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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추수 때가지 두라!
설교본문 마 13:24-30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9-30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930m.mp3

20180930m

마 13:24-30

추수 때가지 두라!


(마 13:24-30, 개정)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여러분은 가끔 의문이 생기지 않습니까? 선하신 하나님, 절대 선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도 악이 차고 넘칠까요? 하박국 선지자도 그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과 우주를 창조하시고 친히 통치하는 분 아니십니까? 하나님은 절대 공평 공의로운 분 아닙니까? 그런데 어째서 세상에는 불의가 넘치고 불의한 사람이 더 잘 되고 오히려 의인은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어째서 하나님은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지 않고 그냥 두고 보고만 계십니까? 분통이 터져 못살겠다고 하박국 선지자는 그렇게 호소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그리스도인에게 시험거리요 난해한 수수께끼입니다. 교리적으로는 이것을 신정론(theodicy, 신정론(神正論)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theos)과 정의(dike)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세상에 악이 득세함에도 하나님은 정의롭다는 사실을 변증하는 학문이 신정론입니다. 농부는 분명 좋은 씨만 뿌렸는데, 어째서 밭에 가라지가 생겼냐는 겁니다. 27절입니다.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이것이 전형적인 신정론입니다. 


어느 농부가 좋은 씨를 뿌렸는데 나중에 보니 가라지가 밀과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가라지는 논에서 벼와 함께 자라는 피나, 보리와 함께 자라는 깜부기 같은 지독한 잡초입니다. 종들이 주인에게 당장 가라지를 뽑자고 하자, 주인의 반응이 뜻밖입니다. 주인은 ‘가만두라.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합니다. 추수 때에 가라지는 불 사르고, 곡식은 곳간에 들이겠다고 합니다. 


본문은 36절에서도 계속됩니다. 제자들이 주님께 비유 말씀에 대해 설명을 부탁하자 주님은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37절 이하입니다.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주님은 40절 이하에서 가라지의 최후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러나 가라지들과는 달리 알곡들은 이렇게 됩니다. 43절입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나님의 아들들, 알곡들은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해와 같이 빛난다고 하십니다. 지금은 비록 함께 섞여 살지만, 또한 섞여 사는 동안에는 둘 사이가 구분이 잘 안 되지만, 마지막 추수 때는 그 둘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 중요한 신정론의 수수께끼를 짚어 보겠습니다. 

왜 밭에는 심지도 않은 가라지가 나고, 선하신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 악이 실재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작물을 재배해보면 심지도 않은 잡초 때문에 농사짓기가 어렵습니다. 농사는 잡초들과의 전쟁입니다. 심지도 가꾸지도 않았는데 잡초는 밭작물보다 훨씬 잘 자라고 뿌리도 깊고 넓게 뻗습니다. 그 생명력이 놀랍고 무서울 정도입니다. 세상도 그렇습니다. 얼마나 악이 극성입니까? 얼마나 악이 파괴적이고 공격적입니까? 제가 보기에 세상에는 악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선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악이 득세할까요? 우리 주변에 얼마나 끔찍하고 황당한 부조리와 모순이 계속됩니까? 그래서 우리는 자주 낙담하고 회의에 빠집니다. 하나님이 과연 계신가? 라는 문제에 빠지는 겁니다. 정말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신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명정대하다고 믿기에는 세상이 너무도 부조리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천사처럼 착하고 평생 신앙생활 잘 하던 장모님이 주일 아침 교회 가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심을 보고 자기는 더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는 겁니다. 이것이 신정론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당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며 감탄하셨습니다. 그만큼 세상이 아름다웠다는 것입니다. 본문도 보면, 주인이 분명 좋은 씨만 뿌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째서 뿌리지도 않은 가라지가 나고, 피나 깜부기가 나느냐는 겁니다.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원래는 알곡만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교회(에클레시아)가 원래 부르심 받은 자의 집합체라는 뜻입니다만,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주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본문 25절입니다.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8절에서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39절에서는 가라지를 뿌린 자가 마귀라고 하십니다. 마귀가 주인의 밭을 노략질한 주범입니다. 그래서 세상과 교회를 교란시키고 온갖 모순과 갈등과 긴장과 대결과 부조리와 아픔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알곡을 심으셨듯이 마귀도 몰래 가라지를 뿌립니다. 왜 심지도 뿌리지도 않은 가리지가 나는지를 이제 아시겠습니까? 다 원수인 마귀의 짓이라는 것입니다. 알곡들을 해치고 자기 세력을 확장하려는 사탄의 공작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라지의 비밀이자 세상 악의 비밀입니다. 


그러면 가라지에 대한 주인의 처분을 보겠습니다. 종들이 당장 가라지를 뽑겠다고 하자 주인은 가만 두라고 했습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가만 두라고 했습니다. 추수 때는 세상 끝날입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당장 낫을 대도 시원찮은데 가만 두라고 하시고, 추수 때까지 알곡과 함께 자라게 두라고 하신 것 말입니다. 우리 주위에 하나님을 믿기보다 내 주먹을 믿으라고 망발을 하는 사람도 일단 그냥 두라고 하신 겁니다. 그렇게 믿는 자와 세상 사람들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하게 햇볕과 비와 바람을 주시며 이 가을을 맞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견디기 힘듭니다. 우리가 보기에 악당들이 더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알곡보다 가라지가 웃자라고 벼보다 피가 더 크게 자라고, 잡초가 채소보다 더 성합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계속 우리에게 속상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어차피 가라지는 풀무불에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잠시 세상을 누리도록 두라고 하십니다. 


주인이 가리지를 추수 때까지 가만두라고 하신 깊은 뜻은 이것입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다칠까봐입니다. 주님은 가라지에 대한 선의보다는 알곡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추수 때까지 가만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당장 가라지를 뽑아내는 것이 알곡에게 도움이 안 됨을 주님은 아십니다. 가라지는 알곡보다 뿌리가 더 깊고 넓기에 자칫하면 가라지 뽑다가 알곡 여러 뿌리가 다칠 수 있음을 주님이 아십니다. 주님은 절대 가라지에 대한 심판을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추수 때까지 심판을 유보하신 것입니다. 추수 때 가라지를 풀무불에 던지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가라지가 승승장구해도 억울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가라지의 운명이 결정 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끝날까지는 가라지와 부대끼며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라지로 인하여 때로 아픔과 상처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안에도 얼마든지 가라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도 어떤 일도 다 일어날 수 있다고 마음에 대비를 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우리는 자신을 지키며 살아야 옳습니까? 마귀의 장난에 더는 희생되지 않기 위해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살아야 합니다. 25절을 보면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리고 간 시간은 사람들이 잘 때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잘 때 마귀가 우리 사회에 독을 뿌립니다. 우리 가족이 다 잘 때, 영적으로 깊은 잠에 떨어질 때 마귀가 우리 가정에 와서 악하고 독한 가라지를 뿌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신적으로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귀는 야행성입니다. 우리가 잘 때 활동합니다. 마귀는 우리 영혼의 도적이어서 그렇습니다. 마귀는 강도보다 훨씬 더 교활하고 대담하기에 우리가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깨어 있으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무서워서 마귀가 가라지를 뿌리지 못합니다. 41절을 보면 마귀의 역사가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넘어뜨리며, 시험에 빠지게 하며, 좌절하게 만듭니다. 마귀는 절대 알곡들을 가라지가 되게 하지는 못합니다. 알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알곡이고, 가라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라지입니다. 알곡이 마귀의 장난으로 가라지가 되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알곡도 마귀로 인해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습니다.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알곡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안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졸 때 마귀가 우리 안에 가라지를 뿌리고 가진 않을까 경계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잘 관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훗날 더는 모순도 갈등도 부조리도 없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원한 알곡으로 해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영원히 사는 복 있는 성도들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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