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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요셉의 송년
설교본문 창 45:1-11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12-30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1230m.mp3

20181230m

창 45:1-11

요셉의 송년


(창 45:1-11, 개정)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10]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11]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2018년 마지막 52주째 송년주일입니다. 본문은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특히 이 장면은 요셉이 형들에게 버림받은 지 13년 만에 애굽에서 자기를 버린 형제들과 기적같이 다시 만난 드라마틱한 대목입니다. 본문은 송년의 모범과 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선 요셉은 절대 과거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인성이 훌륭하다 해도 왜 요셉의 가슴에 피맺힌 한이 없었겠습니까? 아버지 야곱이 11번째 아들인 요셉만을 편애한다며 평소에도 형들이 미워하고 왕따시켰는데, 결국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옷을 벗기고 깊은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그런데 형제들은 그를 다시 끌어올려 애굽의 대상에게 인신매매를 했습니다. 얼마나 비정하고 엽기적입니까? 어린 동생을 팔아버린 겁니다. 당시 요셉의 나이 17살이었습니다. 요셉이 얼마나 원통하고 두려웠겠습니까? 요셉의 절망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더구나 요셉은 노예살이하다가 수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합니다. 시편에 보면 당시 요셉은 그의 영혼이 쇠사슬에 매어있었다고 합니다. 형들이 그를 버리지 않았던들 왜 그가 만리타국에서 처절한 수모를 겪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천지개벽 수준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방인 노예요 성폭력범으로 몰려 옥살이하던 요셉이 대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고, 형들은 양식 찾아 애굽까지 내려온 떨거지 신세입니다. 그런데 그 둘이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친 것입니다. 요셉으로서는 그간의 한을 갚고 일거에 풀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요셉은 그 모든 아픈 과거를 하나님의 섭리로 돌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슬픈 과거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4절 이하입니다.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8절도 보십시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추호도 형들을 원망하거나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요셉은 조금도 과거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형들은 벌벌 떨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형들을 붙잡고 방성대곡하며 근심하거나 한탄하지 말라며 형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우리는 힘들었습니다. 개인에 따라서는 큰 상처와 아픔을 겪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배신이나 실직, 실패하신 분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에 상처가 되었을텐데 요셉의 송년의 태도를 배웁시다. 이미 모든 것이 과거지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프고 서럽지만 거기에도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읍시다. 주님도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에게 ‘네가 범죄한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지난 일이니 너는 내일이 있으니 다시는 그런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시며 돌려보내셨습니다. 더는 과거에 붙잡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발목이 잡히면 묵은 해가 가고 새해가 와도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요셉은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극복할 수 없는 과거를 하나님의 섭리로 믿고 모든 앙금을 훌훌 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요셉은 형들과 함께 새 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현재에도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놀랍습니다. 요셉이 현재에 안주하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넘어갔을 겁니다. 그는 과거에 대해서도 단호했지만 현재의 유혹도 가차없이 뿌리쳤습니다. 창세기 39장 7절 이하입니다.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이것이 바로 요셉이 당했던 집요하고도 간악한 현재의 유혹이었습니다. 당시 요셉은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의 청년이었습니다. 타국에 팔려와 노예살이하던 이방인이었습니다. 자기 주인 보디발은 장기 출장 중입니다. 그 여인과 동침한다 해도 그 비밀이 보장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 현재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유혹을 거부한 데 따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요셉은 당장 보복을 당했습니다. 결국 그는 성폭행 미수범으로 감옥에 갇힙니다. 


여러분, 현재가 아무리 행복한 것 같아도 거기에 만족하거나 주저앉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애굽에서 보면 가나안은 동북쪽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굳이 그들을 남동쪽으로 인도해 시내광야로 나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들을 우회하도록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더는 과거로 돌아가거나 돌아보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 배수의 진을 치신 겁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이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면 언제나 행군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피곤하더라도, 엘림 같은 오아시스가 좋아서 거기에 마냥 정주하고 싶어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요셉처럼, 이스라엘 백성처럼 과거와도 결별하고 현재와도 수작하지 않고 부단히 걸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삶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형입니다. 


과거에도 미련이 없고 현재에도 안주하지 않으면서 요셉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그는 미래에 살았습니다. 그는 지독한 미래형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꿈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의 별명이 꿈쟁이입니다. 그는 실제 꿈을 잘 꾸었습니다. 한번은 형제들의 보릿단 11개가 자기 보릿단에 절하는 꿈을 꾸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해와 달, 11개의 별이 자기 별에게 절하는 꿈을 꾸기도 했는데, 그걸 공개하는 바람에 형들의 미움을 샀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꿈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가 처음 꿈 얘기를 했을 때 형들이 우리가 다 너에게 엎드려 절하기라도 하라는 거냐며 불쾌해 했는데, 실제 형들은 사시나무 떨 듯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에게 무릎을 꿇고 조아렸습니다. 요셉은 어릴 때부터 비전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는 앞을 바라보며 내일을 살았지 뒤돌아보거나 아래를 보지 않았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7절도 보십시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는 이렇게 미래를 산 사람이지 뒤를 돌아보거나 현재에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가 애굽에서 감옥살이하던 중에 졸지에 출세하게 된 것도 꿈 때문이었습니다. 누구도 풀지 못한 바로 왕의 꿈을 풀었기에 바로가 이방인 청년을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삼아 앞으로 닥칠 애굽의 위기를 극복하게 한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앞두고 하나님의 사자가 롯의 가족에게 절대 뒤돌아보지도 말고 들판에 서지 말고 구원의 성 소알을 향해 힘껏 뛰라고 했습니다. 롯과 그의 딸들은 그 말을 잘 들었지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셉은 죽으면서도 이렇게 유언합니다. ‘너희가 훗날 애굽을 떠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으로 갈 때 반드시 내 유골을 함께 갖고 가서 가나안에 장례하게 해달라’고 자손들에게 맹세를 시켰습니다. 400년 후 출애굽할 때 요셉의 해골을 가지고 나옵니다. 이처럼 요셉은 철저한 미래형 인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다 꿈의 사람들입니다. 미래의 사람들입니다. 요셉의 후예들입니다. 요셉에게서 우리는 이러한 송년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과거도 현재도 아닌 미래를 꿈꿉시다. 내일을 희망하며 기대하며 삽시다. 지난 430년간 살았던 애굽은 깨끗이 잊고, 광야에서도 안주하지 말고, 가나안을 향해, 내일을 향해 힘차게 진군합시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애굽으로 과거로 돌아가자며 작당하고 선동했던 사람들, 가나안 사람들은 거인이라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떼 같다고 하며 가나안 정복을 주저했던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 뼈를 묻었습니다. 2018년 묵은 해가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습니다. 새해에 희망을 겁시다. 담대하게 내일을 향해 진군합시다. 일찍이 요셉이 누렸던 놀라운 삶의 반전과 풍성한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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