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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겨울 전에
설교본문 딤후 4:9-22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11-04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1104m.mp3

20181104m

딤후 4:9-22

겨울 전에


(딤후 4:9-22, 개정)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9]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20]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 [21]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금주 수요일이 벌써 입동입니다. 가을인가 싶었는데 벌써 겨울 문턱까지 왔습니다. 본문 21절을 보면 당시 로마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이 소아시아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디모데에게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편지합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주후 67년 늦가을, 바로 이 때쯤 쓴 그의 마지막 편지입니다. 이미 이 때 바울은 자기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6절 이하입니다.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6절 상반절의 전제는 양의 피를 제단에 부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실제 바울은 이 편지를 쓴 후 어서 오라고 했던 디모데도 만나지 못하고 순교당합니다. 네로에게 참수를 당합니다. 자기 피를 순교의 제단에 몽땅 부어 그야말로 전제로 주님께 바칩니다. 


여러분은 바울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리는 흔히 바울을 크게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죄송하지만 당시 기준이나 관점에서 보면 그는 명백히 실패한 사람입니다. 물론 주님도 그랬지만 바울도 참으로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바울 주변에 사람이 많았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에서 감옥살이하던 말년 때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함께 사역하던 사람이 그를 다 떠난 겁니다. 디모데후서에 보면 ‘아시아에 있는 사람들이 다 나를 버렸다’고 합니다. 아시아는 에베소를 중심으로 한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지방을 가리킵니다. 거기에는 바울이 개척한 소아시아 7교회가 있던 곳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그 교회들이 바울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던 노사도의 비애감, 고립감, 자괴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얼마나 외로웠으면 지금 자신의 후임으로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디모데에게 죽기 전에 너를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편지했겠습니까? 


바울이 왜 유명합니까? 그는 크게 성공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글을 많이 남겼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 2/3가 그의 편지입니다. 바울이 왜 그렇게 많은 편지를 썼을까요? 그가 쓴 작품은 문학작품이나 신학논문이 아닙니다. 그가 쓴 편지는 자기가 개척한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쓴 절박한 목회서신이었습니다. 그가 개척한 교회 가운데 제대로 된 교회가 한 곳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쉴 새 없이 편지를 썼고, 나중에는 대필하게 하면서까지 편지를 썼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는 실패한 목회자가 맞습니다. 그가 생애 마지막에 쓴 유언과도 같은 디모데후서를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의 최후가 얼마나 딱한지 모릅니다. 


본문 10절 이하입니다.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세상을 사랑해서 데살로니가로 갔다는 데마는 누구입니까? 빌레몬서 24절을 보면, 바울의 인사말 가운데 나오는 대목입니다.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골로새서 4장 14절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데마는 누가와 늘 함께 등장하는 바울의 최측근입니다. 초대교회 문서에 보면, 감옥에 갇힌 바울 옆에 오른편에는 누가가, 왼편엔 데마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신실했던 동역자 데마가 바울을 버리고 떠났다고 합니다. 내일모레면 사형당할 바울을 버리고 그는 떠난 겁니다. 얼마나 쓸쓸하고 가슴 아픈 소식입니까? 감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던 바울에게 얼마나 큰 충격과 아픔이었겠습니까? 데마는 바울이 가장 힘들고 외롭고 절실할 때 그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그가 바울을 떠난 이유입니다. 그가 세상을 사랑해서 떠났다고 합니다. 누구나 세상을 사랑하면 반드시 주님을 등지게 됩니다. 신앙인이 주님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세상에 대한 미련, 애착 때문입니다. 옛날 롯의 아내를 보십시오. 천사가 뒤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구원의 성 소알을 향해 뛰다 말고, 불타는 소돔에 대한 미련 때문에 그만 뒤를 돌아봅니다. 그 순간 그녀는 유황불을 뒤집어쓰고 그 자리에서 소금기둥이 되고 맙니다. 그곳의 위치가 지금의 사해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절대 예수 믿는다고 밝히면 안 됩니다. 그 시간부터 주님 망신시키게 됩니다. 내가 세상에 연연하는 줄 세상이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11월 첫 주일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올해만 해도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여 주님을 버렸을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교회를 등지고 세상을 택했을까요? 그래서 올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주님을 안타깝게 하고 슬프게 했을까요?


바울 곁에는 이제 누가 있습니까? 누가만 있습니다. 누가는 12사도 중 한 사람도 아닙니다. 누가복음을 쓰고 사도행전까지 쓴 사람이 누가입니다. 그의 원래 직업은 의사입니다. 전에는 전국적으로 성누가 의원이 많았습니다. 끝까지 바울 곁을 지킨 의사 누가, 그래서 예수를 믿거나 하면 늘 성누가 의원이라고 간판을 달았습니다. 그 원조가 바로 바울의 주치의 누가입니다. 당시 누가는 누구보다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던 전문직 엘리트였습니다. 실제 그가 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고급 헬라어로 쓰였고, 문체나 어휘력도 가장 풍부하고 뛰어납니다. 그것은 그가 그만큼 유능한 전문 지식인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는 데마처럼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다 떠나고 마지막에는 데마마저도 바울을 떠났지만, 그는 끝까지 노사도 곁을 지켰습니다. 그는 바울이 순교한 후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완성하고, 74세에 세상을 떠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기가 힘들고 생활이 어렵다고 세상이 나를 미혹한다고 달아나지 마십시오. 데살로니가로 도피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길에는 언제나 데마의 길과 누가의 길, 주님을 사랑하는 길과 세상을 사랑하는 길,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지금 내가 걷는 길이 과연 어떤 길인지를 냉정하게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 지금 세상을 사랑하여 데마의 길을 가는 분 없습니까? 혹 지금 주님을 등지고 열심히 데살로니가로 가는 분 없습니까? 부디 누가가 홀로 고난을 당하는 바울 곁으로, 주님 곁으로 돌아갑시다. 습기 찬 지하 감방에서 겨울 전에 내게로 오라고 간곡히 당부하는 바울을 외면하지 말고, 겨울 전에 고난의 자리, 누가의 자리로 돌아갑시다. 


본문 11절 이하를 보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런 당부를 합니다. 마가를 데려오고, 책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마가는 바울을 따라 전도여행에 나섰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간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과의 관계가 고약해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그를 데려오라고 합니다. 화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가죽종이에 쓴 성경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우리가 주님 곁으로 복귀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등지고 살던 이웃과 화해하고, 손 놓고 살았던 말씀을 다시 집어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당부한 소원했던 형제와 성경을 챙겨 겨울 전에 주님을 찾고 주님 곁으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