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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임마누엘
설교본문 마 1:22-23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12-16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1216m.mp3

20181216m

마 1:22-23

임마누엘


(마 1:22-23, 개정)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다 구도의 종교입니다. 도식으로 표현하면 다 상향식 종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종교입니다. 티벳에는 오체투지라는 게 있습니다. 양 팔꿈치와 양 무릎과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하며 수백 킬로미터를 순례하는데 그 고행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이것이 세상의 종교입니다. 인간이 온몸을 던지며 해발 4000미터가 넘는 락사까지 오체투지로 가는 겁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인간이 신을 찾거나 만날 수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 넓은 우주에 어디 가서 하나님을 만납니까? 1961년 인류 최초로 우주 비행을 한 소련의 가가린이 귀환하여 기자회견을 하며 남긴 첫 마디가 우주에 나가봤더니 어디에도 하나님이 없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아무리 우주를 뒤진다 하여 하나님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물리세계가 아닌 초월세계에 계십니다. 그런 분을 어떻게 우리가 우주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와 타 종교의 다른 점이 뭘까요? 다른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상향식 구도이지만, 기독교는 반대로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 내려오신 하향식 구도입니다. 성경은 우주로 가더라도, 오체투지를 하더라도 하나님을 못 만나고 합니다. 상향식이 아니라 하향식이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올해도 성탄절이 가까이 왔습니다. 성탄이 왜 우리에게 복 있고 감사한 것입니까? 성탄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서 만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사람이 되어 사람의 세계에 탄생한 사건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것이 중요합니다. 거기서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 이뤄진 겁니다. 


본문은 성탄을 통해 우리를 만나러 오신 주님을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22절 이하입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이 모든 일은 18절 이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23절도 보십시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그러니까 성탄은 하나님이 이미 700년 전 구약 이사야를 통해 예언하신 말씀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7장 14절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예언이 700년 후에 성취되었다는 것이 요셉에게 마리아의 잉태 사실을 알리는 가브리엘 천사의 해석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이니 놀라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별명을 임마누엘이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있다는 뜻의 <임마누>와 하나님이란 뜻의 <엘>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성탄하셔서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야말로 임마누엘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실체입니다. 우리는 성탄을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게 성육신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왜 하나님이 성육신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될 수 없고, 사람은 아무리 고행한다 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것의 구체적 사건이 성탄입니다. 성탄은 이사야가 700년 전에 예언한 것의 실현입니다. 구약 창세기 28장에 나오는 야곱의 사다리 아시지요? 이것은 기독교의 본질을 그림처럼 보여준 사건입니다. 야곱의 사다리는 야곱이 세운 게 아닙니다. 그것은 형을 피해 집을 떠난 야곱에게 하나님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신 사다리입니다. 사다리는 보통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 때 쓰는데, 여기서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외로운 도망자 야곱을 만나 위로하고 용기를 주시기 위해 하늘에서 땅으로 사다리를 내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렁이 같고 먼지 같은데 하나님이 그런 나를 찾아 성육신하시고, 교활한 야곱을 찾아 벧엘까지 내려오셨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성탄을 잊을 수 있으며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성탄을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올해도 주님은 각자의 심령에 새롭게 성탄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 가운데 임마누엘하십니다. 


주님은 성탄하셔서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주십니다(사 61:1). 올해도 우리는 세상을 살며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는 상처를 입어 중증환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성탄하셔서 우리의 마음부터 어루만져주신다는 것입니다. 올해도 우리가 성탄을 실존적으로 체험해야 할 절박한 이유입니다. 꼭 주님을 뵙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합시다.


주님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이사야 당시에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였고, 주님이 성탄하실 때는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우리는 현재 자유인으로 살지만 실제 자유인일까 라고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하며 살고 있을까요? 온갖 구습, 옛 삶, 병마로부터, 물질로부터 자유하며 살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엿한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현실은 아직도 뭔가에 매여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이러한 구속으로부터 자유케 하십니다. 그래서 올해도 우리는 새롭게 성탄하실 주님을 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 안에 임마누엘이 실현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주님이 자유케하시면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성탄을 대망하며 새롭게 우리를 찾아오실 주님을 만납시다.


주님은 슬픈 자를 위로해 주십니다. 인생은 행복 가운데 살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아픔이나 슬픔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더 큰 슬픔은 우리가 어디에서 위로 받을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엄청난 재앙이 되고 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누군가 그의 곁에서 단 한 마디라도 공감하고 위로해주면 그 최악의 상황을 넘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일도 어려워졌습니다. 누가 우리의 마지막, 최고의 위로자가 될 수 있을까요? 사람에게는 더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친구도 자식도 목사도 최후의 위로자는 되지 못합니다. 그런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고독하게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시면 우리의 슬픔을 위로해주십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근심을 찬송으로 반전시켜 주십니다. 


부디 주님의 성탄과 임마누엘을 간절히 소망하고 진지하게 준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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