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18
Extra Form
설교제목 자연과 인간
설교본문 창 3:17-19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6-03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603m.mp3

20180603m

창 3:17-19

자연과 인간


(창 3:17-19, 개정)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지난주 목요일 5월 31일은 유엔이 정한 바다의 날이었습니다. 6월 5일은 세계 환경의 날입니다. 오늘은 한국 교회가 함께 지키는 환경주일입니다. 


여러분, 자연과 인간은 어떤 관계입니까?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오는 천지창조의 과정을 보면 하나님이 모든 자연을 말씀으로 창조하십니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에 창조하신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2장 7절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말씀이 아니라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히브리말로 흙은 <아다마>이고, 사람은 <아담>입니다. 본문 19절 하반절도 보십시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이 말씀은 허무를 노래하는 게 아니고 인간도 자연임을 밝히는 말씀입니다. 흙이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은 흙입니다. 자연이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은 자연입니다. <신토불이>는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 사상이기도 하지만, 성경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몸과 흙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담과 아다마, 자연과 인간의 운명이 서로 맞물려 있다고 합니다. 본문 17절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절 상반절도 보십시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범죄한 것은 인간인데 왜 땅까지 저주를 받습니까? 이때부터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땀을 흘리지 않고는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텃밭을 가꿔보신 분은 아실 것입니다. 심은 적도, 가꾼 적도 없는데 채소보다는 풀이 훨씬 더 잘 자랍니다. 여름에는 그 기세가 무서울 지경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죄로 땅이 저주를 받아서 그렇다고 합니다. 


노아 때도 그랬습니다. 창세기 6장 5절 이하를 보십시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사람의 죄가 세상에 가득하고, 그 계획이 악해서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셨다는 사람만 쓸어버릴 것이지 왜 가축과 새까지 다 멸절하겠다고 하십니까? 6장 17절도 보십시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십니까? 하나님이 자연과 인간을 한통속으로 보시며 늘 같은 처분을 내리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자연과 인간은 하나입니다. 아담이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신토불이여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원초적인 근거뿐 아니라 하나님의 위탁이라는 측면도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6을 다시 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그렇게 인간을 창조하신 뒤에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장 28절 이하입니다.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세계를 인간에게 위탁하는 대목입니다. 이 순간부터 인간이 자연의 운명을 접수하게 됩니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이 명실상부한 공동 운명체가 된 겁니다. 그래서 자연이 타락하면 인간도 타락하고, 인간이 타락하면 자연도 타락하며, 인간이 저주를 받으면 자연도 저주를 받고, 인간이 새로워지면 자연도 새로워집니다. 이것이 신구약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바울의 자연관을 보면 더욱 분명합니다. 로마서 8장 19절 이하입니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저는 이 말씀을 볼 때마다 늘 놀랍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쓴 때가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입니다. 그때 무슨 공해가 있었겠습니까? 그때 무슨 환경 파괴니 생태학적 파국이라는 개념이 있었겠습니까? 그야말로 모든 자연과 환경이 원시적인 모습과 상태였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바울은 이미 들에 핀 한 송이의 꽃을 보며 자연을 예찬하고 하나님의 솜씨를 찬양하기보다 자연의 신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얼마나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자연관입니까? 그러면서 바울은 자연이 하나님의 자녀들, 즉 거듭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야 자연도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 귀에는 안 들리지만, 하나님의 귀에는 자연의 비명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성의 귀가 열린 사도 바울은 이미 2000년 전에 자연의 탄식과 신음소리를 들은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만을 구원하시고, 세상의 피조물 가운데 인간만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완전히 착각한 겁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다고 했지 인간만을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 못지않게 자연도 사랑하고 구원하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인간 중심적으로만 성경을 해석해 왔습니다. 아전인수만 해온 겁니다. 노아의 방주, 축구장 크기의 유조선처럼 생긴 배입니다. 연면적은 축구장 3개 크기입니다. 그런데 그 큰 방주에 탄 사람은 노아의 8식구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120년간이나 그 큰 배를 건조하게 하셨을까요? 노아의 방주는 사람만을 위한 구원의 배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의 방주를 통해 자연도 구원하셨습니다. 당시 그 배의 1, 2층은 자연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3층에는 짐승과 노아 가족의 먹거리가 쌓여 있었고, 그 한 귀퉁이에서 아의 8식구가 1년간 생존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도 자연도 다 사랑하십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새 깃털에 주 예수를 믿으라는 요절이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까? 날아가는 작은 새 한 마리, 들의 이름 없는 풀 한 포기도 다 하나님이 먹이고 가꾸시는 그 사랑을 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절대 공중의 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자연에 관심을 두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내 머리카락뿐 아니라 날아가는 새의 깃털도 다 세고 계십니다. 


자연은 숭배의 대상도 아니지만 절대로 약탈이나 학대의 대상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더러 호하고 잘 다스리라고 맡기신 우리의 영원한 이웃입니다. 자연은 저주도 복도 영생도 우리와 함께 나눌 영원한 반려요 공동 운명체입니다. 훗날 부활의 영원한 세계도 인간에게만 속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 나라를 오히려 자연친화적으로 표현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합니다. 이사야 11장 6절 이하입니다.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요한계시록 22장 1절 이하입니다.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장차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도 부활체로 변화된 세계지만, 자연도 완벽히 회복된 세계입니다. 그 나라는 오염은 없고 푸른 열매가 날마다 달마다 새롭게 열리고, 더는 눈물도 아픔도, 병도 없는 완전하고 완벽한 세계입니다. 이곳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연과 더불어 영원히 살게 될 완벽한 새 세계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살 곳입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자연이 저주받았다는 말씀이나 지금도 자연이 신음하고 고통 받으며 하루빨리 인간이 새롭게 거듭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말씀을 좀 더 진지하게 들읍시다. 자연의 따뜻한 이웃으로 삽시다.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