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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한 알의 밀
설교본문 행 7:54-8:1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6-10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610m.mp3

20180610m

행 7:54-8:1

한 알의 밀


(행 7:54-8:1, 개정) [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세계6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독일 뮌헨의 알테 피나코텍(Alte Pinakothek)에 가면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반 스코렐(Jan van Scorel)의 전용관이 있습니다. 그는 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는데, 성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대작입니다. 등장인물의 크기가 다 실물 크기입니다. 우리식으로는 약 100호나 150호입니다. 그리스도의 세례, 세 박사의 경배 같은 작품이 유명합니다. 스데반의 순교라는 작품도 명작입니다. 전에는 방 하나에 그림 한 개가 걸려있었습니다. 그 그림 앞에 서면 실제 스데반의 순교현장에 서 있는 듯 그림에 압도당합니다. 스데반이 하늘을 우러러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우측에는 분노한 유대인들이 손에 돌을 들고 스데반을 내려찍을 태세입니다. 그 좌측에는 붉은 겉옷을 걸치고 그 사건을 지휘하는 사울이 오만한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그림이 매우 실감납니다. 스데반이 우러러 보고 있는 하늘에는 주님이 십자가를 품에 앉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실 수 없어 일어서서 그 순교 장면을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당시의 그 긴박감과 성스러움이 그대로 전달되는 스코렐의 걸작이 스데반의 순교입니다. 


로버트 토마스 목사는 한국 개신교사의 첫 순교자였는데, 스데반은 2000년 교회사의 첫 순교자입니다. 스데반에 대해 궁금한 것은 왜 그가 첫 순교자였을까 입니다. 왜 사도들이 아니라 일곱 집사 가운데서 순교자가 나왔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시로서는 성령 충만이나 지혜, 믿음, 권능으로 볼 때 스데반만큼 준비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실수로 순교하는 것은 아닙니다. 순교자로서의 자질과 소양을 스데반이 가장 잘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첫 순교자로 삼은 것입니다. 사도 가운데는 첫 순교자보다는 첫 배신자, 자살자인 가룟 유다가 나왔을 뿐입니다. 다행히도 제2호 순교자는 사도 가운데 나왔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나오는 야고보입니다.


사도행전 6장 3절을 보면 스데반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남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합니다. 5절을 보면 일곱 집사 가운데 수석 집사였고, 8절을 보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기사와 표적을 행했다고 하고, 10절을 보면 그 얼굴이 천사처럼 빛났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최고의 설교가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 2절 이하 53절까지를 보면 그가 당시 산헤드린 공회에 가서 심문을 당하다가 거기서 긴 설교를 하는데 그 내용과 기승전결이 가히 최고 수준이었다는 평가입니다. 


이렇게 스데반이 명 설교를 하였지만 성 밖으로 끌려 나가 돌에 맞아 순교하고 맙니다. 사도행전 7장 55절 이하입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59절 이하도 보십시오.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이 주님처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스데반의 순교에 뜻밖에도 깊이 바울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본문 58절입니다.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사울이 스데반 처형의 주범이었습니다. 사도행전 8장 3절도 보십시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 이후 더욱 기독교 박멸의 선봉장이 됩니다. 사도행전 8장 1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사도행전 9장에 가면 사울이 첩보를 입수하고 믿는 자들을 색출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도상에서 극적으로 주님을 뵙고 전격 기독교로 전향하는 초유의 회심 사건이 발생합니다. 9장 1절 이하입니다.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울은 이렇게 극적으로 회심합니다. 


사울이 회심한 후 가장 먼저 한 것이 이름부터 바꾸는 것입니다. 사울에서 바울이 된 겁니다. 사울일 때는 독불 장군이고 기고만장했는데 이제는 겸허하게 살겠다는 다짐으로 바울이 된 겁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가리켜 만삭 되어 나지 못한 자라고 합니다. 또한 그는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도 했습니다. 자신의 화려한 스펙과 이력을 오물처럼 내버렸습니다. 과거 유대교 시절에는 극단적으로 교만했던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한 후 극단적으로 겸손히 살았던 사람이 바울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저는 이 모든 것이 다 스데반을 죽인 전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데반을 쳐 죽인 원죄 때문에, 그 아픔을 평생 지고 살았기에 바울이 그렇게 겸손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살해한 죄를 한 시도 잊지 못했습니다. 그 사건만 생각하면 언제나 죄인 중에 괴수였고, 만삭 되어 나지 못한 자였고, 큰 자는커녕 지극히 작은 자였습니다. 


첫 순교자 스데반은 바울이 던진 돌에 맞아 죽었는데, 바울은 어떻게 죽었습니까? 바울도 순교했습니다. 4년간 로마 감옥에 갇혀 있다가 주후 67년 네로 황제 때 참수를 당합니다. 지하 감옥에서 나와 약 2-30미터 떨어진 톨레 파운타나 라는 형장에 끌려가 대리석으로 된 기둥에 머리를 얹어 목베임을 당합니다. 형 집행관의 칼에 목이 잘리자 바울의 머리가 땅 바닥에 공처럼 세 번 튀었고, 튄 곳마다 샘이 솟아나 세 개의 분수(트레 폰타나)가 솟았다고 합니다. 그의 시신을 루치나라는 여성도가 수습해 장례했다고 전해집니다. 톨레 파운타나 형장에는 현재 바울 순교 기념교회가 들어서 있습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이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신실한 사람들을 그토록 비참하게 순교라는 이름으로 죽게 하실까요? 순교자들은 남다른 주님에 대한 사랑을 품고 살았던 사람들인데,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들의 위기 가운데서 보호해 주셔야 할텐데, 하나님은 그들을 왜 그토록 참혹한 죽음에 이르게 할까요? 결코 그것이 손해나 패배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독한 역설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이기는 것이고, 그에게는 영광이 되고 영원한 생명이 되기에 그렇습니다. 땅에 떨어진 밀알 한 알이 썩으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가져옵니다.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상처는 어떤 의미로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기에 주님이 그것을 허락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백해무익한 시련이라면 주님이 사전에 막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도 마찬가집니다. 비록 처참하게 스데반이 목숨을 잃지만 그것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태어납니다. 스데반의 순교가 없었다면 사울이라는 유대교 전사는 있어도 바울이라는 기독교 사도는 없었다고 확신합니다. 스데반의 순교야 말로 사도행전 역사가 가능하게 했고, 초대교회의 밑거름이 되고, 2000년 교회사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한 때 저도 금방 돌에 맞아 죽을 사람에게 왜 그런 권능과 은사를 주셨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말 성령 충만과 능력이 필요했던 사람이 스데반이었습니다. 성령 충만, 지혜, 기사, 표적은 절대 자기과시나 출세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 십자가를 잘 지라고, 주님의 뜻을 이루라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궁극적으로는 순교하라고 주신 은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은사를 팔아먹습니다. 자기를 선전하고 장사합니다. 스데반은 젊은 나이에 자신이 가진 재능과 은사를 제대로 펼쳐 보지 못한 채 죽은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값지게 죽은 사람, 가장 복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가 가득하고, 얼굴이 빛날 때, 가장 영안이 열려 하늘에 계신 주님이 서신 것을 볼 때 그때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십니다. 스데반이 가장 최상일 때 주님이 그를 데려가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아등바등하다 죽는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순교했던 스데반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순교자들을 생각합시다. 자신의 전 존재를 한 알의 밀알처럼 던져 많은 결실을 누리게 한 위대한 신앙의 선진들을 잊지 맙시다. 그들의 믿음과 희생을 기리고 계승합시다. 또한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도 순교자들의 삶과 정신을 전수합시다. 순교자들의 신앙으로 승리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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