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63
Extra Form
설교제목 첫째 달 초하룻날
설교본문 창 8:13-22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9-02-03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90203m.mp3

20190203m

창 8:13-22

첫째 달 초하룻날


(창 8:13-22, 개정) [13]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14]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17]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18]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고 [19]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13절 상반절입니다.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이것은 601년 정월 초하룻날인데, 우리식으로는 설날입니다. 601년은 노아의 나이 601세 되던 해라는 뜻입니다. 이 날은 노아의 가족들에게는 기념비적인 날입니다. 그날은 온 지면에서 물이 걷힌 날이기 때문입니다. 13절을 다시 보십시오.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그때 땅에서 걷힌 물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물입니다. 


창세기 6장 5절 이하입니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6장 17절도 보십시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창세기 7장 1절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창세기 7장 17절 이하도 보십시오. “[17]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18]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19]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20]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21]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23]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그런데 그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의 물이 601년 정월 초하룻날을 기해 지면에서 다 걷혔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종료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죄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장로교 신자들은 대개 자신을 죄인이라 생각합니다. 예배 시간에 대표 기도하는 분의 기도를 들어보면 대부분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합니다. 왜냐면 지난 한 주간도 살면서 실제로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죄짓고 살다가 주일에 교회 와서 회개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사실이고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삶의 실상이기에 우리는 자신을 죄인이라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죄를 다 사하였기에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의인이어서 의인이 아니라 죄인임에도 하나님이 의인이라 인정해 주시기에 의인이라는 말도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입니다. 의인이라는 말은 우리의 신분과 정체성을 규정하는 말이고, 죄인이라는 말은 우리의 체험적인 고백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직도 우리는 수준 미달로 살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연민, 자비, 사랑, 복의 대상일지언정 절대 저주의 대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601년 정월 초하룻날 아침 방주의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 노아의 앞에 심판의 물이 걷힌 것처럼 우리에게서도 심판의 물이 다 물러갔기 때문입니다. 지난해도 우리는 여러모로 힘들었습니다. 새해도 우리에겐 온갖 비관적인 전망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합시다. 그 옛날 노아 가족들처럼 우리 사회, 교회 앞에서 하나님이 모든 진노의 물을 다 물러가게 하시고 오직 복의 밝은 빛을 비춰주시리라 우리도 믿읍시다. 


601년 정월 초하룻날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의 말씀을 들은 날입니다. 본문 17절 이하입니다. “[17]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18]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고 [19]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그 답답하고 좁고 냄새 나는 방주에서 1년간 갇혀 지낸 노아의 가족이 601년 정월 초하룻날 문을 열고 나와 물로 깨끗이 정화된 땅에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노아의 가족들에게 하나님이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 때도 그렇게 축복하셨습니다. 


창세기 9장 1절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7절도 보십시오.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생육은 자식을 낳아 잘 양육하는 복을 말하고, 번성은 번창을 말합니다. 이것은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자녀들이 반드시 누려야 할 아름다운 현세적 복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빌어주신 복도 생육과 번성의 복입니다. 바다의 모래처럼 후손이 많다는 것은 생육의 복이고,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은 번성의 복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복이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601년 정월 초하룻날은 노아의 가족이 처음으로 감사의 제단을 쌓은 날입니다. 20절 이하입니다. “[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노아가 땅에 발을 디디고 처음으로 한 것은 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과 새를 취해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그 향기를 받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월 초하룻날 아침 아무리 정성을 들여 조상 앞에 제사해봐야 죽은 조상이 그것을 흠향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 제사를 누가 받습니까? 마귀가 죽은 조상 행세를 하며 시침 떼고 그 제사를 가로챕니다. 올 차례 상 차리는 비용이 246,400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월 초하룻날 아침 하나님께 예배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받으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창세기 9장 1절이나 7절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은 노아의 가족이 예배를 할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잘 드려야 복을 받습니다. 예배를 잘 드린 사람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얻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변변한 생육과 번성의 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절대 운이 따르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세상이 협조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예배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20절을 다시 보십시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그랬더니 하나님이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제대로 예배를 드리는 자는 절대 저주받지 않습니다. 번제는 제물을 태워 바치는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번제는 자신을 온전히 태워 바친다는 제사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저주받지 않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누립니다. 예배란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찬송하고 헌금 내주고 돌아가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번제로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자기 존재 전부를 불살라 바치는 예배를 하나님이 흠향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으로 응답하십니다. 


부디 올해 정월 초하룻날에는 노아의 가족들처럼 진정한 산 제사를 드리고, 그야말로 번제를 드림으로 하나님이 약속한 생육과 번성의 복을 풍성히 누리기를 기원합니다.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