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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감사의 합창
설교본문 시 136:10-26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11-18

* 카메라의 문제로 설교 영상은 없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20181118m

시 136:10-26

감사의 합창


(시 136:10-26, 개정) [10]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1]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2]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3]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4]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5]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6]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7]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8]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19] 아모리인의 왕 시혼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0]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1]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2]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3]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4]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5]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 백성이 3대 절기마다 본문을 읽었습니다. 앞 소절은 제사장이 선창하고 후렴구는 백성들이 제창했습니다. 본문은 1절부터 마지막 까지 감사하라는 말씀이 반복됩니다. 26번 반복됩니다. 무슨 뜻입니까? 날마다 순간마다 호흡마다 감사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감사하라는 것입니까?


먼저 출애굽입니다(10-15절). 출애굽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할 감사 항목 제1호입니다. 유대인의 최대 절기는 유월절인데, 출애굽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유대인은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했습니다. 모세를 통해 애굽을 탈출했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을 쉽사리 놔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카드를 제시하셨는데, 그게 바로 장자를 치시는 재앙입니다. 자기 장자도 희생을 당하니까 바로가 항복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도 애굽에서 종살이했듯이 우리도 창세 전에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원죄의 숙명으로 죄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내신 것처럼 우리에게 주님을 보내사 마귀의 손에서 우리를 출애굽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엿한 백성들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복 가운데 이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평생 출애굽을 잊지 말고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출애굽에 대해 평생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까요? 우리를 죽음과 죄, 세상, 애굽에서 구출하기 위해 주님이 유월절 희생양이 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마지막 재앙 때 어린 양의 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인방에 칠했습니다. 그러자 죽음의 신이 애굽 땅을 두루 다닐 때 어린 양의 피가 발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유월(逾越)했습니다. 피가 칠해지지 않은 애굽 사람의 집에 들어가 그 장자를 쳤습니다. 그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주님이 유월절 어린 양으로 희생하셨기에 우리가 살았습니다. 실제로 주님은 유월절 때 십자가에 달리십니다(마 26; 막 14; 요 13; 고전 5장). 성경은 이처럼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 양으로 묘사합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결정적입니다. 그것 때문에 어둠의 신이 여러분 가정에 범접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집 문설주에 주님의 피가 칠해져 있습니다. 그것이 복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합시다. 우리는 타성에 젖고 내성이 생겨 자칫 유월절 어린 양의 구속의 은혜를 잊고 살기 십상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든 이것 하나만큼은 절대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 이마에 주님의 보혈이 칠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둔 기운이 우리를 해치지 못합니다. 이것을 가슴에 새기고 살며 감사합시다. 이것이 우리 감사의 0순위입니다.


다음은 기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 또한 우리가 원천적으로 감사해야 할 항목입니다(17-20절). 17-20절에 나오는 왕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의 왕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제압하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21절 이하입니다. “[21]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2]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기에 나오는 기업은 유업입니다. 이것은 곧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입니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유업, 기업이 무엇입니까? 저 영원한 가나안인 천국입니다. 그 어떤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우리가 반드시 지키고 대망해야 할 우리의 유업이 천국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 유월절 희생양이 되사 우리를 출애굽하게 하셨고, 우리를 천국을 유업으로 얻을 당신의 후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 별 감동을 못 느낍니다. 천국에 대해 늘 감사하며 삽시다. 우리에게는 천국 유업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실감과는 상관없이 우리에게는 천국의 소망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천국 가자는 종교입니다. 기독교에서 천국이 빠지면 시체입니다. 인생의 보람이나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라면 교회가 왜 필요합니까? 요즘 문화강좌나 인문학 강좌가 훨씬 더 좋습니다. 우리는 천국의 유업 때문에 희생도 감수하고, 때로는 헌신도 마다하지 않으며 고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디 천국을 걸고 도박하지 맙시다. 아무리 어려워도 에서처럼 팥죽 한 그릇에 천국을 팔지 맙시다. 우리 영혼을 팔지 맙시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은 유업에 대한 소망이 없는데 무슨 낙으로 신앙생활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헌신과 손해를 감수하는 것은 천국 유업 때문입니다. 감사는 절대 억지로 할 수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천국에 대한 유업에 감사할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늘 천국을 약속하고 보장하신 주님 은혜에 감사하며 삽시다. 요즘은 자식들도 부모가 재산이 있어야 존중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재산 가진 부모의 자녀들이 효성이 더 깊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가난한 부모에게는 상속 받을 유업이 없어서입니다. 그래서 자식들이 소홀한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유업을 얻으려고 자식들이 공을 들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부모의 재산 정도가 아니라 천국이 유업으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천국을 부모 재산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늘 천국의 유업을 감사하며 삽시다. 


일용할 양식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25절입니다.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출애굽은 과거의 은혜에 대한 감사요, 가나안은 미래의 복에 대한 감사요, 일용할 양식은 현재 내게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은 40년을 광야에서 유랑했습니다. 약 200만이 척박한 황무지에서 40년을 돌아다녔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할 때 서둘러 나왔습니다. 무교병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을 무교절이라고도 합니다. 한 달 만에 가지고 나온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사람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짐승도 많않습니다. 그들이 40년을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누구도 농사를 지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 제공해주셨습니다.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주시고 반석에서 생수가 솟게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입고 나온 옷이 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늘 광야를 걸었는데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의 유업뿐 아니라 지금 당장 필요한 복도 보장해주십니다. 우리도 광야생활 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굶지 않게 하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날아가는 새도 먹이고, 들의 이름 없는 풀 한 포기도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고 하셨습니다. 올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굶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실직당하거나 파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며 크고 작은 문제를 수습해 주시고, 우리 신변을 지켜주신 덕분입니다. 이 사실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우리가 사는 환경은 옛날 이스라엘 광야보다 훨씬 더 살벌할지 모릅니다. 주님이 우리를 지키십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주님이 우리 앞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우리의 재주 때문이 아닙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다시 한 번 날마다 쉬지 않고 감사해야 할 항목들을 마음에 새깁시다. 출애굽, 천국 유업, 일용할 양식에 감사합시다. 더욱 감사로 충만한 복 있는 삶이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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