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71
Extra Form
설교제목 겨자씨와 누룩
설교본문 마 13:31-33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4-28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428m.mp3

20190428m

마 13:31-33

겨자씨와 누룩


(마 13:31-33, 개정)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본문은 주님의 다른 비유에 비해 간결하고 담백합니다. 그런데 절수는 불과 3절이지만 비유는 두 개입니다. 31절입니다.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3절도 보십시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겨자씨와 누룩 비유가 쌍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서에 나오는 여러 비유 가운데 가장 짧고 단순한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의 눈이 얼마나 예리한가, 주님의 통찰력이 얼마나 날카롭고 비범한가를 거듭 확인하게 됩니다. 


본문의 겨자씨와 누룩 비유는 공관복음서에 다 나오고, 외경인 도마복음에도 나옵니다. 다만 도마복음에는 이 두 비유가 쌍은 아닙니다. 겨자씨는 도마복음 20장에, 누룩은 도마복음 96장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 비유가 공관복음서뿐만 아니라 외경에도 등장한다는 것은 이것이 비록 길지는 않지만 일찍부터 대단히 중요한 말씀으로 다뤄져왔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겨자씨 비유부터 살펴봅니다. 31절 이하입니다. “[31]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내용도 이와 거의 같습니다. 도마복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은 씨입니다. 우리는 흔히 작은 것을 눈꼽 만하다고 하는데 유대인들은 겨자씨만하다고 합니다. 겨자씨를 헬라어로 미크로라고 합니다. 영어의 마이크로가 이 미크로에서 유래했습니다. 먼지 같은 씨앗이지만 이게 땅에 심겨 자라면 3.5-4m까지 성장한다고 합니다. 이정도면 요즘 아파트 2층 높이입니다. 어떻게 그 먼지 같은 씨앗이 그렇게 큰 나무가 됩니까? 그것도 1년생 식물인데 말입니다. 대체 하루에 얼마나 자라면 12달도 안 되어 날아가는 새가 깃들인다는 것인지 생명의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 한 알의 겨자씨에서 천국의 신비를 본 것입니다. 신앙세계, 교회의 저력을 보신 겁니다. 천국은 저 작디작은 겨자씨 한 알의 경이로움과 같으니 절대 과소평가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작고 먼지 같아서 불면 당장이라도 날아가 버릴 것 같으나 땅에 심겨 때가되면 기적과 같은 모습으로 커서 1년생 풀이 아니라 날아가는 새가 둥지를 틀만큼의 나무가 된다는 겁니다. 주님은 이 겨자씨에서 천국을 보시고, 신앙과 교회의 무한한 잠재력을 보신 것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7장 20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누가복음 17장 6절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요즘 농사짓는 분들, 주말 농사하는 분들은 바쁠 때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신 믿음이란 지금 봄농사짓는 분들이 한창 심고 있는 호박씨나 완두씨만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작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만 있어도 우리 앞에 놓인 저 크고 작은 산들을 들어서 먼 곳으로 옮길 수 있다고 하십니다. 뽕나무까지도 뿌리 채 뽑아 바다에 던질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믿음의 힘이란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하며 그 생명력이 경이롭습니까?


그런가 하면 우리는 믿음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도 없는 것 같습니다. 10년, 20년, 30년, 40년을 신앙생활하고도 우리의 모습은 아직도 이렇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노릇입니까? 


어쨌든 주님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겨자씨 한 알에 주님은 모든 것을 담아내셨습니다. 교회의 저력, 믿음의 무한한 잠재력도 겨자씨 한 알에 다 담아내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욥기 8장 7절 말씀처럼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합니다. 주님의 존재도 마찬가집니다. 처음 탄생 때 누가 주님을 알아봐줬습니까? 처음에는 눈에 띄지도 않는 겨자씨 한 알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 모든 사람이 그분의 그늘에서 쉬고 먹고 마시는 지구촌에서 가장 큰 나무가 되셨습니다. 주님이 세상을 떠나며 제자들에게 명하신 최후 당부를 들어보십시오.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보지 못한 제자들에게 주님은 땅끝까지 가라고 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하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11명이 120명이 되었고, 소아시아와 로마를 정복하고, 구라파를 정복하고 마침내 전 세계로 복음이 전파되어 그야말로 모든 새가 깃들이는 위대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나무로 치면 역사상 기독교 나무보다 더 큰 나무가 있을까요?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라는 나무보다 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을까요?


그러면 우리 교회는 어째서 이렇다 할 성장이나 발전을 꾀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요즘 씨앗은 해를 지날수록 발아율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텃밭 농사를 지어보니 씨를 잘 구입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해 농사가 성공합니다. 그런데 연꽃 씨앗은 300년이 넘어도 습도나 온도가 맞으면 싹이 납니다. 2005년에 이스라엘 맛사다에서 작은 독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거기에 씨앗이 담겨 있었습니다. 연대 측정을 해보니 그 씨앗이 2000년이 넘었습니다. 약 30종의 씨앗이 담겨져 있었는데 그 씨앗을 심어 발아를 시도해봤습니다. 싹을 틔운 것은 겨자씨였습니다. 31포기가 발아되어 자랐다고 합니다. 170cm까지 자랐습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겨자씨보다 폭발적인 생명력을 가진 씨앗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명력이 강한 겨자씨라 해도 환경이나 조건이 맞지 않으면 2000년이 지나도 그냥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 조건이 충족되면 순식간에 발아하고 뿌리를 내려 무섭게 자랍니다. 우리 교회도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교회는 겨자씨 한 알과 같기 때문입니다. 환경이 여의치 않으면 웅크리고 있다가 온도나 습도가 적정하면 폭발적으로 큽니다. 겨자씨는 1년생입니다. 2000년까지도 웅크리고 있던 겨자씨가 발아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교회도 기지개를 켜고 다시 놀라운 생명력을 발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의 겨자씨 비유를 기억하며 절대 희망을 접지 맙시다. 주님이 괜히 겨자씨로 교회를 비유하지 않았고, 복음의 생명력을 비유한 게 아닙니다. 이것은 계시입니다. 


다음은 누룩 비유입니다. 33절입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말씀드린 대로 누룩 비유도 외경인 도마복음에 나옵니다. 누룩 비유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겨자씨는 외적 성장이 주제였다면, 누룩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질적 변화입니다. 내적 변혁이 주제입니다. 밀가루 서 말에 누룩 한 줌을 넣으면 부풀어 올라 부피도 늘지만 그것보다는 발효가 되어 밀가루의 성질이 변합니다. 누룩을 넣지 않은 거친 무교병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비록 한 줌 누룩이지만 가루 속에 들어가면 그 가루 전부를 변화시켜서 그렇습니다. 성질을 바꿔서 그렇습니다. 처음 가루 서 말에 누룩 한 줌을 넣을 때만 해도 당연히 양이 압도적으로 많은 서 말 가루가 이스트 가루를 흔적도 없이 삼킬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줌 누룩이 서 말 가루를 삼킵니다. 이게 바로 천국 혁명이고 복음 혁명이고 믿음의 혁명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무섭고 복음이 위대합니다. 


복음은, 기독교 신앙은 겨자씨 한 알처럼 외적으로도 기적 같이 성장 발전케 하지만, 내적으로도 마치 한 줌 누룩이 가루 서 말을 발효시키듯이 그렇게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나라를 변화시키고 변혁시키고 새롭게 합니다. 믿음에는 그런 힘, 신비한 성령의 권능이 있습니다. 여기에 계신 분들도 예수 믿고 많이 변했다고 느끼는 분들 계실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누룩이 내 안에서 나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믿음이 내 인격, 정서, 가치관, 생활 습관을 변화시켰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사회 속에서 해야 할 역할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누룩이 바로 너희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유대교 전사로서 기독교 박멸운동의 선봉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속에 복음, 기독교 신앙이라는 누룩 한 줌을 넣자 완전히 뒤집어 졌습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고, 유대교 전사가 복음의 전사가 되고, 율법의 사도가 기독교의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게 바로 누룩의 혁명이고 신앙으로부터 오는 내적 혁명입니다. 어거스틴도 보십시오. 희대의 탕아였는데 복음의 누룩이 한 줌 들어가자 바울 이후 2000년 기독교사의 위대한 성자가 되었습니다. 


밀가루가 발효되어 빵 반죽으로 변화되듯이 그렇게 변해야, 새로워지고 거듭나고 혁신이 되어야 그것이 진정한 기독교 신앙이며 교회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신앙이나 공동체는 겨자씨와 누룩이 함께 가야 합니다. 그래야 아름답고 건강합니다. 외적으로도 성장 발전해야 하고, 내적으로도 성숙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게 주님이 기대하고 바라는 신앙의 진정한 부흥입니다. 여러분, 개인도 우리 교회도 겨자씨 같은 외적 성장만 아니라 누룩 같은 내적 성숙도 같이 도모해야 합니다. 늘 누룩과 겨자씨를 함께 추구하는 성도가 됩시다. 오늘 창립기념주일을 맞은 우리 교회가 되어야 주님도 기쁘게 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데도 미력이나마 기여할 수 있고, 개인도 주님이 주시는 행복한 삶을 누리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성숙해갈 수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 이 사실을 거듭 확인합시다.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