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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압살롬과 솔로몬
설교본문 잠 23:22-26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5-12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512m.mp3

20190512m

잠 23:22-26

압살롬과 솔로몬


(잠 23:22-26, 개정) [22]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23]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24]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26]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압살롬과 솔로몬인데 그들은 형제지간입니다. 다만 그들은 이복형제입니다. 그런데 둘은 참으로 대조적입니다. 압살롬은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 패륜아입니다. 그는 아버지 가슴에 못을 박고 피눈물을 흘리게 한 천하의 불효자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아비의 유지를 받들고 홀어머니를 끝까지 모신 절세의 효자입니다. 


우선 압살롬부터 생각해봅니다. 다윗의 아내는 성경에 이름이 나온 사람만 약 10여 명입니다. 그의 자식은 약 20명입니다. 압살롬의 어머니는 네 번째 부인 마아가가 낳은 다윗의 셋째 아들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대단했습니다. 우선 그의 외모가 출중했습니다. 사무엘하 14장 25절 이하입니다. “[25]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26]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그는 용모가 준수하고, 특히 그의 긴 머리카락이 자랑거리였습니다. 실제 다윗도 압살롬을 총애했습니다. 사실 다윗은 그를 후계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다윗의 장자 암논이 압살롬 누이 다말을 범합니다. 다말이 바로 압살롬의 누이동생입니다. 압살롬이 은밀히 복수의 칼을 갈다가 마침내 그를 살해합니다. 사무엘하 13장을 보면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이 옷을 찢고 땅에 누워 여러 날 심히 통곡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압살롬의 만행이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반역을 모의합니다. 그래서 다윗의 심복 아히도벨까지 매수해 아버지 등에 칼을 꽂습니다. 사무엘하 15장 13절 이하입니다. “[13]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14]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이때 다윗은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왕궁을 빠져나와 울며 감람산을 넘었습니다. 


충과 효 대신에 반역과 불효를 일삼으며 형을 살해하고 아비까지 해치려고 했던 압살롬은 복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진압군과 싸우다가 전세에서 밀리자 후퇴하다가 숲속에서 어처구니없이 죽음을 맞습니다. 그가 자랑하던 길고 탐스런 금발이 상수리나무에 걸리고 맙니다. 그를 쫓던 진압군 대장 요압이 매달려 있는 압살롬 심장에 단창 세 개를 꽂습니다. 이것이 압살롬의 최후입니다. 


그 처참한 소식을 보고 받은 다윗은 이렇게 합니다. 사무엘하 18장 33절입니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이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반역을 일으킨 아들이지만 막상 아들이 비명횡사하자 다윗은 그렇게 슬퍼합니다. 다윗이 너무 슬피우니까 신하들이 찾아가 항의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죽음을 가슴 아파했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에베소서 6장 1절 이하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의 제5계명을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계명은 외마디 명령이지만, 5계명은 다릅니다. 복이 약속되어 있는 계명입니다.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한다는 약속이 붙어 있습니다. 역으로 불효하면 잘 될 일도 장수할 일도 없다는 말입니다. 압살롬이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불효의 화신이었다면 솔로몬은 효의 모범입니다. 솔로몬의 어머니는 밧세바입니다. 그녀는 다윗의 여덟 번째 아내입니다. 다윗의 다른 아내들은 사랑과는 관계없이 정략결혼한 사이입니다. 밧세바 만큼은 비록 불륜이긴 하였지만 로맨스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다윗이 그녀를 좋아했습니다. 그녀에게서 솔로몬이 태어납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사랑하던 이상으로 솔로몬을 사랑했습니다. 마침내 솔로몬이 왕권을 계승합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후 제일 먼저 남긴 업적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것이 아비의 숙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늘 자기는 백향목 궁전에서 사는데 하나님은 저 초라한 성막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죄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성전 건축이 숙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다윗의 손에 피가 많이 묻어있었기 때문에 성전 짓기에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대신에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자신의 소원이 아니라 선친의 유지였습니다. 솔로몬이 최우선으로 아비의 소원을 풀어드린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열왕기상 2장을 보면 솔로몬이 어머니에게 효를 맹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솔로몬은 결코 어머니를 괄시하지 않으며,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많이 주십니다. 인류 역사상 그보다 부를 누리고 지혜로운 왕이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런 절세의 효자 솔로몬이 알려주는 효도법입니다. 먼저 부모에게 청종하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식의 도리 첫째가 순종이라고 합니다. 신명기 21장 18절 이하, 출애굽기 21장 17절 이하, 잠언 3장 17절을 보면 부모 말씀을 청종치 않는 자식은 돌로 쳐죽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극단적으로 부모에 대한 청종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 청종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연장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에게 복종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공경,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청종이 부모 공경, 부모의 말씀에 대한 청종을 통해 검증되고 확인됩니다. 열왕기상 2장 1절 이하에는 다윗이 임종 직전에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그 내용은 딱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라는 것입니다. 나라를 잘 지키고, 영토를 넓히고, 군대를 강하게 키우라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청종이 다윗의 유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려면 먼저 부모님 말씀을 청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도 아버지 뜻을 청종해서 아름다운 예루살렘 성전을 봉헌했고, 홀어머니 어머니에게 효를 맹세하며 순종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바라시는 진정한 효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성경은 주님도 죽기까지 아버지 뜻에 복종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했다고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 앞에서 아버지의 뜻을 내세웠습니다. 이것이 청종입니다. 부디 부모님 말씀에 청종합시다. 효자 솔로몬의 첫 번째 당부입니다. 


다음은 부모를 무시하지 말라고 합니다. 늙은 부모를 경히 여기지 말라는 말씀은 부모가 늙었다고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요즘 자식들의 학대와 구타를 견디지 못해 무작정 가출하는 고령의 부모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신명기 27장 16절을 보면 부모를 경히 여기면 반드시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부모를 무시하고 학대하면 하나님이 절대 가만 두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하든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실패가 아니라 성공하려면 반드시 부모를 경히 여기지 않고 존중하며 효를 다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우리가 현세에서 잘 되고 복을 받는 것은 뜻밖에도 효와 연동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습니다.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서로 안 모시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일단 돌아가시고 나면 제사는 악착 같이 지내려고 합니다. 그래야 복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은 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잘 모시는 것이 복 됩니다. 


본문 23절입니다.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이것은 부모님의 바람과 기대를 저버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부모는 자식에 대한 바람이 있습니다. 유대인 부모는 자식들이 진리를 사고, 평생 명철을 좇아 살기를 주문했습니다. 아무튼 자식들은 최대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며 사는 게 옳고 바람직합니다. 그것이 부모에게는 큰 보람과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 부모님의 기대에 한참 못 미칩니다. 물론 부모도 자식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야 합니다. 맹목적으로 자식을 과대평가하며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이 이뤄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더는 현실성이 없습니다.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게 과도하지 않은 바람이라면 자식은 항상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옳습니다. 솔로몬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부모의 바람과 기대에 누구보다 충실히 응답하며 살았습니다. 아버지의 유지와 어머니의 소원을 잘 들어드렸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남다른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렸습니다. 그렇게 그는 40년간 이스라엘을 태평성대로 이끌었습니다. 


솔로몬처럼 부모님께 효를 다 합시다. 그래서 우리의 생애가 복 있고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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