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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왜 기도인가?
설교본문 마 14:22-33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10-14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1014m.mp3

20181014m

마 14:22-33

왜 기도인가?


(마 14:22-33, 개정)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오늘은 기도에 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할까요? 기도가 왜 그리스도인에게 절대적일까요? 기도가 선택이 아닌 필수일까요? 


본문에서 주님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분주하게 하루를 보내셨습니다. 해가 지자 제자들을 호수 건너편으로 보내시고, 무리들이 집으로 돌아가자, 주님은 따로 산으로 가십니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이 산이나 광야 등 한적한 곳으로 홀로 가셨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새벽에도 가셨고(마가복음), 요한복음에도 주님은 홀로 감람산으로 가십니다. 주님이 왜 한적한 곳을 찾으셨을까요? 당연히 주님은 기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23절입니다.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주님께도 기도는 대단히 중요한 일과였습니다. 바쁘고 피곤하다고 생략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반드시 챙겨야 하는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우리에게도 기도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핑계가 많습니다. 기도야말로 우리 삶의 필수요건이요 절대요건입니다. 오죽하면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했을까요! 호흡은 생존을 위해 절대적입니다. 다른 것은 쉬어도 숨이 멎으면 죽습니다. 우리는 잘 때도 호흡합니다. 기도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쉬면, 기도의 숨이 멎으면 우리 영혼은 질식합니다. 그러면 기도가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왜 기도가 영혼의 호흡입니까?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을 만납니다. 주님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뵙기 위해 홀로 밤에 새벽에 산으로 광야로 나아가셨습니다. 하나님 뵙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있을까요? 하나님 뵙는 일보다 우선하는 것이 있을까요? 기도는 하나님을 뵙는 순간입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주님을 뵙습니다. 우리가 분주하게 세상살이 할 때는 주님을 뵙기보다는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살이할 때는 주님을 만날 여유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별도로 기도 시간을 가지며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일대일로 주님을 뵙고 가장 은밀하고, 내밀하고, 진지하고, 엄숙하고, 거룩하게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제하고 교통하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주님은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 홀로 하나님을 알현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골방은 내가 홀로 하나님을 만나는 지성소입니다.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들어가 하나님을 뵙는 장소입니다. 기도는 절대 염불이 아니고 독백도 아닙니다. 오직 나 홀로 주님을 직접 뵙고 내 죄와 허물을 고백하며 사죄를 빌고 내 사정과 형편을 다 아뢰며 주님의 도우심을 직접적으로 구하는 행위입니다. 기도는 베개 밑 송사입니다. 주님께 은밀히 내 사랑과 믿음을 다 고백하고, 내 소원을 다 말하고, 주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베개 밑 송사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베개 및 송사를 하면 남편이 아내에게 지듯이 주님이 우리에게 지십니다. 그래서 기도는 소중하고 필수적이고 절대적입니다. 


기도는 정직한 자신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며 늘 자신을 거짓되게 연출합니다. 우리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이 너무 악하고 왜곡되고 병들어 나의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경멸하고 소외시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위장하고 분장합니다. 우리는 실제와는 다른 모습으로, 이중인격이나 다중인격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야 내가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무엇을 감추고 속이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나만의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는 행위라고 합니다. 기도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무엇도 감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는 순간만큼은 가장 정직해집니다. 나의 모든 거짓의 외피와 치장이 해제되어 우리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 기도의 순간입니다. 비로소 그때 우리는 회개합니다. 사람들이 왜 안하무인일까요? 그것은 다 자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정직한 자신의 모습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한 번도 기도의 골방에서 벌거벗은 적이 없기에 늘 자신에게 속고 살아서 기고만장합니다. 자신을 알면 절대 경거망동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갈릴리 호숫가에 오셔서 밤새 허탕만 친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그대로 했더니 두 배에 가득 찰 만큼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엉뚱하게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며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십시오.’ 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왜 그랬을까요? 그 이적을 통해 그는 주님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주님을 발견한 순간 오래 잊고 살아왔던 자신의 참 모습도 만났습니다. 베드로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가 남다른 죄인이라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서니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놀라운 물고기 기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님 앞에 엎드려 나는 죄인입니다, 당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고 하며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디 기도의 골방에서 주님의 빛 앞에서 드러난 자신의 가장 정직한 모습과도 만나십시다. 죄로 얼룩진 자신의 모습, 자신의 적나라한 몰골도 함께 발견합시다. 그래야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게 되고, 겸허해지고, 정직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거짓되게, 자신을 속이며 삽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비로소 이웃과도 만납니다. 이것 또한 기도가 소중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가장 인간 본연의 심성으로 주님께 중보하게 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주님을 만나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를 듣습니다. 또한 우리는 기도할 때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이웃의 한숨과 탄식 소리도 듣습니다.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바삐 살기에 이웃을 도울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기도할 때는 다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도 특히 새벽기도할 때는 다 생각납니다. 수많은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그들의 탄식, 신음소리, 한숨이 들립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도 홀로 산으로 가사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과 동시에 저 어둡고 험한 바다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제자들의 탄식과 사투를 듣고 보고 계셨습니다. 마가복음은 주님이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신다고 합니다. 주님은 산에서 기도하시지만 바다 가운데서 사투를 벌이는 제자들을 다 보고 계셨고, 듣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한숨, 탄식, 신음을 절대 놓치지 않고 다 듣고 계십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주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십니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주님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나를 사랑하시니까, 나를 돕고 싶으니까, 나의 행복을 바라시니까 주님이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남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웃의 비명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풍랑 만난 이웃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비명을 듣지 못하는 것은 기도하지 않아서입니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는 그들의 비명이 잡다한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음성과 내 양심의 소리뿐만 아니라 이웃의 한숨도 들립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중보기도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주님 앞에 상달되는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이웃 사랑은 기도할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풍랑 만난 이웃을 향한 중보의 기도가 이웃 사랑의 최고봉입니다. 알량한 내 힘보다는 주님의 도우심을 진심으로 중보하면 그것이 최고(최선)의 이웃 사랑의 실천입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이른 새벽 시간에 일어나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우리는 기도가 영혼의 진정한 호흡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기도의 계절입니다. 더욱 기도에 정진합시다. 기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만남, 자신과의 만남, 이웃과의 만남을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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