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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여러 가지 시험을 이기는 비결
설교본문 약 1:2-8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6-17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617m.mp3

20180617m

약 1:2-8

여러 가지 시험을 이기는 비결


(약 1:2-8, 개정)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오늘 본문은 사실 1장 전체입니다. 야고보서 1장의 주제가 여러 가지 시험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2절에 나오는 <여러 가지>는 원어로 <포이킬로스>입니다. 뜻은 여러 가지 색깔, 빛깔입니다. 시험이란 말은 <페이라스모이스>입니다. 이 말은 유혹이나 미혹 같은 정신적 시험이 아니라 시련, 고난, 고통 같은 물리적 시험을 뜻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시험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 색깔이 참으로 다양합니다. 그래서 감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늘 시험을 당하며 살지만 우리가 거기에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시험은 겪을 때마다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도 본문은 그런 시험이 오면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어려운 말씀입니다. 시련, 아픔이 내게 시험이기에 기쁘게 여기라는 겁니다. 시험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통과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게 그 시험이 기회를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학교도 다니고 학원도 다니며 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집니다. 신앙도 시험을 통과해야 자라고 성숙합니다. 시험을 통과해서 내 믿음이 검증되어야 주님이 안도하십니다. 주님은 무책임하게 우리에게 은혜를 던지지 않습니다. 주님은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감당할만한 믿음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주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전에 시험하십니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하나같이 망하는 이유가 준비가 안 되어서 그렇습니다. 돈이 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는 겁니다. 살아가다가 여러 빛깔의 고난이 닥치면 그것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당황하거나 피하지 말고 그 시험을 잘 치르라는 겁니다. 그래야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시험이 올 때 기뻐하라는 것은 주님이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비현실적인 것 같고 역설이지만 그렇게 해야만 우리에게 복이 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닥치는 고난을 저주나 불행이라 하지 않고 시험이라고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기회를 주십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 닥쳤을 때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우선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5절 이하입니다.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우리에게 시험이 닥쳤을 때 가장 절실한 게 지혜라고 합니다. 공감하십니까? 시험을 당할 때 우리가 가장 답답해하는 부분은 하나님이 왜 이런 고난을 주셨을까? 무엇을 잘못했기에 하나님이 이런 아픔을 주실까? 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이 없으면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면 시험에 압사당하고 맙니다. 답을 얻는 데 실패하면 시험 당한 만큼 아플 뿐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에는 성령이 주시는 영적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 시험도 지혜가 있어야 잘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시험도 영적 지혜가 있어야 바르게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신령한 지혜가 있어야 우리가 겪는 시험에 담긴 하나님의 기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러한 지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말고 구하라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자는 아예 받을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지혜가 없으면 시험의 비밀을 분별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우리에게 닥친 시험을 명쾌하게 해석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시험을 감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합당한 결단을 통해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영적 지혜가 없어 늘 시험이 아픔과 불행, 심하면 저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본문은 무엇보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지혜의 본성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지혜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분으로부터 우리가 가진 상대적인 지식이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 지식은 망가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절대로 나무라시지 않고 후히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겪는 시험의 정체를 꿰뚫어 볼 수 있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비관하거나 불행으로 여기지 않고 도리어 기뻐하고 감사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바울은 수많은 사람의 병을 고치기도 하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병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병을 몸을 찌르는 가시, 사탄의 사자라고 했습니다. 더구나 학자들은 그의 가시를 간질병으로 봅니다. 선교한다는 사람이 멀쩡하게 설교하다가 발작이 일어나면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자기 가시를 두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고치시지 않고 대신 지혜를 주셨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가시의 신비를 해석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남다른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입었습니다. 바울은 영적 신비 체험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삼층천까지 다녀 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칫하면 교만하기 쉬웠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지극히 사랑하사 그 몸에 하나의 제어장치로 아픈 가시를 찔러 박아놓았다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입니다. 이것은 바울의 고백, 깨달음입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을 깨달은 바울은 더는 자신의 육체의 가시에서 벗어났습니다. 사탄의 사자가 복이 된 겁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는 박혀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자기의 가시를 보고서도 시험에 들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의 가시를 자랑합니다. 더는 저주가 아니라 복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제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3절과 4절에는 인내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 이하를 보십시오.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인내하고 성내지 말라는 말씀은 자신을 잘 관리하고 통제하라는 뜻입니다. 시험 받을 때 자신을 잘 통제하되 특히 입을 제어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범하는 죄가 많습니다. 우리는 별 것 아닌 일로 이웃과 다투기도 합니다. 신세타령하다가 아예 자리에 드러눕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12절을 보면 참고 견디고, 말하고 성내는 것을 억제하라고 합니다. 


시험 당할 때 그 감정을 발산하면 도움이 될 터인데 왜 성경은 자제하라고 할까요? 왜 감정 표현을 자제해야 할까요? 20절 말씀을 보면,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허락하신 시험에 우리의 인간적 감정이 통제되지 않은 채 원색적으로 개입되면 절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 감정이 개입되면 하나님의 의도하신 방향이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까요? 마귀가 개입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우리가 흥분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마귀의 부채질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험으로 말미암아 결국 치명상을 입힙니다. 시험에 담긴 복이 아닌 깊은 상처와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 되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제하라고 당부합니다. 마귀에게 역이용 당하지 않기 위해서 함부로 자기 감정을 폭발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의 감정, 우리의 혀를 잘 관리하고 단속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험을 통과하는 비결입니다. 


셋째는 세속에 물들지 말라고 합니다. 1장 27절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이 말씀은 세속과 타협하거나 수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속에 자기 존재를 내주지 말라는 뜻입니다. 평소에는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 시험이 닥치면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갖 세속적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시험이 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게 사실입니다. 평소에는 찾지 않던 점쟁이나 부적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로또를 사기도 합니다. 목사라는 사람이 도박장을 드나들다 들켰습니다. 그가 뭐라고 했을까요? 교회 재정에 도움이 될까 싶어 그랬다고 합니다. 이것은 다 시험을 핑계로 세상에 영혼을 판 행위입니다. 


우리는 성도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백성이란 뜻인데 보다 깊은 뜻은 구별된 백성이란 뜻입니다. 성도라는 호칭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함축한 대단히 중요한 호칭입니다. 우리는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 구별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산다고 세상과 타협하여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들입니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비록 한국에 산다고 해도 미국 시민입니다. 마찬가집니다. 우리의 여권은 하나님 나라의 여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시험이 닥치고 고난이 닥칠 때 우리는 반드시 성도로서의 본때를 보여야 합니다. 신앙을 다 내던지고 당장 세속적인 방법을 찾아 나설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성도로서의 정체성을 잘 지켜야, 성도 본연의 자세를 흩트리지 않아야 하나님이 인정하십니다. 그러면 그 시험을 우리에게 큰 은혜와 복이 되게 하십니다. 


올해는 다양한 시험에 실패하거나 낙오하지 않고 오히려 성숙하고 흥하는 복을 누리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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