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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계보의 비밀
설교본문 마 1:1-17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12-25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1225.mp3

20181225

마 1:1-17

계보의 비밀


(마 1:1-17, 개정)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메리 크리스마스!

신약성경을 펴면 마태복음이 나오고, 마태복음의 첫 머리는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합니다. 작정하고 성경을 펼쳤다가도 덮는 얘가 많습니다. 족보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 족보는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모릅니다. 성탄절을 맞아 주님의 계보의 비밀을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의 탄생시점입니다. 인류 역사는 주님 오시기 전과 주후로 나뉩니다. Before Christ(BC), Ano Domini(AD)로 나뉘는데, 올해가 주후 2018년입니다. 이것이 첫 성탄입니다. 그러면 왜 주님이 2018년 전에 성탄하셨을까요? 그 이전이나 그 이후면 안 됩니까? 


신약에는 예수님 족보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옵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오는데,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42대손입니다. 본문은 42대 수를 크게 3토막으로 나누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 바벨론 포로 이후부터 예수님까지입니다. 마태복음의 저자가 왜 굳이 14씩 구획했을까요? 


성경이 말씀하는 완전수가 7입니다. 14는 완전수 7이 겹친 수입니다. 게다가 14가 3번 반복됩니다. 삼세판입니다. 무엇이든 삼세판을 해야 승복을 합니다. 유대인들의 문화가 그렇습니다. 성탄에까지 삼세판 원칙을 적용한 겁니다. 유사 이래 두 번 오기 힘든 길일에 주님의 성탄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연히 2018년 전에 탄생하신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가장 완벽한 때에 탄생하셨습니다. 바로 그 사실을 전하기 위해 마태는 굳이 14대를 세 번 반복했습니다. 


누가복음 3장의 족보는 대수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세어보면 총 77대가 나옵니다. 이것도 완전수 7이 횡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성탄이 하나님이 수립하신 구속사적 예정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성사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2018년 전 오늘이야말로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날인지 모릅니다. 


주님의 계보가 남자의 후손이 아닌 여자의 후손으로 왔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16절입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본문 2절 이하를 보면 모두 남자의 후손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낳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마리아가 예수를 낳습니다. 주님만 여자의 후손입니다. 주님만 동정녀의 아들입니다. 이것은 이미 구약 창세기 3장 15절, 이사야 7장 14절에서 예언한 것인데, 그것이 실제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22절입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그러면 주님은 왜 굳이 남자가 아닌 여자의 후손으로 왔을까요?


주님은 원조의 유전질서를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아담으로부터 유전되는 원죄를 피할 도리는 없습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성이 정해져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닙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죄씨였기에 그 후손인 우리가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죄씨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역사상 오직 한 분 주님만큼은 남자가 아닌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기에 원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은 성령의 역사로 잉태되신 여자의 후손입니다. 그러므로 부계의 유전인자인 원죄와는 상관없이 주님은 오셨습니다. 


주님은 하늘에서 지구로 우주여행을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반드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소경이 어떻게 소경을 인도할 수 있습니까? 대속의 제물은 흠과 티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대속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오셔야 하는 주님은 요셉이 아니라 마리아의 후손으로 오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계보에 등장하는 여성들입니다. 이 또한 대단히 이례적입니다. 여성들이 족보에 오른 겁니다. 마리아까지 합하면 5명입니다. 마리아를 제외하면 이 여인들이 이방여인에다가 근친상간한 사람도 있습니다. 모범적이지 않은 이런 여인들이 어떻게 예수님의 족보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다말입니다. 3절 상반절입니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유다와 다말의 관계는 시아버지와 며느리 관계입니다. 유다는 원래 아들이 셋이었습니다. 장남이 다말과 결혼해 아들을 보지 못하고 죽자, 신명기 25장의 결혼법에 따라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 형의 대를 이어주어야 합니다. 첫째 엘이 죽자 둘째 오난을 형수에게 보내지만, 오난은 형의 대를 잇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자 오난은 벌 받아 죽습니다. 유다가 다말을 친정으로 보냅니다. 다말이 결정적인 제보를 받습니다. 유다가 친정 가까운 딤나에 온다는 것입니다. 다말은 과부복을 벗고 창녀가 입는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리고 성문에 나가 유다를 기다립니다. 다말의 계략이 통했습니다. 다말이 유다와 관계를 맺고 쌍둥이를 얻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다말을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계보인 유다 계보에 남으려면 그 길밖에 없다고 다말은 판단한 것입니다. 그렇게 다말은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 영예를 차지했습니다. 


라합입니다. 5절 상반절입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그녀는 기생이었습니다. 술만 판 게 아니라 원어로 보면 몸도 파는 창녀였습니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주고 탈출을 도운 것은 히브리서를 보면 믿음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말과 마찬가지로 라합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룻도 이방인입니다. 이방 나라에 살던 나오미가 귀향을 결심했을 때 며느리 룻이 동행의 뜻을 밝힙니다. 룻기 1장 16절은 룻의 신앙고백입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해 하나님 신앙을 전수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 백성의 반열에 서기 위해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 베들레헴으로 온 것입니다. 그렇게 나오미는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습니다.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입니다. 밧세바는 다윗을 유혹하고, 남편 우리야까지도 죽게 한 여인입니다. 밧세바가 낳은 아들 솔로몬이 가장 지혜로운 왕이 되었다는 것과 다윗이 밧세바를 가장 총애했고, 나단이 밧세바의 후견인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그녀가 남다른 믿음을 지닌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족보에 오른 여인은 모두 모범적인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희망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치부를 지닌 사람도 하나님 구원사의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이 문제입니다. 주님의 계보는 믿음의 계보입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계보에 누구나 오를 수 있습니다. 여성도 이방인도 창녀도 남편을 죽게 한 사람도 다 주님의 족보에 오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나온 여성들의 이름은 오늘날 우리의 이름입니다. 


성탄절을 통해 다시 한번 주님의 계보에서 우리의 이름을 확인하십시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이름이 주님의 계보에 자리매김하는 은혜를 확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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