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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구레네 시몬의 십자가
설교본문 막 15:21-23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3-31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331me.mp3

20190331m

막 15:21-23

구레네 시몬의 십자가


(막 15:21-23, 개정)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이미 탈진상태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체포되신 후 밤새도록 대제사장과 헤롯 그리고 빌라도에게 끌려다니며 고문당하고 심문당하며 갖은 조롱과 모욕을 다 당하셨기에 성금요일 새벽 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을 선고 받을 때는 이미 심신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바로 앞부분입니다. 16절 이하입니다.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주님은 밤새도록 이런 일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로마법에 의하면 사형수는 자기 형틀을 지고 형장까지 갔습니다. 주님도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까지 약 1.5km의 거리(비아 돌로로사)를 십자가를 지고 가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여러 번 쓰러진 겁니다. 그때마다 로마 군인의 채찍이 가해졌습니다. 


비아 돌로로사는 후대에 14구간으로 구분했습니다. 5번째 구간에서 주님이 쓰러졌을 때 더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형집행관 백부장이 사태를 파악하고 마침 거기에 있던 건장한 흑인을 붙잡아 주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합니다. 그 사람이 구레네에서 온 시몬이란 사람입니다. 21절 이하입니다.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구레네는 지금의 북아프리카 리비아입니다. 벌써 10년이 된 것 같습니다. 리비아를 40년간 통치하던 독재자 가다피가 반군에게 10년 전에 살해당했습니다. 가다피가 독재하던 리비아가 본문의 구레네입니다. 그러면 북아프리카 사람이 어떻게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을까요? 일단 그의 이름 시몬이 전통적인 유대식입니다. 아마 그는 일찍이 북아프리카에 이주해 살던 디아스포라였던 것 같습니다. 그가 당시에 예루살렘에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유월절 때 예루살렘 순례객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침 그때 주님의 십자가 행진이 있었는데 그가 졸지에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대신 지는 강제 부역을 당한 것 같습니다. 


그는 아마 처음에는 사형수의 형틀을 대신 지고 갔으니 얼마나 죽을 맛이었을까요? 그가 진 십자가는 억지 십자가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십자가는 누구나 억지로 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즐겁고 기꺼운 마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십자가는 십자가이기에 누구에게나 힘들고 수치스럽습니다. 주님도 십자가를 피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4장 33절 이하입니다.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6절도 보십시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여기서 이 잔은 십자가의 죽음의 잔입니다. 주님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억지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버지의 원대로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면 반드시 복 받는 게 십자가입니다. 


조선시대 17대 왕 효종의 일화입니다. 효종이 민정시찰을 나갔는데, 어떤 이가 노모를 업고 힘들게 길을 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왕이 묻습니다. ‘그대는 어디로 가는가?’ ‘노모의 평생 소원인 임금님의 용안을 뵈려고 갑니다. 이제 어머니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게 되었습니다.’ 효종이 아들의 효를 가상히 여겨 후한 상을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노모를 업고 길을 갑니다. 효종이 묻습니다. 노모를 업은 이가 준비한 것으로 대답합니다. 그런데 동네 사람이 그를 욕합니다. ‘저 사람은 불효자인데 상 받으려고 저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효종은 그에게 상을 줍니다. 효는 그렇게 흉내라도 내야 옳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효뿐 아니라 십자가도 비록 흉내 내는 것이라도 귀합니다. 그런데 요즘 십자가를 지려는 흉내도 내지 않습니다. 요즘은 교회 선택에 있어 십자가 없는 교회가 기준입니다. 아무 부담도 없이 편하고 우아하게 예수 믿을 수 있는 교회를 찾습니다. 이제는 주님이 가신 비아 돌로로사를 걷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반드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또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넓은 문은 사망과 멸망의 길인데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져야 하고, 사서라도 좁은 비아 돌로로사의 길을 지나 골고다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면 은혜를 입습니다. 


구레네 시몬을 보십시오. 졸지에 당한 억지 십자가 사건으로 그의 인생은 획기적으로 변합니다. 일생 일대의 놀라운 복을 경험합니다. 21절을 다시 보십시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합니다. 유대 사람은 성이 없기에 아버지의 이름을 대면서 아들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시몬의 경우는 두 아들의 이름을 대며 그들의 아버지 시몬이라고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여러분 류재천 씨가 누군 줄 아십니까? 그러나 LA 다저스의 류현진 선수의 아버지 유재천이라고 하면 아시겠지요? 손웅정 씨는 아십니까? 그러나 토트넘 손흥민의 아버지라고 하면 아시겠지요? 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유명해서 아들 이름을 대면 아버지를 알아보는 겁니다. 본문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시몬의 이름을 대면서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시몬이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후 약 30년이 지나 주후 65년경에 마가복음이 기록될 때 그의 두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가 어디서나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미 그들이 류현진 선수나 손흥민 선수처럼 당대 스타가 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로마서 16장 13절입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바울은 그들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라고 까지 합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도 보십시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이름 없는 아프리카 출신 시몬이 강제로 주님의 십자가를 경험한 후 회심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로부터 일생 동안 주님의 십자가를 증거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로마와 안디옥 교회에서도 많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초대교회의 훌륭한 지도자가 되었는데, 심지어 그의 아내까지도 바울이 내 어머니라고 할 만큼 신실한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두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는 아버지보다 더 훌륭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억지로나마 구레네 시몬이 주님의 십자가를 거든 결과입니다. 그가 잠시나마 주님의 골고다 길을 같이 걸은 보상이요 대가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십자가를 한 귀퉁이라도 붙잡고 묵묵히 가면, 조금이라도 주님의 고난에 함께 동참하면, 주님의 비아 돌로로사를 함께 걸으면 그게 비록 억지라 해도, 주님의 남은 고난을 내게 조금만 채우면 반드시 복 받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도 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자기만의 고유한 십자가가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남편, 아내, 자식이 평생 십자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놀랍게도 목사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피해 달아나지 마십시오. 더 혹독한 십자가를 만납니다. 십자가를 회피하지 마시고 지고 갑시다. 내 몫의 십자가는 누가 대신 질 수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내가 지고 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노래만 하지 말고 억지로라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갑시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주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대신 지고 골고다를 오른 구레네 시몬처럼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복을 경험하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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