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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구름과 바다에서
설교본문 고전 10:1-5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7-15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715m.mp3

20180715m

고전 10:1-5

구름과 바다에서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1절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과거 조상들이 애굽에서 나와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났다고 합니다. 구름 아래에 있었다는 것은 사막의 햇볕을 가려주는 구름 기둥의 인도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바다 가운데로 지났다는 것은 홍해를 건넜다는 뜻입니다. 2절도 마찬가집니다. 바울은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애굽에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의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후에는 모세에게 속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고, 홍해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구약의 홍해 건넘을 신약적으로 보면 세례라는 겁니다. 우리는 예배당 안에서 약식으로 머리에 물을 찍어 바르며 세례를 받지만, 과거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통과하며 세례를 제대로 받았습니다. 세례는 내 과거, 나의 옛 사람을 물에 수장했다, 물로 씻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야말로 홍해를 통과함으로써 가장 확실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과거에 우리는 애굽에서 마귀의 노예, 세상의 종으로 살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세상으로부터 탈출하게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홍해를 건넜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 홍해를 건넜다는 데는 옛 사람을 수장했다, 과거의 모든 죄와 허물을 물에 씻었다는 의미 이외에도 한 가지 뜻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다시는 우리가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홍해가 배수의 진인 것입니다. 한 번 홍해를 건너면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것이 세례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불과 몇 개월이면 갈 수 있는 해안 길을 통해 가나안으로 인도하지 않고, 굳이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절대 옛 삶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미련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에도 그런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미련을 둘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앞만 보고 가나안을 향해 진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광야가 위험하고 거칠고 메마르고 척박하다 해도 하나님이 절대 우리를 굶기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헐벗지 않게 하시고 목 마르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정말 그랬습니다. 3절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간 유랑하며 신령한 음식을 먹었습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16장에 나오는 음식입니다. 1-3절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그때는 애굽에서 나온 지 한 달 보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성인 남자만 60만입니다. 여성들과 아이들까지 합하면 200만이 넘었고, 짐승도 많았습니다.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키며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와 애굽에 있을 때는 비록 노예살이를 했을망정 배불리 먹었는데 사막에서 굶어죽게 한다며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습니다. 4절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14절 이하도 보십시오. “[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31절도 보십시오.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35절도 보십시오.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새벽마다 내려주시는 만나를 먹으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긴 세월 광야에서 살았지만 굶어죽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도 광야생활 중입니다. 광야생활이 애굽생활보다 열악하다 하여 애굽을 그리워하지 맙시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가나안을 향해 가고 있고, 광야를 유랑하는 동안 하나님이 반드시 신령한 음식인 만나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이 절대 우리를 굶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처음에는 꿀 섞은 과자 같다며 좋아하다가 나중에는 만나만 준다고 불평합니다. 민수기 11장 5절 이하입니다.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그러면서 애굽생활이 더 좋았다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선동하기도 했습니다. 만나만 먹으니 재미없다는 겁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교회는 따분하고 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민수기 2장 5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만나를 하찮은 음식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우리의 주식도 만나입니다. 만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명기 8장 3절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교회는 왜 말씀뿐일까요? 그것이 주식이기 때문입니다. 만나에 불평하면 광야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왜 밤낮 만나뿐이냐며 모세에게 대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십니다. 만나에 불평하지 맙시다. 더욱 말씀에 충실합시다. 말씀이 혹독한 무더위와 메마른 광야에서 살아남게 하는 하나님의 신령한 음식입니다. 만나가 하나님 백성의 주식임을 기억합시다. 


본문 4절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시내 광야는 평균 기온이 지금도 43도입니다. 그 사막에서 무려 40년을 버티며 이스라엘은 유랑했습니다. 그러니 물에 대한 절실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민수기 20장 2절 이하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그때 모세를 통해 반석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셔서 백성들로 하여금 해갈하게 하셨습니다. 반석의 물이 신령한 음료였습니다. 그래서 양식이 없어 굶어죽은 사람도 없었지만 물이 없어 죽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우리도 신령한 음식인 만나뿐 아니라 신령한 음료를 마셔야 합니다. 본문 4절 하반절을 보면, 그 반석은 그리스도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마셔야 할 신령한 음료입니다. 주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당신께서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며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음료를 마셔야 해갈됩니다. 


주님이 주신다는 신령한 음료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7장 37절 이하입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성령이 신령한 음료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삽시다. 이것이 우리의 신령한 음식이고 음료입니다.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우리가 광야 길을 완주하려면 신령한 음식인 말씀을 먹고, 신령한 음료인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신령한 음식과 음료로 살았듯이 우리도 영원한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말씀과 성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이 우리 삶을 더욱 풍성하고 강건하게 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