는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죄를 짓습니다. 바울도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한다고 하며 이 사망의 법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며 탄식했습니다. 이때가 바울의 개종 초기가 아니라 예수 믿은 지 한참 지난 후에 그는 이런 비명을 질렀습니다. 우리도 이런 갈등과 자기 분열의 모습을 지니고 삽니다. 


왜 이런 모순이 발생합니까? 이 문제로 가장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 구원파입니다. 구원파는 그 이유를 완전한 죄사함을 받지 못해서 죄를 짓는다고 합니다. 완전한 구원을 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그리로 넘어갔는지 모릅니다. 거듭났음에도 계속 죄를 짓는다는 게 팩트니까 그 문제를 해결해 줄 테니 자신들에게로 오라고 하니 많이 넘어갔습니다. 죄에서 해방되었어도 죄 짓고 삽니다. 바울은 개종 후 20년이 지났어도 그 문제로 괴로워했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옛 사람의 습성 때문입니다. 우리가 더는 죄의 종이 아니지만 그 하수인으로 살던 때의 탄력 때문에 우리는 죄를 짓고 삽니다. 우리의 소속, 신분, 지위, 정체성이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서, 기호, 죄에 대한 욕망이나 미련, 향수가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죄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몇 십 년 담배 피던 사람이 담배를 끊었다고 하지만 완전히 끊어진 게 아닙니다. 죄는 그것보다 더 중독성이 강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더는 노예가 아니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굳이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도 배수의 진이었습니다. 우리 몸에도 아직도 옛 사람의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자주 우리에게 금단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렇게 우리는 죄를 범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옛 사람의 잔재 때문이지 마귀의 종이 되어 저지르는 죄는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더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생명과 성령의 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우리를 단죄할 법이 해소되었습니다. 우리를 기소할 법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죄에 대해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죄로부터의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깨달을 때 우리에게서 감사가 터져 나올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인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초등학문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3절 이하입니다.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말씀하는 초등학문은 당시 헬라 문화권의 점성술을 뜻합니다. 그래서 새번역 성경은 이 단어를 미신으로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큰 일을 앞두고서는 사주나 궁합도 보고, 정초에 토정비결을 보고, 오늘의 운세를 챙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미신이 아닌 통계학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유치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원시종교로부터 자유롭게 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당시 갈라디아교회는 그렇지 못했기에 바울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당한 자유인입니다. 초등학문, 미신, 원시종교에 끌려 다니지 맙시다. 손 없는 날 따지지 맙시다. 오늘의 운세 볼 시간에 성경 한 구절 더 봅시다. 철학관에 가서 아이들 이름 작명하지 맙시다. 우리는 이미 그런 것에서 다 자유롭게 된 사람입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다시는 비굴한 종의 멍에를 매지 맙시다. 언제나 진정한 자유인으로, 하나님의 아들 딸로 당당히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