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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신앙과 예배
설교본문 롬 12:1-2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3-24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324m.mp3

20190324m

롬 12:1-2

신앙과 예배


(롬 12:1-2, 개정)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 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표준 교리서인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서 제1항은 사람이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웃의 허물을 용서하고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형제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은 모두 아름답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일단 사람에 대한 자선이고 사랑이며 선행입니다. 


오늘 주제인 예배는 다릅니다. 예배는 보다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래도 언제 하나님께 집중합니까? 예배드릴 때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하나님을 거의 잊고 살다가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때는 그래도 나름 진지하게 하나님을 의식합니다. 한 주간 내내 찬송 한 번 안 부르고 살다가도 주일에 교회에 오면 찬양을 합니다. 기도 안 하고 살다가도 예배드릴 때는 잠시라도 기도합니다. 성경 안 보고 살다가도 예배 때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예배드릴 때보다 하나님께 집중하고 교감하고 진지하고 경건한 순간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드릴 때 가장 기뻐하시고 영화로워하십니다. 


우리는 예배를 단순히 의식으로 통과의례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드릴 때 우리의 기도, 신앙고백, 예물도 받으시며 영광을 누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우리의 예배 행위를 높이 평가하시며 영광스러워하십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가 우리 삶의 제1순위입니다. 이것을 장로교 교리문답서가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얼마든지 예배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를 소홀히 하면 아파하십니다. 우리는 무조건 예배부터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다 똑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영적 예배가 있습니다. 영적 예배는 우선 우리의 몸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 가운데는 죽은 제물도 있고 산 제물도 있습니다. 죽은 제물로 바치는 제사는 당연히 죽은 제사이고, 산 제물을 바치는 것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산 제물을 바치는 영적 예배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몸은 육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영과 육과 혼, 곧 존재 전부를 가리킵니다. 구약 때는 짐승을 잡아 죽은 제물을 드리며 예배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죽은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복음 시대를 사는 우리는 우리의 몸, 존재 전부를 바치는 산 제사를 바쳐야 합니다. 자기의 전 존재를 제물로 바치지 않고 형식이나 요식, 헌금만 바치면 그것은 결코 내 존재 전부를 바치는 산 제사가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 19절 이하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제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께서 값을 지불하고 사셨기에 우리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을 바쳐야 진정한 영적 예배라는 것입니다. 형식이나 건성, 습관이 아니라 우리의 몸, 우리 존재 전부를 산 제물로 바치며 살아 있는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적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영적 예배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2절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면 그것으로 영적 예배가 다 끝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배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될까요?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찬양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야 하기에 예배를 통해 그 뜻을 깨닫고 분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음 앞에서도 주님처럼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마지막 날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와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다며 어떤 상을 주시겠냐고 할 때, 주님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라고 하십니다. 주의 이름으로 숱한 권능을 행했다는 것이 어째서 불법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좇아서 권능을 행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영광과 돈벌이를 위해 했기에 주님은 불법이라 규정하십니다. 그게 무엇이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대로 하는 것이 합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를 통해서 이뤄집니다. 우리가 예배 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깨닫지 못한다면 그 예배는 실패한 예배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늘 영혼의 촉을 예민히 세우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바로 그런 자세로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그분의 뜻을 분별했습니다. ‘주여 말씀하옵소서. 제가 듣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뜻을 분별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요즘은 그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합니다. 심각해지기 싫어서 그렇습니다. 양심에 자극이 오고, 하나님 뜻에 대한 깨달음이 오면 실제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 변화 없이 살던 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즘 암암리에 만연한 한국 교회의 전반적 풍조입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예배 한 번 참석하고 가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고의로 하나님의 뜻을 기피하는 예배는 절대로 영적 예배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는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 받는 예배입니다. 2절 상반절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영적 예배는 예배자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놀라운 변화를 체험케 합니다. 요즘은 어지간한 자극에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웬만한 것들은 밋밋할 뿐입니다. 그래서 뒤틀리고 악마적이어야 통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황폐해졌다는 뜻입니다. 대중의 정서가 누구도 변화시키거나 새롭게 하기 어려운 최악의 상황까지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선생님이나 사회 명사들이 사람들을 교육합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인문학 강연도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영적 예배만큼은 얼마든지 사람을 새롭게 하고 놀라운 변화를 체험케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우리가 아무리 은혜를 경계하고 깨달음을 피하고 싶어도 예배의 영인 성령이 우리를 압도하고 강제하면 가능합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영적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가 영적 예배를 드리면 성령이 우리를 압도하고 뒤집어 놓기에 우리가 아무리 사양해도 변화됩니다. 우리는 불가항력적으로 새로워집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막장으로 치닫는 세상을 따라가면 철저히 세속화된 교인이 되지만, 영적 예배에 충실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여전히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변화되는 성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부디 오늘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큰 깨달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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