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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야곱의 축복
설교본문 창 35:9-15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12-31

* 촬영시 문제로 설교 영상과 오디오는 없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20181231

창 35:9-15

야곱의 축복


(창 35:9-15, 개정) [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10]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13]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14]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5]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여러분은 성경의 여러 인물 가운데 누가 가장 복된 인물이라 생각하십니까? 저는 야곱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곱만큼 자기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다 이룬 사람도 없습니다. 그는 원래 에서와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래도 에서가 먼저 나왔기에 형이 되었고, 야곱은 동생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자신이 차남이라는 사실을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어떻게든 자기가 형이 되어 장남을 통해 승계되는 하나님의 복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기어이 그 기상천외한 꿈을 실현합니다. 허기져 기진한 형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사고, 눈 먼 아버지를 속여 장자에게 베푸는 마지막 축복 기도까지 훔칩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에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조차도 야곱의 그 억지 장자권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데도 성공합니다. 비록 14년이나 걸렸지만 그래도 라헬과 결혼에 성공합니다. 야곱은 부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객지생활 20년 만에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짐승과 종들을 데리고 금의환향합니다. 그야말로 자기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다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복은 지금부터입니다. 11절 이하입니다. “[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여러분, 유대인들이 왜 자기들의 나라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했을까요? 이스라엘이란 원래 나라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지어주신 야곱의 새 이름입니다. 본문 10절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본문은 35장인데, 32장 28절도 보십시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하나님이 지어주신 야곱의 새 이름이 이스라엘인데, 이 이름을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국호로 삼은 것입니다. 그들이야말로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430년간 애굽에서 노예살이를 했는데, 그들이 왜 애굽에서 오랫동안 종살이를 했을까요? 그들이 애굽에 포로로 잡혀갔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삭의 11번째 아들인 요셉이 17세 때 형들의 배신으로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요셉은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 장군 집에서 종살이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힙니다. 거기서 옥살이를 하는 가운데 놀라운 반전을 맞습니다. 아무도 풀지 못했던 바로의 꿈을 해몽합니다. 감옥살이하던 이방인 청년이 일약 애굽의 총리대신이 됩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몽한대로 천하에 최악의 흉년이 들었습니다. 양식을 구하러 애굽까지 온 형들을 요셉이 극적으로 만납니다. 요셉은 형들을 용서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살리기 위해 하신 작품이라고 요셉은 애굽에 팔려온 자신의 사건을 해석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아픈 과거를 다 하나님의 섭리로 돌립니다. 그러면서 요셉은 아버지까지 모시고 오라고 해서 야곱과 12아들이 애굽으로 이주합니다. 그때 70명이 이주했는데, 애굽에서 430년을 사는 동안 장정만 60만이었고, 아이들과 여성까지 합치면 약 200만 명이 되었습니다.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하다가 모세의 영도로 출애굽한 유대인들은 야곱의 12아들을 족장으로 하는 12지파 소속의 야곱의 직계들이었습니다. 야곱의 12아들의 자손이 출애굽 때는 60만이 된 것입니다. 지금도 12개 지파로 이루어진 유대인들의 공동체는 철저히 이스라엘일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 야곱의 분신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직도 자기 국호를 이스라엘로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 11절의 복 그대로입니다. 


이스라엘이란 곧 야곱의 나라, 민족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의 12아들의 공동체란 뜻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경이롭습니까? 야곱은 지금으로부터 3800년 전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그는 살아있습니다. 개인이었던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로 기적 같이 하나의 나라로 건재합니다. 이 얼마나 무섭도록 놀라운 복입니까? 오늘날 미국도 어쩔 수 없는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면 야곱이 어떻게 이런 복을 누릴 수 있었을까요? 


그는 우선 타의 추종을 부러워할 만큼 하나님의 복을 열망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의 자신의 운명에 절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는 하나님의 복에 대한 그의 열망이 너무도 컸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장자에게 내리는 복을 자기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실제 장자권을 가로챕니다. 한편 에서는 장자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바꾼 것입니다. 한 사람은 장자권을 쟁취하는데 자기 운명을 다 걸었는데, 다른 한 사람은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만도 못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차남인 야곱이 장자의 복을 받고, 에서는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도 에서의 하나님에서 야곱의 하나님으로 갈아타신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 목숨을 건 도박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 점을 높이 평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복은 간절히 사모하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복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목숨을 걸만큼 값지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돼지에게는 절대 진주를 던지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위대한 진가를 깨닫고 온 몸을 던져 결단하고 모험하는 자에게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복에 무섭도록 집중하는 자는 비록 차남일지라도 장자가 받는 복을 베푸십니다. 


다음은 야곱의 예배생활 때문입니다. 야곱의 생애를 추적해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가 예배생활입니다. 형의 눈을 피해 하란으로 도망가다가 벧엘에서 노숙하며 쌓은 제단을 쌓은 것부터 다시 그 벧엘에 와서 제단을 쌓기까지 예배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야곱은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그 최선의 행위가 예배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평소에 우리는 세상에서 허우적대지만 적어도 예배드릴 때만큼은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기쁨을 누리십니다. 우리는 언어로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향기로 우리 기도를 흠향하십니다. 우리가 예배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하나님도 우리 삶을 영화롭게 하고 우리 존재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부디 새해에는 야곱처럼 더욱 예배에 충실합시다. 그래서 그야말로 야곱의 삶처럼 복되시길 빕니다. 


야곱은 기도로도 유명합니다. 사실 야곱은 기도로 성공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지독합니다. 살인적입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야곱의 기도를 성경이 씨름이라고 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는 전투적이고 호전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할 때 늘 시를 쓰지만, 야곱은 목숨을 바쳤습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붙들었으면 하나님이 그의 허벅지 뼈를 내리쳤음에도 야곱은 하나님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야곱은 그의 생애를 기도로 승리했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이길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싸움을 잘하는 싸움꾼이라 해도 하나님을 이길 도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을 이겼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에게 져주신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로 씨름을 걸면 져주십니다. 문제는 요즘은 야곱처럼 하나님께 씨름을 거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씨름을 걸어오면 져주실 준비가 되어 있는데 야곱처럼 하나님께 도전장을 내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부디 새해에는 야곱처럼 마치 씨름을 하듯이 보다 투쟁적이고 호전적으로 기도에 도전하여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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