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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자백과 사죄
설교본문 요일 1:8-10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7-08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708m.mp3

20180708m

요일 1:8-10

자백과 사죄


(요일 1:8-10, 개정)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제가 죄 얘기를 하면 뭔가 꺼림칙할 것입니다. 누구도 죄 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역시 죄인입니다. 다윗이 시편 51편 5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이것은 어김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 의지에 상관없이 이미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이것은 인간의 숙명입니다. 핏덩어리로 태어난 아기가 무슨 죄가 있을까 싶지만 다윗의 고백대로 우리는 죄 중에 잉태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원죄, 유전죄라고 합니다. 우리가 부모로부터 성격, 지능, 재능, 신체조건, 병 같은 것을 물려받듯이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한 태초의 죄도 그렇게 대대로 유전됩니다. 우리가 아담의 후예라면 누구도 모태 죄인으로 출생합니다. 


우리가 태어나서는 어떻게 삽니까? 그때부터 자기 의지, 판단, 선택, 행동으로 죄를 짓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자범죄라고 합니다. 자범죄는 원죄처럼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유전되는 죄가 아니라 자기 선택입니다. 원죄는 대물림되는 죄여서 불가항력이라고 하지만 자범죄는 왜 범하게 됩니까?


사람은 착한 생각만 하고 죄짓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요? 우리가 이미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원죄성을 지니고 태어났기에 자범죄 역시도 숙명적입니다. 결국 우리는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모르지 않습니다만 끊임없이 죄를 짓습니다. 이것을 히브리서는 짐짓죄라고 부릅니다. 능동적으로 계획적으로 짓는 죄도 있습니다. 이를 시편은 고범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우리를 죄인으로 규정할 때 억울해 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고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원죄든 자범죄든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깨끗케 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을 히브리말로는 <짜다크>, 그리스말로는 <디카이오>라고 합니다. 대속입니다. 이것은 팩트입니다. 주님이 당신 피를 바쳐 우리를 속량했습니다. 이것이 구속, 대속, 짜다크, 디카이오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새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는데 이제는 죄를 짓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열심히 죄를 짓고 삽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회의에 빠집니다. 내가 정말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자녀 맞느냐는 의심입니다. 바울도 바로 이 문제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고 괴로워했습니다. 그가 이미 사도가 된 지 14년이 흘렀는데도 이런 회의에 빠진 겁니다. 왜 우리는 새 사람이 되고서도 죄를 지을까요? 


우리는 거듭났다 해도 하루아침에 새 사람으로 살 수는 없습니다. 아기가 태어나 걷거나 뛸 수 없듯이 거듭난 사람도 여전히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비록 전과 같이 죄를 짓는다 해도 그 죄의 성격이 다릅니다. 전에는 마귀의 종으로 세상이 이끄는 대로 죄를 지었지만, 이제는 내 몸에 배인 옛 사람의 습성, 관성의 법칙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로마서 6장 11절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 말씀은 매우 심각한 말씀입니다. 죄에 대해 죽은 자라는 것은 죄와 단절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죄의 통치, 지배력, 옛 신분이나 소속에 대해 죽었다는 뜻이지 죄의 습성, 기호, 친화력까지 죽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어엿한 자녀지만 우리 몸에는 죄악의 찌꺼기가 남아 있습니다. 


마귀가 강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옛날 습성 때문에 지금도 우리는 죄를 범하고 삽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범한다 해도 못난 신자, 못난 하나님 백성일 뿐입니다. 죄를 지었다고 해서 구원받은 신분이 환원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은 절대 무효화되지 않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신분도 영원합니다.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합니다. 바울은 누구도 우리를 정죄하거나 예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비록 죄를 지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이유로 더는 정죄함을 받지 않는다고 하니까, 그동안 불안해하며 죄를 범했지만 앞으로는 마음 놓고 죄를 지어도 됩니까? 로마서 6장 2절은 분명히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받은 구원이 무효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지상목표요 과제인 성화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화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거룩하신 주님의 모습을 내 몸에 익히는 훈련이 성화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유일한 과제는 성화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왜 성화되어야 합니까? 머지않아 우리는 거룩한 천국에 갈 것입니다. 거기에서 문화적 충격 없이 그 나라에 제대로 적응하려면 성화가 필수입니다. 모두가 거룩한데 나만 거룩하지 않으면 스스로 왕따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죄가 비록 우리의 구원을 해치지는 못해도 성화를 방해하기에 정죄함이 없다 해도 절대 안심하고 죄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모순과 한계를 지니고 삽니다. 이 문제에 대한 성경의 처방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3장에 주님의 세족식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주님이 발 씻김을 완강히 사양합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와 나는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겨달라고 합니다. 주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만 씻으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목욕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는 전신을 다 씻었습니다. 그럼에도 먼지 많은 세상에 사는 우리는 손발은 씻고 살아야 합니다. 그때그때 손발을 씻듯이 죄를 처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성화에 도움이 됩니다. 


손발을 씻으라는 주님의 말씀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요?

그때그때 지은 죄를 주님께 자백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9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사랑도 속으로만 할 게 아니라 언어로 고백해야 하듯이 잘못도 심정으로만이 아니라 주님께 자백해야 합니다. 가톨릭에서는 이것을 아예 제도화했습니다. 고백성사입니다. 사제를 찾아가 죄를 고백하면 사제가 주님을 대신해 사죄 선언을 합니다. 이것이 고백성사입니다. 우리는 죄를 실토해야 합니다. 개신교는 목사를 찾아가지 않고 각자가 주님께 직접 죄를 자백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직접 죄사함을 선언해 주십니다. 죄는 속에 품고 있으면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백해무익합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나아가 다 꺼내 놓으면 주님이 처치하십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주님께 자백합시다. 주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시기에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다 용서해주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믿읍시다. 


우리가 사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죄를 자백하면 다 깨끗케 하십니다. 이 말씀을 믿읍시다. 마음을 편히 합시다. 의심하지 맙시다. 죄는 반드시 처리되어야 합니다. 벌을 받거나 용서받거나 어쨌든 처치가 되어야 합니다. 죄를 속에 넣어두고 살면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이롭지 못합니다. 


자백을 통해 모든 죄를 십자가 아래에 내려놓읍시다. 우리 죄가 진홍 같이 붉어도 양털 같이 희게 된다고 했습니다. 전신 목욕을 한 사람도 더러워진 손발을 씻어야 한다는 주님 말씀을 기억합시다. 자백을 통해 사죄를 받고 더욱 건강하고 깨끗하게 삽시다.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화되는 주님의 자녀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