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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인생의 현주소
설교본문 창 3:8-10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10-07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1007m.mp3

20181007m

창 3:8-10

인생의 현주소


(창 3:8-10, 개정)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현주소를 물으십니다. 아담이란 히브리 말이 인생이란 뜻이니까 9절의 아담아 네게 어디 있느냐고 부르신 것은 인생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뜻입니다. 인생을 묻는 하나님의 원초적 질문, 소재지를 묻는 하나님의 질문은 이 시대 우리에게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반드시 하나님의 이 질문 앞에 서야 하고 거기에 진지하고 정직하게 응답해야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물으신 것입니까? 아담의 현주소를 물으신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공간적 위치를 물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공위성보다 더 높은 곳에서 그야말로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감찰하고 계시기에 우리 위치를 다 파악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물으신 것은 위치라기보다는 관계를 물으신 것입니다. 인생아 네가 지금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를 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질문을 하신 것은 아담이 범죄한 직후입니다. 창세기 3장 6절 이하입니다.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하나님 낯이 두려워 숨었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찾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질문은 하나님과의 거리, 관계를 확인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범죄하면 제일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집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범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본래 하나님과의 정상적이고 건강한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전혀 두렵지 않은 것, 하나님과 교통하고 교감하고 교제하며 사는 것이 인간 본연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금단의 열매를 범하자 그 건강하고 아름다웠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망가집니다. 그래서 인간은 졸지에 하나님이 무서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피해 나무 사이에 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낯을 피해 달아나고 숨는 관계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어디 있는지를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망가지고 악화된 당신과의 관계를 확인하고 복원하라는 물음입니다. 범죄하기 전 에덴동산에서 마음껏 즐기며 살던 그 관계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관계적 존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여러 관계 중에 첫 단추입니다. 이 관계가 제대로 되어야 다른 모든 관계가 바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부단히 확인하고 계십니다. 인생아 네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여러분의 현주소는 지금 어디 입니까? 하나님의 낯을 피해 달아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올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가운데 늘 불편해하고 힘들어 하고 피곤해하며 이 가을까지 오시지는 않았습니까? 다시 한 번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그 물음에 정직하고 진지하게 응답하고 결단합시다. 제가 무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많이 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해 제가 자꾸만 세상 속으로 숨습니다. 제가 회개하오니 본래의 관계로 되돌려주시기를 호소하십시다.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를 베푸시어 우리로 하여금 본연의 위치와 관계로 우리를 회복시키십니다. 이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고, 여기에 우리 인생의 행복과 성공, 보람과 기쁨,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초적인 질문은 창세기 4장 9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 물음 역시도 아벨의 소재를 물으신 것이 아니라 아벨과의 관계를 물으신 것입니다. 형제, 이웃과 관계의 현주소를 물으신 것입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잡아뗍니다. 이렇게 무례하고 당돌할 수가 없습니다. 가인은 아벨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하나님께 따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건강해야 하지만 형제, 이웃과의 관계도 올바로 관리되어야 합니다. 가인처럼 시기와 질투와 분로로 미워하다가는 돌로 쳐죽이고도 도리어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냐며 발뺌을 하거나 무책임하면 그 인생은 절대로 행복하지 못합니다. 십자가는 종과 횡의 교차입니다. 종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도 중요하고, 횡적인 이웃과의 관계도 중요하다는 게 십자가입니다. 창세기 4장 11절도 보십시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3절도 보십시오.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이처럼 형제와의 관계가 무너지면 절대로 행복하지 못합니다. 


형제와 이웃과의 관계를 점검합시다. 하나님이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를 물으신 것은 아벨에게만 해당되지 않고, 우리의 남편, 아내, 형제, 자녀, 이웃이 어디 있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답을 해야 합니까? 여러분은 가인처럼 답을 하실 겁니까? 가인처럼 대답하고 항변한다고 나의 모든 책임과 죄가 면제받은 것은 아닙니다. 가인이 아무리 시침을 떼고 변명을 해도 하나님은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한다고 하셨습니다. 가인에게는 아우 아벨을 돌봐야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모두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책임을 회피하거나 남에게 돌리는 것은 모두 악한 행위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모든 율법이고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한 가지 치명적인 것이 있습니다. 북녘 동포들입니다. 우리는 분단문제, 남북의 화해문제를 풀지 못하면 절대 복 받는 민족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네 북녘의 형제가 어디 있느냐를 묻고 계십니다. 우리는 70년이 넘도록 하나님께 ‘알지 못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형제와의 화해를 회피해왔습니다. 북녘 동포와의 화해는 우리의 큰 숙제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인생아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부디 하나님의 이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질문 앞에서 우리 각자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되짚어 봅시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와 우리 사이의 관계를 살펴서 회개하고 결단하고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는 복 있는 사람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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