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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해방의 노래
설교본문 요 8:32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8-12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812m.mp3

20180812m

요 8:32

해방의 노래


(요 8:32, 개정)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수요일이 광복절 73주기입니다. 유대인에게도 광복절이 있는데, 애굽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유월절입니다. 무려 400/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통해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비록 광야생활을 했을망정 해방 이후에는 그들이 자유인답게 살았습니까?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애굽의 망령에 붙잡혀 살았습니다. 날마다 애굽을 그리워했고, 애굽의 추억 속에서 살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작당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툭하면 애굽에서 먹던 마늘, 부추, 미나리 타령을 했습니다. 그들이 몸은 분명 해방되었는데, 의식이나 정서는 아직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후에도 70년간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그때도 이스라엘은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사용하신 언어는 무엇이었습니까? 히브리어입니까? 헬라어였습니까? 주님은 아람어를 쓰셨습니다. 바벨론 말을 쓰신 겁니다. 지금도 옛 바벨론인 이라크, 이란, 시리아는 아람어를 씁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는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된 지 500년이 넘었는데 그때까지도 서민들은 여전히 자기 나라말보다 아람어를 쓰고 있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도 히브리어도 아니고 헬라어도 아니라 아람어였습니다. 얼마나 후유증이 대단합니까? 우리도 일제 강점기 때는 학교에서 일본말을 썼습니다. 유대인들은 70년간을 포로생활을 했기에 해방되었다 해도 서민들은 바벨론 말을 썼습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고 합니다. 또한 너희가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부르셨습니까? 무엇보다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죄의 노예로부터 해방시켜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유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정말 죄에서 해방된 진정한 자유인일까요? 우리는 더는 죄의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입니다. 우리는 그 이름과 신분에 걸맞게 정말 죄로부터 자유합니까? 


죄로부터 자유했다면 우리가 더는 죄를 지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직도 죄에 발목이 잡혀 있는 상태입니다. 여러분은 죄를 짓지 않고 삽니까? 아니면 날마다 죄를 짓고 사십니까? 바울도 이 모순 때문에 심각한 회의에 빠지고 괴로워했습니다. 로마서 7장 15절입니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7장 19절입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2절 이하입니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드디어 바울은 비명을 지릅니다. 24절 이하입니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바울이 회심한 것은 주후 40년경입니다. 로마서를 쓴 시기는 주후 50년경입니다. 그러니 사도로 거듭난 지 십 수 년이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구원파는 이것을 완전히 구원을 받지 못해서 그렇다고 해석합니다. 완전히 죄에서 해방되면 절대 죄 짓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니 그리로 다 넘어갑니다.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은 사람이 다시 범한 죄의 실체에 대해서는 제가 여러 번 여러분께 말씀드렸습니다. 자유함을 얻은 사람이 짓는 죄는 죄의 습성 때문에 짓는 죄입니다. 우리가 거듭나서 죄로부터 새로워졌다는 것, 자유인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법적 지위, 신분이 바뀌었다는 뜻이지 우리의 근성이 바뀌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를 그리워하는 정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에서 주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진리는 바울이 깨달았던 그 진리입니다. 거듭나고 사도가 되었음에도 죄로 좌절해서 비명을 지르던 바울이 로마서 8장에 이르러서는 달라집니다. 1절 이하입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바울은 바로 이 위대한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더라도 죄를 여전히 짓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이유 때문에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제 오직 생명의 법의 저촉만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죄인으로 규정할 법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이나 애굽 사람이나 도덕적으로는 크게 다른 게 없습니다. 그런데도 죽음의 신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은 넘어가고, 애굽 사람의 집에만 들어가서 장자를 죽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착하고, 애굽 사람들이 착해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 문에는 어린 양의 피가 발려 있고, 애굽 사람들의 집 문에는 어린 양의 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벼락 맞아 죽은 사람이나 벼락을 피한 사람이나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벼락을 피한 사람이 오히려 더 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은 벼락을 맞고, 어떤 사람은 벼락을 맞지 않았을까요? 벼락을 맞은 사람은 천둥칠 때 그냥 있었고, 맞지 않은 사람은 피뢰침 아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차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십자가라는 피뢰침 아래에 있기 때문에 벼락을 맞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보다 착해서가 아닙니다. 피뢰침 때문에 벼락을 맞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더는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죄에 대해 죽었다는 것은 죄가 더는 우리의 운명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를 짓지만 죄에 대해서는 죽었습니다. 죄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죄조차도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다.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의 죄도 모순도 아픔도 인간적 한계도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선이 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말씀에서 진리는 바로 이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모르면 우리는 늘 초조와 불안 속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더는 죄가 우리의 운명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바울도 바로 이 진리를 깨닫고 힘찬 승리의 개가와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고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했다고 합니다. 그런 너를 누가 정죄할 수 있느냐고 합니다. 


이 진리를 진실로 깨달을 때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부디 광복절을 맞아 성경이 말씀하는 이 영적 해방의 의미를 깊이 깨달읍시다. 바울처럼 진정으로 자유하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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