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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디도에게
설교본문 딛 2:4-5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5-05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505m.mp3

20190505m 

딛 2:4-5

디도에게


[4]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5]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본문은 사도 바울이 디도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디도는 유대인이 아니라 그리스 사람입니다. 그는 바울의 전도를 받아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 못지않게 디도를 사랑했습니다. 디도가 그만큼 신실하고 성실한 바울의 젊은 동역자였습니다. 디도는 평생 에게해 남쪽 끝에 있는 그리스 최대의 섬 그레데(현 크레타) 섬에서 목회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베네치아 성마르코 대성당 지하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디도를 성자로 신봉하고 있습니다. 


4절입니다.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그렇다면 여기서 왜 바울이 크레타 교회 목회자인 디도에게 젊은 엄마들의 남편 사랑과 자녀들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고 있는 걸까요? 이것은 사실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럼에도 바울이 여기서 젊은 엄마들의 남편과 자녀 사랑을 강조한 것은 그들에게 필요한 신앙 교육의 의미를 깨우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놓쳐서는 안 될 교훈이 엄마의 사랑에 있습니다. 엄마의 사랑은 하나님 사랑의 모형입니다. 이 사실을 교육하라는 당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하나님 사랑의 최대 근사치가 엄마의 사랑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모두 상대적입니다. 조건반사적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이 세상의 사랑은 장삿속입니다. 내게 이익이 되어야, 명분이 있어야, 생색이 나야 사랑합니다. 그래서 철저히 계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상대적입니다. 나라 사랑도 이성간의 사랑도 심지어 부부간의 사랑도 마찬가집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안 되면 사랑하다가도 철회합니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이혼이나 의절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세상 사랑입니다. 거추장스럽다고 제 부모를 살해하는 자식도 있습니다. 짐스럽다고 여행가자며 제주도 모시고 가서 버리고 오는 자식도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전에는 제주도에 가서 반려동물 버리고 온다더니 요즘은 부모를 버리고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 엄마의 사랑만큼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막장으로 가도 엄마의 자식 사랑만큼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엄마의 사랑이 절대적인 하나님 사랑을 닮아서 그렇습니다. 엄마는 정말 자식을 위해 다 내주고도 더 줄 게 없어 안타까워합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되 자신의 독생자까지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극단적으로 사랑하신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놀랍게도 하나님과 원수된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배신한 세상, 대적한 세상입니다. 어디를 봐도 예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나쁜 세상인데도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저주하는 세상인데도 당신의 독생자를 무참하게 희생시키면서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엄마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원수 아닌 자식 있습니까? 자식은 다 원수입니다. 그럼에도 엄마는 끝까지 자식을 사랑하고 품습니다. 하나님을 닮아서 그렇습니다. 엄마의 사랑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벌써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엄마의 사랑이 있었기에 인간의 악한 마음, 파괴적 정서가 순화되어 이 정도라도 세상 질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엄마는 다 하나님 사랑의 중보자들입니다. 엄마는 모성을 통해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하나님 사랑의 홍보대사들입니다. 그러므로 자식은 엄마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간접 체험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빠는 무엇입니까? 아빠는 하나님 권위의 상징입니다. 가정의 질서를 잡고 기강을 잡는 것은 아빠 몫입니다. 엄마는 아무리 소리 지르고, 매를 들어봐야 위엄이 안 섭니다. 그럼에도 요즘 아빠들은 시간 없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하나님 권위를 대행하는 일을 포기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막 나가고 있습니다. 아빠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어른들에 대한 권위, 선생에 대한 권위, 지도자에 대한 권위,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권위도 다 무너졌습니다. 아빠에게서 권위를 배우지 못해 그렇습니다. 아빠가 그 권위를 포기한 데서 온 필연의 결과입니다. 여러분, 엄마의 사랑이 이 세상의 최후 보루입니다. 부디 바울의 당부처럼 모든 엄마에게 하나님 사랑을 깨우치는 사랑의 전도사가 됩시다.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젊은 엄마의 사랑이란 것이 아가페나 스톨게가 아니라 필레오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은 필레오의 동사형인 필리아입니다. 왜 엄마의 사랑이 하나님 사랑인 아가페가 아니고, 가족간의 사랑인 스톨게가 아닐까요? 왜 엄마의 사랑이 친구간의 사랑인 필레오일까요? 아빠들은 친구가 되어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같은 눈높이에서 아이들의 정서를 공감하지 못합니다. 엄마들도 사실은 그렇습니다. 엄마들은 자칫하면 맹목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스톨게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필레오를 주문합니다. 엄마가 자녀들의 소중한 친구가 되라는 겁니다. 이것이 성경이 젊은 엄마들에게 주문하는 구체적인 자녀 사랑의 모범입니다. 자녀들을 맹목적인 스톨게 말고 친구처럼 대하며 우정 같은 필레오로 사랑합시다. 그래야 여러분의 자녀들이 더욱 밝고 건강하고 정서에 그늘이 생기지 않습니다. 아빠는 엄격하고 엄마마저도 일방적이면 자녀들은 숨 쉴 공간이 없어집니다. 


본문은 아내의 남편 사랑도 에로스가 아니라 필레오라고 합니다. 남편이든 자녀든 필레오로 사랑하라는 겁니다. 이것이 뜻밖이지 않습니까? 결혼 전까지는 이성간의 사랑인 에로스라고 하더라도 결혼한 다음에는 남편의 가장 가까운 친구, 남편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어 사랑하는 겁니다. 이것이 진정한 남편 사랑이라는 겁니다. 부부간의 사랑이 초월적인 아가페도 아니고 그렇다고 육체적인 에로스도 아닙니다. 우정 같은 필레오입니다. 친구 같은 남편, 친구 같은 아내입니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의 가르침입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교회에서 이렇게 교육하라고 합니다. 자녀들뿐 아니라 남편도 필레오로 사랑하는 엄마와 아내가 되기를 바랍니다. 


엄마 사랑의 최선의 실천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치라는 것이 바울의 당부입니다. 기도 없는 자식 사랑은 없습니다.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자식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도 하나님도 몰랐던 우리 조상들은 새벽마다 정화수 떠놓고 천지신명에게 빌었습니다. 이게 최선의 자녀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자식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기독교나 이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식 사랑의 최대 실천은 언제나 기도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는 자식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죄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어거스틴의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자녀는 엄마의 기도 없이 자라는 자식입니다. 우리는 한나의 기도를 떠나서 사무엘을, 유니게의 기도를 떠나 디모데를, 모니카의 기도 없는 어거스틴, 수산나의 기도 없는 웨슬레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습니까? 기도로 키운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니카의 좌우명이 아니라 이 시대 모든 엄마가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여러분, 자녀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십니까? 자녀가 수험생 정도가 되지 않으면 정작 부모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자녀가 비뚤어지지 않고 잘 자라는 걸 보면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면서도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걸 보면 참으로 대단합니다. 자식 사랑을 돈이나 입으로 떼우지 맙시다. 돈으로 사랑하면 자식을 망칩니다. 아침저녁으로 내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것보다 더 숭고한 엄마의 사랑은 없습니다. 바울이 디도에게 이 사실을 젊은 엄마들에게 가르치라는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 해 전에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사실은 엄마가 자녀들의 미래입니다. 엄마의 기도에 자녀들의 미래가 달렸습니다. 엄마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게 가장 아름다운 자녀의 미래를 보장합니다. 엄마의 기도가 자녀의 희망입니다. 그걸 가르치라는 것이 바울의 당부입니다. 특히 젊은 엄마들에게 말입니다. 좀 더 많이 사랑하고 좀 더 많이 기도하여서 여러분의 자녀들이 엄마의 사랑과 기도로 다 복 있고 장래가 아름답고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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