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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이삭 이야기
설교본문 창 26:12-22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2-17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217m.mp3

20190217m

창 26:12-22

이삭 이야기


(창 26:12-22, 개정)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17]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본문은 창세기입니다. 창세기는 모두 50장입니다. 1-11장은 천지창조, 아담과 하와의 타락, 홍수, 바벨탑 이야기입니다. 12-50장까지는 네 사람의 족장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그들 가운데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은 175세, 이삭은 180세, 야곱은 147세, 요셉은 110세까지 살았습니다. 창세기의 지면 할애는 아브라함에게 가장 많이 배정합니다. 14장입니다. 야곱과 요셉에게는 각각 12장씩 할애합니다. 그러면 가장 오래 산 이삭에게는 달랑 한 장만 배부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인물의 비중이나 존재감이 다른 족장에 비해 떨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생애가 그만큼 평범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나 야곱이나 요셉에 비해 이삭은 삶의 우여곡절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언제나 평범한 데 있습니다. 이삭은 삶은 비록 기복이 없었지만 아름답고 은혜로웠습니다.


그의 생애를 3기를 나눠봅니다. 청소년기입니다. 아브라함의 살인적인 시험 얘기가 나옵니다. 100세에 얻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입니다. 이때가 주전 약 2050년입니다. 이삭의 나이 15-16세쯤일 때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의 이런 이야기를 대하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하나님의 비정함,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아브라함은 아무 저항이나 불평 없이 말도 안 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모리아산으로 갑니다. 백발이 성성한 아브라함이 자기 생명보다 소중한 외아들을 잡아 바치기 위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과연 아브라함도 사람일까?를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아비가 기적처럼 얻은 외아들을 잡아 바친다고 길을 가고 있을까요? 아브라함은 사흘 길을 걸어 모리아산까지 왔습니다. 나귀와 두 종은 산 아래 있게 하고, 아브라함과 이삭만 산을 오릅니다.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들고, 이삭은 나뭇짐을 지고 오릅니다. 이삭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불도 나무도 있는데 제물로 바칠 어린양이 어디 있습니까? 순간 아브라함이 얼마나 놀라고 당황하고 기가 막혔을까요?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셨을 것이라고 답합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여호와 이레>가 나옵니다. 성경에는 그런 얘기가 없습니다만, 마지막 순간에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자초지종을 다 얘기했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삭이 반항했다거나 아버지를 밀치고 달아났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아비가 멀쩡한 자식을 번제로 바치겠다는데도 다 큰 아들이 순순히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이라 해도 우리 같으면 그걸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아버지의 말에 순종합니다. 물론 부자가 부둥켜안고 울었을 겁니다. 이제 운명의 시간이 왔습니다. 제단을 쌓고 아들의 목을 따고자 칼을 갖다 댑니다. 그 순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제지하십니다. 네 아들 대신 저 수풀에 뿔이 걸린 숫양을 잡아 내게 바치라고 하십니다. 


흔히 우리는 이 극적인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만을 평가합니다. 이삭도 대단합니다. 15-16세 된 소년인데 115세 된 늙은 아버지에게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죽음을 기다립니다. 이 얼마나 불가사의하고, 순종의 극치입니까? 여러분은 창세기에 등장하는 네 명의 족장 가운데 주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 한 사람을 꼽는다면 누구를 꼽겠습니까? 저는 이삭입니다. 이삭이야말로 주님을 가장 닮은 모형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못 박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오르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모리아산이 어떤 산입니까? 역대하 3장 1절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모리아산은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산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시온산에 건설되었는데, 시온산의 한 봉우리인 골고다에서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의 이삭 바친 사건을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았다고 합니다. 이삭만이 아니라 주님도 사흘 만에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다음은 이삭의 장년기입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는 말씀이 나옵니다(창 24:63). 이삭은 야곱처럼 밤 새워 씨름한 적은 없지만 언제나 사색하며 살았던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일과를 끝내고 조용한 시간에 들에 나가 묵상했다고 합니다. 아마 결혼 문제로 기도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아내 리브가를 만납니다. 그때가 이삭 나이 40세였습니다. 이삭은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습니다. 창세기 25장 21절입니다.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이 때는 이삭이 60세 된 때입니다. 20년간 이삭은 자식 없이 살았습니다. 이때 그의 이복형 이스마엘은 아들이 12명이나 되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도 100세가 되도록 자식이 없었는데, 이삭도 60세가 되도록 자식이 없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20년은커녕 10년도 못 되어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그렇게 하지 않고 20년을 참았습니다. 그러다가 기어이 하나님의 응답을 얻습니다. 이삭은 나이 60에 에서와 야곱 쌍둥이를 얻습니다. 이삭은 이렇게 끝까지 기도하며 하나님의 처분만을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이삭의 믿음이요 삶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반드시 저물 때 들에 나가 기도한 이삭처럼 자신만의 호젓한 기도의 골방, 처소가 있어야 합니다. 말로만 건성으로나 타성으로 믿지 맙시다. 주님을 깊이 묵상하는 기도로 믿읍시다. 우리가 이삭에게서 배워야 할 것들 가운데 늘 기도하고 묵상하는 삶도 있습니다. 


다음은 이삭의 노년기입니다. 이삭에게도 남다른 특기가 있었습니다. 우물파기입니다. 중동지방에는 어디나 물이 귀합니다. 이삭은 우물파기의 달인이었습니다. 남들은 한 번도 파기 어려운 우물인데 이삭은 무려 7번이나 우물을 팠습니다. 그가 여러 차례 우물을 판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느 해에 흉년이 들어 이삭이 그랄 땅으로 갑니다. 거기는 블레셋 영토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에게 복을 주셔서 거기서 100배의 수확을 얻습니다. 이삭이 부자가 되고 강성해졌습니다. 본문 13절 이하에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자 그 땅의 주인인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해 이삭이 판 우물을 메워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고서는 그 땅에서 떠나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이주합니다. 거기서도 우물부터 팠는데 생수가 터집니다. 그러자 그곳 원주민들이 다시 시비를 겁니다. 이삭이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그들에게 우물을 내줍니다. 이삭이 또 이주를 하고 우물을 팝니다. 그렇게 하기를 무려 7번이나 한 것입니다. 물론 이삭이 힘이 없어 일방적으로 당한 것은 아닙니다. 본문 16절입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그랄 왕 아비멜렉도 자기보다 이삭이 더 강성한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삭은 그들과 싸우거나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그만큼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신 것입니다. 농사도 100배나 잘 되게 하시고, 가는 곳마다 우물이 터지게 하셨습니다. 이삭은 온유한 면에서도 주님을 많이 닮았습니다. 


이삭의 온유한 품성에 아비멜렉 왕도 탄복을 금치 못하고 제 발로 찾아와 화해를 청합니다. 창세기 26장 28절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이삭이 답합니다. 30절 이하입니다. “[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본문 22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르호봇은 땅이 넓다는 뜻입니다. 주님도 8복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온유한 자가 결국은 르호봇을 얻습니다. 진심으로 이삭처럼 번성하고 강성하기를 바라십니까? 넓은 땅 르호봇을 얻고 싶으십니까? 온유합시다. 화친하고 평화조약을 맺으십시오. 전투적이고 아득바득 살아야 르호봇을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인류 역사에 등장한 수많은 영웅과 침략자들 다 어디에 있습니까? 온유하셨던 주님을 보십시오. 지금도 땅끝까지 번성하고 계십니다. 이삭도 온유하고 평화를 사랑했기에 넓은 땅 르호봇을 차지하고 강성하고 180세까지 장수했습니다. 


이삭의 삶이 그야말로 아름답고 풍성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삶도 이삭처럼 복 있고 강건하고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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