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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소유냐 존재냐
설교본문 눅 12:15-21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9-09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909m.mp3

20180909m

눅 12:15-21

소유냐 존재냐?


(눅 12:15-21, 개정)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에리히 프롬은 유대인 출신의 저명한 학자입니다. 제가 1979년 10월 1일에 독일에 입국했는데, 프롬은 그 다음 해 8월에 스위스에서 작고했습니다. 독일, 스위스, 프랑스 등의 국가가 1년 내내 그분을 추모했습니다. 학술대회나 강좌가 개설되고, 서점마다 그분의 단행본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는 그분이 유명한 줄은 알았지만 새삼 놀랐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프롬은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나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정치철학, 사회학, 심리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헤겔 좌파를 뜻하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속한 사회철학자로, 프로이트 좌파를 뜻하는 신프로이트 학파 소속 학자로, 미국에서는 정신분석학자로 유명합니다. 나치시절에 히틀러에게 추방당해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교수생활하고, 뉴욕대학에서 오랫동안 강의하닥 말년에 스위스에서 살다가 1980년에 80세를 일기로 소천했습니다. 


그분의 책 가운데 <소유냐 삶이냐>(Haben oder Leben)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인간형이 나옵니다. 소유형의 인간과 존재형의 인간입니다. 소유형의 인간은 그야말로 소유에서 자기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사람입니다. 그는 소유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행복을 느끼고, 삶의 성취감을 누립니다. 그래서 그는 소유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습니다. 소유가 그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존재형의 인간은 소유가 아니라 무엇이 과연 진정한 삶인지를 고민하며 삽니다. 그는 재산보다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에리히 프롬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이 두 가지 유형 가운데 하나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쪽입니까? 


우리가 상고하는 본문도 이 주제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소유냐 존재냐를 우리에게 묻습니다. 본문은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고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외경에는 나오는데 도마복음에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도마복음 63장에 나옵니다. 누가복음보다 훨씬 간결하게 나오지만 메시지는 비슷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많은 토지를 가진 부자가 있었다. 어느 날 부자가 생각하기를, 내가 가꾼 저 곡식을 내 곳간에 가득 채우리라. 그러나 그날 밤 그는 죽고 말았다.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본문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올해 폭염이나 집중호우 때문에 풍년이라지만 과일 값 등이 비쌉니다. 이 부자는 그해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즐거운 고민에 빠집니다. 수확한 곡식이 많아 쌓아둘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 거기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곳간을 바라보며 안도하고 행복해 하며 독백합니다. 19절입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그런데 청천벽력이 쏟아집니다. 부자가 달콤한 환상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선고입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가 준비한 모든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참으로 허무한 노릇입니다. 더욱 가혹한 것은 하나님이 이 부자에 대해 안타까워한 게 아니라 오히려 어리석은 자라고 하십니다. 


정말 이 부자가 어리석습니까? 오히려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 아닙니까? 우리가 밤낮 없이 뛰고 사는 것이 이 부자처럼 되고 싶은 것 아닙니까? 이 부자는 우리 꿈을 이룬 선구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규정하십니다. 주님은 그를 어리석은 자의 모델로 제자들에게 제시합니다. 이 부자야말로 존재형이 아니라 소유형의 전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가 부자였기에 소유형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째서 그가 존재형이 아닌 소유형의 모델이 되었을까요?


그는 소유가 곧 자기 삶을 보장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그는 곳간을 넓히고 거기에 재물을 쌓아두는 데서 성취와 보람을 느낍니다. 그는 소유가 인생의 절대 목표였습니다. 그는 소유가 자기 삶의 행복을 보장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곳간 가득 쌓아둔 부가 그의 미래와 행복을 보장했습니까? 그의 소망이 이루어졌습니까? 부자가 그런 기대가 얼마나 허무한지를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 없었습니다. 바로 그날 밤 하나님이 네 영혼을 도로 찾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소유형 인간의 정곡을 찌른 말씀입니다. 재물이 당장 오늘 죽어나갈 그의 운명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소유가 결코 우리 삶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극명하고 실감나게 밝힌 말씀도 없을 것입니다. 15절입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곳간을 넓히고 거기에 하나라도 더 쌓아두지 못함에 안달합니까? 쌓아두고 여러 해 마음껏 먹고 즐기자는 소유형 인간으로 전락해서 그렇습니다. 소유란 언제나 사람을 어리석게 하고, 터무니없는 자기 기만에 빠지게 합니다. 지금도 돈만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집니다. 주님은 우리를 분명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도 물고기만 낚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며 안타까워하는 부분입니다. 이 시대는 너나 할 것 없이 소유에 완전히 빠져있습니다. 어디를 봐도 소유형 인간 뿐입니다. 부디 더 늦기 전에 가치관을 바꿉시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인생의 목표를 재고합시다. 21절처럼 자신을 위해 재물을 쌓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 더 부요한 자가 됩시다. 그런 사람이 진정한 존재형의 인간입니다. 


다음으로 부자는 자기밖에 모르는 지독한 이기주의의 화신이었습니다. 본문에는 등장인물이 부자뿐인 완벽한 모노 드라마입니다. 그러니까 이 부자의 안중에는 하나님도 이웃도 가족도 없다는 뜻입니다. 심지어는 가족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원문으로 보면 본문에 <나>라는 말이 14번이나 나옵니다. 그래서 대화는 없고 끝까지 나만의 독백뿐입니다. 그는 오직 자기만의 행복, 향락을 추구했던 지독한 개인주의, 이기주의였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가 부당하게 남의 것을 갈취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벌어 내가 즐기겠다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부라 할지라도 나 혼자 즐기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실은 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 소유에 대해 주인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겠다는 말씀은 우리가 가장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 영혼마저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젊고 유능하고 아름다운 사람도 하나님이 그 영혼을 도로 찾겠다고 하시면 오늘 밤이라도 당장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버틸 재주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면 내 생명이 내 것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내 생명의 주권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기에 하나님이 내 영혼을 도로 찾을 때 누구도 거역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아쉽고 안타까워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다 떠나야 합니다. 영혼, 생명뿐 아니라 남편, 아내, 자식, 곡식, 재산도 다 소용 없습니다. 알몸으로 떠나야 합니다. 


지난 8월 24일에 세상을 떠난 최희준 씨의 하숙생 2절입니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가” 왜 인생이 벌거숭이일까요? 왜 인생은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야 할까요? 다 내 것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내 것이 아니기에 내가 챙겨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착각에 빠져 내 수중의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내 수고의 대가, 노력의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곳간 곡식을 오직 내 가족과 자신만을 위해 씁니다. 내가 수고한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삶의 행태가 어리석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닙니다. 주인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고 집행하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의 뜻에 합당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부디 부자 같은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맙시다. 소유형의 인간이 되지 맙시다. 


부자는 자기 영혼의 진정한 필요를 몰랐던 사람입니다. 이것이 그가 어리석은 소유형의 인간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절대 곳간에 쌓아둔 곡식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부자일수록 영적으로는 훨씬 더 빈곤하고 황폐하기 쉽습니다. 잘 사는 나라일수록, 사회보장이 잘 되는 나라일수록, 자살자나 정신병자 지수가 높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들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좀 살게 되었다고 하니, 우리나라가 십 수년 째 부동의 1위이고 오늘도 45명이 자살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작년에 우리나라는 16,000명이 자살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주님이 라오디게아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 3;17). 부자들에 대한 신랄한 고발입니다. 주님 눈에는 딱하기 짝이 없는 빈자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마태복음 4장 4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여러분, 떡만으로는 절대 안 됩니다. 사람 영혼에는 하나님 말씀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 영혼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부자처럼 오직 곳간에 쌓아둔 소유로 영혼의 필요를 대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반드시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영혼이 말씀이 없어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부디 어리석은 부자처럼 착각하지 맙시다. 재물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을 구합시다. 그것이 내 영혼이 즐거워하며 평안히 쉴 수 있는 진정한 비결입니다. 어리석은 소유형 부자가 아니라 지혜로운 존재형의 인생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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