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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오순절 성령 강림
설교본문 행 2:1-4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6-09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609m.mp3

20190609m

행 2:1-4

오순절 성령강림


(행 2:1-4, 개정)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리스도인에게는 모든 주일이 소중하지만 오늘은 더욱 소중합니다. 왜냐면 그리스도교의 기원은 부활절이지만 교회의 출범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이 교회의 기원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40일간 이 땅에 계시다가 다시 오리라고 하시며 승천하시는데 주님이 그때 당부하신 말씀이 사도행전 1장 4절 이하입니다.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런 후 8절 이하를 말씀합니다.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예수님의 승천을 본 제자들 약 120명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 성령이 강림합니다. 당시는 오순절이었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4절도 보십시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것이 바로 2000년 전에 발생한 첫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오순절에 성령강림을 체험한 이들이 원시 기독교회의 창립멤버입니다. 이 교회는 계획적이거나 인위적인 게 아니라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한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는 오순절이라는 절기입니다. 


여러분, 왜 성령강림 사건이 오순절에 발생했을까요? 그것이 우연은 아닙니다. 오순절은 맥추절로서 보리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맥추절이 유월절로부터 50일째 지키는 절기여서 오순절입니다. 맥추절의 다른 이름은 초실절입니다. 보리가 그해 농사의 첫 수확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강림 사건이 굳이 오순절에 발생한 것은 오순절이 초실절이기 때문입니다. 보리가 한 해 밭농사의 첫 열매이듯 성령강림 사건도 앞으로 전개될 교회 역사의 첫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전에는 성령의 역사가 없었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무엘상 16장 13절입니다.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14절도 보십시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도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전에도 성령은 강림했습니다. 다만 그 이전에는 본격적인 성령의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는 성령이 주체이던 시대는 아닙니다. 창조와 구약시대는 성부가 주체이던 시대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인간을 구속하신 시대는 성자의 시대입니다. 주님의 승천 이후 교회 시대는 성령의 시대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때로부터 역사의 종말까지는 성령이 주체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이 성령시대를 공식적으로 개막한 사건입니다. 


첫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대단했습니다. 2절 이하입니다.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방언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성령이 임하시면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까? 이런 바람 소리, 불길, 방언 같은 현상이 없으면 거기엔 아직 성령이 강림하시지 않은 것입니까? 요즘은 이런 현상이 드뭅니다. 사실상 이런 현상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령은 지금도 끊임없이 역사하십니다. 문제는 오순절 성령강림 때 나타난 초자연적 현상들을 성령의 일반적인 현상으로 보편화하면 안 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특수했습니다. 그것은 성자의 시대를 마감하고 성령의 새 시대를 여는 선언적 의미가 컸습니다. 그럼에도 오순절 성령강림 현상을 일반화하여 모든 성령강림의 형태를 고정하면 안 됩니다. 바람 소리가 나지 않고, 불이 안 보이고, 방언이 터지지 않아도 성령은 역사합니다. 물론 성령이 역사하시면 여전히 방언을 하고 환상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누구든지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예수를 주라 고백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예배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성령에 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요 14:18). 주님은 성령을 보혜사(parakletos)라고 하십니다. 파라클레토스는 <파라>와 <클레오>의 합성어입니다. 파라는 곁으로라는 뜻이고, 클레오는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이 우리의 무엇을 도우십니까? 


성령은 무엇보다 우리의 믿음을 돕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입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기에 오직 믿는 자만 그를 알고, 그들 안에 계시고, 그들만이 그분과 교감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여러분, 목사가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 결단하게 합니다. 요한복음 16장 8절입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누구도 자기 의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2천 년 전에 오셔서 33년 살다 간 낯선 유대 청년에게 신앙을 고백한다는 것이 제정신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성령에 붙잡히지 않으면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처음에는 갈팡질팡했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도 옛 직업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신 이후 그들은 그야말로 불덩어리들이 되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요한만 천수를 누렸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누가 떡을 줍니까? 서로를 돌아보면 다들 멀쩡한데 무엇이 아쉬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성령께서 우리를 흔드시고 깨우시고 이끌어서 교회에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강제하셔서 교회에 나와 기도하고 봉사도 합니다. 누구도 자신의 선택이나 노력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께 숙명적으로 덜미를 잡힌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왕이면 성령 충만해야 그만큼 더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우리의 기도를 돕습니다. 로마서 8장 26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왜 빌 바를 알지 못합니까? 성경은 성령이 탄식할 정도로 우리가 기도를 못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정곡을 찌릅니다. 우리는 기도하라고 하면 시는 잘 쓰지만 정작 무엇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무엇이 꼭 필요한지를 모릅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썩어질 것을 구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해칠 흉기를 달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대로 구해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탄식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기도 덕분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령이 가장 기도다운 기도를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우리의 기도가 보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보혜사 성령은 우리의 삶을 돕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성령이 우리의 삶을 돕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도우시면 그 어떤 환경이나 조건도 가장 아름다운 최선으로 결말이 납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 이하입니다. “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성도들도 핍박을 당합니다. 그러나 질그릇에 담긴 보배인 성령께서 우리를 지키시기에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우겨싸도, 아무리 거꾸러뜨려도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필히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성령 충만보다는 그 반대로 갑니다. 성경은 성령을 소멸치 말라 했고, 훼방하지 말라고 했고, 근심하게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말로는 성령 충만을 말하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성령을 소멸하며 삽니다. 소름끼치지만 이것은 사실입니다. 보혜사이신 성령으로 충만합시다. 늘 성령의 인도와 지배를 받으며, 성령의 역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결단하며 삽시다. 그래서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의 삶이 보다 아름답고 풍성하고 강건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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