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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신앙과 고독
설교본문 요 16:32-33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3-10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310m.mp3

20190310m

요 16:32-33

신앙과 고독


(요 16:32-33, 개정)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어제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730일간의 절대고독이 떴습니다. 내용은 박 전 대통령이 탄핵 후 지난 2년간 구치소 독방에서 730일을 지냈다는 겁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거부한 채 절대 고독 속에서 지난 2년간 살았습니다. 


구약 창세기 1장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때마다 자신의 소감을 말씀하십니다. 첫째 날에는 빛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다고 합니다. 둘째 날은 궁창을 창조하고 역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합니다. 셋째 날은 각종 나무와 채소를 창조하시고도 좋았다고 합니다. 넷째 날은 하늘의 별과 달을 창조하시고, 다섯째 날은 물고기와 각종 짐승을 창조하시며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십니다. 여섯째 날에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는 하나님이 이렇게 하십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아니라 오히려 좋지 않게 보셨다고 합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사람이 혼자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담이 혼자 사는 게 고독해보여서 별로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방을 내리시기를 그를 위해 돕는 배필을 짓겠다고 합니다. 아담을 잠들게 한 후에 갈빗대로 하와를 만들어 짝을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 사랑함으로써 고독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아담도 자기 앞에 나타난 여자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며 기뻐했고 드디어 그의 정서에서 고독이 싹 가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우리가 본래 홀로 태어난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짝을 만들어 주시기 전에는 홀로 살았습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고독한 존재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늘 각각 이었습니다. 사탄의 유혹도 하와가 홀로 받습니다. 하나님도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따로 만나 그 둘의 운명을 각각 다르게 판결하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서로 한 공간에서 살지만 각기 홀로라고 합니다. 남녀가 서로 사랑할 때는 고독이 극복된 것으로 보이지만 홀로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게 인생입니다. 


창세기는 아담과 하와가 벗고 있는 게 부끄러워 무화과나무 잎으로 가리고, 숲속으로 숨었다고 합니다. 이 역시도 인간의 원초적인 고독을 말합니다. 숨는다는 것은 자신을 공개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만의 비밀을 간직한 채 누구나 고독하게 삽니다. 아무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못합니다. 결정적 순간에는 언제나 나 홀로입니다. 병이 들어도 마찬가집니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이나 결정도 최종적으로는 내가 해야 합니다. 더구나 인간은 누구나 죽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궁극적인 고독을 느끼게 합니다. 누가 내 대신 죽을 수 있겠습니까? 삶도 죽음도 나 홀로 감당해야 합니다. 여기에 인간의 실존적 허무와 고독이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도 고독한 분이셨습니다. 역사적으로 주님만큼 인류의 찬양을 받은 분도 없지만 또 그분만큼 외로운 분도 없습니다. 32절 상반절입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당신 앞에 고독한 최후가 다가왔다는 말씀입니다. 그동안 주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이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마저도 다 도망갈 것을 예감한 것입니다. 이때 주님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홀로 달려야 할 십자가가 눈앞에 놓였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시점인데 모두가 떠난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독했겠습니까?


바울도 마찬가집니다. 바울도 자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데, 디모데후서 4장을 보면 디모데에게 어서 속히 오라고 애원하다시피 합니다. 다 떠났으니 너는 어서 속히 오되 겨울 전에 와달라고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 지하 감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가을이 점점 깊어갑니다. 그동안 가까이에 있던 동역자들이 더는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바울을 떠납니다. 아무리 순교적 믿음으로 살았던 바울이라 해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독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을까요? 믿음 좋은 사람이라해서 고독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주님도 바울고 고독했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도 다 고독합니다. 주님 가신 골고다의 길은 언제나 좁고 험하기에 찾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고독은 거의 운명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고독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은 고독을 어떻게 이기셨을까요?


우선 주님은 사람들이 다 나를 버리고 떠나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으로 고독을 이기셨습니다. 32절 하반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런 믿음과 확신으로 주님은 고독을 이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배워야 할 고독 극복의 첫 번째 비책입니다. 인간의 고독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아담의 원초적 고독도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어 주심으로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고독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다 해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으시면 나는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사람은 나와 늘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언젠가는 나를 떠납니다. 누구라도 시한부로 내 곁에 머물다 떠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절대 고아가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굳게 믿으면 주님처럼 고독을 이깁니다. 눈 먼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복을 훔친 야곱이 형을 피해 하란으로 도망치는 중입니다. 얼마나 그가 외로웠겠습니까? 그가 베델에서 노숙하다가 놀라운 환상과 함께 하나님의 육성을 듣습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반드시 아비 집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야곱이 깜짝 놀라 이렇게 고백합니다. 창세기 28장 16절입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후 야곱은 담대히 망명의 길을 떠납니다. 고독이란 결국 자기가 혼자라는 소외감, 단절감, 고립감입니다. 그런데 실은 가장 능하시고 크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으면 우리도 얼마든지 주님처럼 고독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기도로 고독을 극복하셨습니다. 본문에 이어지는 누가복음 17장 1절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시작한 주님의 기도는 17장 끝까지 계속 됩니다. 주님은 이렇게 기도함으로 고독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는 고독이라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잠글 때만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고독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고독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기도할 수 있는 나만의 골방이라 생각하면 맞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기도하시기 위해 홀로 계시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고독하십니까? 주님처럼 기도하십시오. 고독은 고뇌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기도하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기도가 고독의 처방이 될까요?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는 독백이나 주문이 아닙니다. 기도는 주님과의 속깊은 대화입니다. 주님에 대한 나의 사랑의 고백, 신앙의 고백이고, 주님의 용서와 사랑의 말을 듣는 소통이 기도입니다. 제자들마저도 다 떠나간 고독한 자리에서 주님은 하나님께 긴 기도를 드리며 그 외로운 순간을 이기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은 복음서에 나오는 주님의 기도 가운데 가장 긴 기도입니다. 주님이 홀로 하나님께 기도하심으로 고독을 이긴 것처럼 우리도 기도함으로 인생의 외로움, 소외감, 단절감을 이깁시다. 


주님은 힘껏 십자가의 좁은 길을 가심으로 고독을 이기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전체를 가득 채운 주님의 긴 기도가 끝나면 18장 1절은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주님이 가셨다는 기드론 시내 건너편 동산이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겟세마네 다음이 골고다입니다. 주님은 겟세마네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셨고 골고다에서 마침내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주님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 나아가셨다는 동선은 곧 십자가의 길이요 골고다의 좁은 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길이 좁은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이라 해도 그것이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길이었기에 주님은 기드론 시내를 건너 겟세마네로 나아가셨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하심으로써 십자가의 칠흑 같은 고독을 이기셨습니다. 주님이 분부하신 길, 자기 십자가의 길을 충실히 지는 것이 고독을 이기는 또 하나의 비결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바로 지고 골고다의 길을 열심히 가는 사람에게는 차라리 고독이 사치일 수 있습니다. 주님이 겟세마네를 거쳐 골고다에서 십자가에서 못 박힌 후 최후로 남긴 말씀이 ‘다 이루었다’입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기까지 힘껏 좁은 길을 가셨기에 인간적으로 보기에는 외로울 것 같지만 정작 본인은 고독을 느낄 겨를이 없었을 겁니다. 


주님은 고독을 겪으셨으나 그 고독을 잘 이기셨습니다. 33절입니다. “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겼다는 것은 주님이 고독을 이기셨다는 말씀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골고다의 길을 열심히 감으로써 주님처럼 고독도 이기고 세상도 이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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