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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여호와 샬롬
설교본문 삿 6:24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6-24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624m.mp3

20180624m

삿 6:24

여호와 샬롬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여호와 샬롬이란 말은 여호와는 평화라는 뜻입니다. 신약 에베소서 2장 14절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이것은 십자가에 달려 당신 육체로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둘을 하나로 만든 주님에 대한 말씀인데, 주님이 우리의 평화시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성령이 평화의 영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도 주님도 성령도 평화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요 주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평화를 추구하는 평화의 사도들(peace maker)입니다. 


마태복음 5장 9절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평화케 하는 자가 평화의 사도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아들이라는 말은 헬라말로는 <휘오이>입니다. 복수로는 <휘오스>입니다. 휘오이는 아들이 아니고 자녀, 자식이란 뜻입니다. 아들만 아니라 딸들도 가리키는 말입니다. 평화를 만드는 자, 평화를 도모하는 자는 남녀를 불문하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며 살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택하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 평화를 도모하며 살라고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평화란 말의 히브리어 <샬롬>이나 헬라어 <에이레네>는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실제적이고도 관계적인 말입니다. 평화는 어느 것이나 어떤 이와의 관계에서만 성립되는 의미 있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인 관계란 어떤 것입니까?


우선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리의 모든 평화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평화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평화가 우리의 모든 평화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평하지 못하면 다른 모든 관계가 다 불편하고 갈등하고 적대하는 관계로 전락하고 맙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하나님이 범죄한 아담을 부르시며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것은 아담의 위치, 소재지를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 네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를 물은 것입니다. 아담으로 말하면 선악과를 범하기 전에는 하나님과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범죄하자 하나님과 관계가 깨졌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나님을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고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둘 사이에 평화가 깨지고 긴장과 불화가 조장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은 망가진 관계를 회복하라고 촉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관계가 원만하십니까? 화평하십니까? 긴장과 갈등 관계입니까? 만일 하나님과 관계에서 평화가 없고, 하나님이 너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고, 나는 그걸 피해 달아나는 관계라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것이 모든 평화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관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불화하면서 다른 관계가 바르고 건강하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다음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이 또한 중요한 관계입니다. 의외로 자신과 불화 가운데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날마다 자학하고 비관하고 자신을 증오하며 사는 사람들은 매사가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며 염세적입니다. 자신을 먼저 용납하십시오. 자기 자신과 먼저 화해합시다. 자기 자신과 소통하십시다.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고 관대하며 이해합시다. 주님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이웃 사랑을 도모하는 것이지만, 그 사라에는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자신과의 평화가 이웃과의 평화에 전제이자 모범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웃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 화평하지 못한 사람은 이웃과도 화해하거나 화평하거나 용서하지 못합니다. 주님은 나를 용서하셨는데, 왜 나는 내 자신을 용납하지 못할까요? 하나님은 내 모든 죄를 사하시고 나를 구원하사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는데 왜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을 못 받아들일까요? 왜 날마다 나를 자학할까요? 이제는 자신과 화해합시다. 자신에 대해 인색하지 맙시다. 자신에 대해 관대하고 자신을 사랑합시다. 자신에 대한 피스 메이커가 됩시다. 이웃 사랑은 그 다음입니다. 이 수순을 절대 잊지 맙시다. 자신에 대한 화해는 반드시 하나님과의 화해가 먼저 이루어져야 가능합니다. 아직도 우리는 자신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화해 없는 자신과의 진정한 평화는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아무리 못났다고 해도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누구 못지않게 나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확신합시다. 나도 자신을 용서하고 용납합시다. 자학처럼 무서운 것도 없습니다. 주변 사람이 나를 버리고 미워한다 해도 나 만큼은 나 자신을 사랑하고 연민하면 새 출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마저도 나를 포기하면 그 누구도 더는 버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까지도 합니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오직 자기만을 생각하고 남에게 인색하게 굴면서 자기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것도 문제지만 자기 자신에게 가혹하고 냉정한 것도 결코 성서적이지 않습니다. 자신을 평가절하하지 맙시다. 자신이 하나님의 귀한 자녀임을 새롭게 깨닫고 자신을 용납합시다. 자기 자신에 대해 피스 메이커가 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다음은 이웃과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형제, 이웃들과 잘 지내지 못합니다.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위태롭습니까? 화평보다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우리의 인간관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요 불행입니다. 하나님도 원래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칭호도 단수인 <엘>이 아니라 복수인 <엘로힘>입니다. 그런데 그 세분 하나님이 완벽한 하나로 존재하시기에 우리는 그것을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명명합니다. 복수 하나님, 공동체로 존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태초에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고 하시며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도 당연히 <우리>입니다. 사람은 남과 이웃과 형제와 더불어 살 때만 진정한 인간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삼위일체를 이루듯 우리도 그렇게 이웃과 형제와 서로 사랑하고 화해하고 화평을 이루고 살아야 합니다. 창세기 3장 9절에서는 하나님이 아담을 찾으시면서 당신과의 관계를 물으셨는데, 창세기 4장 9절에 가면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것 역시도 아벨의 위치를 물으신 게 아니라 가인이 동생 아벨과의 관계를 물으신 것입니다. 네가 지금 네 형제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네 동생 아벨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가인은 내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하고 답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네가 어디에 있느냐를 물으시며 당신과의 관계를 확인하고 계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며 우리의 이웃관계를 점검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저 북녘의 형제가 있습니다. 내일이 6.25 68돌입니다. 우리는 남북이 한 형제임에도 70년 동안 용서하지 못하고 마치 가인과 아벨처럼, 마치 에서와 야곱처럼, 이삭과 이스마엘처럼 서로 적대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제는 어떻게든 이것을 풀어야 합니다. 최근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고 실무회담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것을 잘 살려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천재일우의 기회를 베푸셨다고 믿고 남북간 평화를 이루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평화의 사도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말과 행동으로 그럴듯하게 꾸민다 해도 그들은 본질상 죄의 종들이기에 트러블 메이커가 될 뿐입니다. 우리가 남북과의 화해며 통일 문제를 세상 사람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남북 이산가족이 만날 때 태극기나 인공기 들고 가지 않습니다. 적십자기 들고 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일지 모릅니다. 


피스 메이커가 됩시다. 하나님과 화해하고, 자신과도 화해하고, 이웃과도 평화를 이루어 저 천국에서도 영원히 평화를 누리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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