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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천 대까지
설교본문 출 20:3-6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5-19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519m.mp3

20190519m

20:3-6

천 대까지

 

(20:3-6, 개정)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음 데 팥 난다고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뜻입니다. 사실 생물학적 유전현상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도 없습니다. 콩 심은 데는 팥이 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창조의 질서인 유전의 법칙 때문입니다. 유전은 조상이나 부모가 가진 신체적 특성이나 정신적 형질이 그 후손에게 그대로 대물림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한자로 유전(遺傳)은 남길 유, 전할 전입니다. 유전을 6하 원칙에 넣어보면, 누가는 부모가, 누구에게 자식에게, 무엇을 형질을, 어떻게 DNA에 담아 대물림함으로써 왜냐면 특정한 종의 정체성을 대대로 보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 때문에 반드시 유전질서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태초에 하나님이 부여하신 창조의 질서이고 법칙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초적인 은혜입니다. 창세기 121절 이하입니다. “[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하나님이 바다, , 공중의 생물들을 창조하시고 각기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생물에게 유전질서를 부여하심으로써 각 생물들이 자신의 고유한 모습과 형질을 잃지 않고 계속 대물림하면서 그 종을 잘 보전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더욱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주신 복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창세기 127절 이하입니다. “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하나님은 생물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같은 유전질서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니까 생물학적 유전이라는 것은 태초에 하나님이 제정하셔서 모든 생물과 인간에게 부여하신 창조의 기본 질서이자 피조물 보존의 가장 중요한 자연법칙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전이라는 것이 얼굴, 체형, 신장 같은 신체적 요소뿐만 아니라 지능, 재능, 정서, 인간성, 도덕성 같은 정신적 부분도 반드시 대물림 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몹쓸 병도 유전됩니다. 병원에서 문진표를 작성할 때 가족력을 중요하게 확인합니다. 이게 다 유전병이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런 것들보다 더 무서운 유전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영적 유전입니다. 생물학적, 육체적, 정신적 유전도 무섭지만 영적 유전은 더 무섭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원죄가 대표적인 영적 유전의 사례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가 그 후손에게 계속 대물림 되는 유전 죄를 가리켜 원죄라고 합니다. 아득한 옛날 전설 속의 인물 같은 아담의 죄가 이 시대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실제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것은 윤리적 차원에서 한번 제기해볼 수는 있으나 유전적 차원에서는 가차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내 의지로 죄를 짓기 전에 이미 유전적인 죄, 선천적, 숙명적 죄를 갖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입니다. 유아세례의 정당성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유아가 자기 의지로 죄를 지었겠습니까? 그럼에도 죄를 씻는다는 의미의 유아세례가 필요한 것은 인간은 자범죄 이전에 원죄를 쓰고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유아세례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본문 5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핵심은 죄도 은혜도, 저주도 축복도 그 당대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로 계속 대물림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영적 유전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씀을 그저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외모나 정신적, 유전병 같은 것은 현실로 이해하지만, 영적 유전에 관해서는 거의 체감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윗대로부터 죄나 저주 때문에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복이나 행복도 마찬가집니다. 부모가 조상의 복이 대물림되어 그 덕에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부모 당대는 힘들었지만 그들이 뿌린 눈물의 씨앗을 후손이 거두는 가정도 많습니다. 한국 교회도 처음에는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수많은 박해, 순교자 배출, 경제적 가난 등으로 어렵게 신앙생활했습니다. 초대 신자들이 눈물로 씨를 뿌린 것을 우리가 거두고 있습니다. 어쨌든 저주와 축복은 반드시 그 다음 세대로 대물림된다는 게 성경이 말씀하는 중요한 영적 유전 법칙입니다. 흔히 부모들은 나는 비록 실패했지만 자식만큼은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불행이나 아픔이 당대로 끝나고 자식 세대에는 달라지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부모의 인간적 바람일 뿐 대개는 부모의 아픔과 모진 운명이 그대로 대물림됩니다. 악순환이 대물림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드시 죄와 저주의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할까요?

 

노아의 둘째 아들 함과 그 자손인 가나안 족속의 저주를 생각해 봅니다. 함이 저주를 받은 이유는 아버지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잠들자 함이 흉을 봤기 때문입니다. 다른 형제들은 뒷걸음질로 아버지에게 가서 부끄러움을 감춰준 데 반해 함은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습니다. 나중에 노아가 함을 저주합니다. 가나안은 함의 아들 이름입니다. 잘못은 함 혼자 저질렀는데 저주는 함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 가나안 족속들에게도 대물림됩니다. 후에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갈 때 모든 가나안 족속을 멸절하라고 합니다. 그것이 저주받은 가나안 족속의 최후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 저주에서 열외된 사람입니다.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입니다. 그럼에도 어린아이와 짐승들까지 다 죽임을 당한 여리고성에서 그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숨겨준 정탐꾼 한 사람과 결혼해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이 나십니다. 이렇게 복이 천 대까지 이어지는 비결은 하나님 신앙입니다. 라합은 놀랍게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가정 형편상 창녀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앙하는 것만이 저주의 사슬을 끊을 수 있습니다. 라합은 저주받은 가나안 족속이고 창녀였지만 그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었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구원의 반열에 들었고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저주는 항상 죄의 결과요 유전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를 깨끗이 씻으면 저주와 불행의 악순환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전에는 다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전에는 온갖 더러운 귀신과 저주가 우리 가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부로 이사도, 창업은 물론 길을 나서지도 못했습니다. 귀신에게 날을 받아야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써 그런 저주의 굴레에서 놓여났습니다. 우리의 운명과 우리의 가계에서 모든 저주의 기운이 물러갔습니다. 집안을 말끔히 소제하고 대대로 유전되던 죄의 굴레를 다 끊어냈습니다. 이 사실을 믿읍시다.

 

우리가 여기서 꼭 하나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자신과 가계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마귀가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에게 믿음을 전수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요 소중한 책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부분에서 소홀한 경향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243절 이하입니다. “ [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주님의 권세로 귀신이 그 집에서 분명 쫓겨났습니다. 이제 그 사람의 운명은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소제되었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이 귀신을 보십시오. 주님의 보혈이 무서워 쫓겨나 돌아다니다가 혹시나 해서 다시 그 집에 와본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집이 깨끗이 소제된 채 텅 비어 있다는 겁니다. 이게 우리가 늘 실패하는 이유입니다. 분명 유전되던 저주의 고리를 끊어냈습니다. 이제 우리 안에 성령을 모셔야 하는데 빈 집으로 남겨뒀다는 겁니다. 그러면 마귀가 자기보다 더 독한 것들을 데리고 와서 그 사람의 이전 형편이 더 고약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몰아내고 보혈로 우리의 모든 허물을 씻고 망가진 영혼을 복원했으면 더는 빈 집으로 방치하지 않고 성령으로 가득 채워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됩니다. 성령으로 가득 채워 우리 몸과 마음이 그야말로 성령의 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성령이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 가계를 지배하게 해야 하는데, 청소만 하고 비워두니까 귀신이 그걸 확인하고 더 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그 집을 점령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의 마지막 대목이 중요합니다.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이 얼마나 무서운 경고입니까? 조상의 저주로부터 참 자유하기를 바라십니까? 진심으로 여러분의 자녀가 잘 되고 자손 천 대까지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진심으로 포악한 귀신으로부터 여러분의 가정을 지키고 싶으십니까? 무당이나 점쟁이 찾지 마시고 주님을 믿고 사랑하십시오. 또한 소제되고 수리된 집을 빈 집으로 방치하지 말고 성령으로 가득 채우십시오. 그것이 가계를 통해 흐르던 저주의 악순환을 끊는 유일한 비책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의 자녀가 천 대까지 복을 누리는 절대적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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