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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아비들아
설교본문 엡 6:4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5-06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506m.mp3

20180506m

엡 6:4

아비들아!


(엡 6:4, 개정)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우리는 누구도 내가 원하는 대로 부모를 만나고 자식을 선택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연히 자식이나 부모를 만난 사람도 없습니다. 가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래서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입니다. 자연을 보십시오. 5월의 산하가 얼마나 푸르고 싱싱하고 아름답습니까? 원색적인 자연이야말로 얼마나 조화롭고 완벽한지 모릅니다. 가족관계도 원래는 그랬습니다. 가정도 가족도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입니다. 


그러나 자연이 그렇듯 가정도 오염되고 망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작품이지만 수많은 가정이 무너졌습니다. 원초의 가정인 화와네를 보십시오. 마귀가 미혹해서 그 가정이 타락했습니다. 마귀는 지금도 금단의 열매를 범하라고 미혹합니다. 이 사람이 아니라 저 사람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꾑니다. 부부뿐 아니라 부자간에도 그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6장 1절에는 부모가 나오고, 2절엔 아버지와 어머니, 4절엔 아비가 나옵니다. 이것은 모두 자녀양육의 주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 자녀 양육의 주체이지만 그 최종적 책임이 아비들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중요한 자녀양육의 원칙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아비를 한 가정의 머리로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5장 23절입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래서 하나님은 훗날 한 가정의 자녀양육의 결산도 반드시 아비와 하십니다. 인류 최초의 가정도 보십시오. 사실 하와가 먼저 범죄했으나,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 책임을 묻습니다. 성경은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죄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담이 그 가정의 머리요 대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녀양육의 원리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아비가 책임적으로 수행하라는 겁니다. 사회생활하고 살기에 바쁘다구요? 그것보다 자녀양육이 백 번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자녀양육의 책임이 이미 오래 전 아비 손을 떠나 어미에게로 갔고, 어미는 그 책임을 학교와 학원에 떠넘기고 말았습니다. 신앙교육도 교회보다는 원천적으로 아비에게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떤 모습입니까? 목회자가 요즘 아무개가 안 보인다고 물으면, 엄마들의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우리 애는 그렇게 재미가 없다. 우리 애는 아침에 못 일어난다’고 합니다. 우리는 아직 하나님이 안 무서운 겁니다. 그래서 부모가 하나님보다는 세상을 더 의지하거나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부모는 아들딸들을 세상을 더 따르게 만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신앙교육에 실패했다는 산 증거입니다. 자식을 믿음으로 양육하는 일만큼은 책임지고 해야 합니다. 단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해도 내 자식에게 믿음을 전수해야 합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대학 가고, 결혼 잘 하고, 출세하는 것은 하나님 소관입니다. 그러나 자식을 믿음으로 양육하는 일만큼은 전적으로 부모의 몫이고 아비의 책임입니다. 


목회자로서 제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자녀들의 믿음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고 무심한 부모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본인들은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식들의 신앙생활에 대해서는 그토록 무책임할 수 없습니다. 정말 자식을 사랑한다면 예수 믿고 구원 받고 천국 가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이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돈 버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자녀를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그 책임을 부모에게 최종적으로 아비에게 묻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신앙만큼은 부모도 어쩔 수 없다거나, 나는 신앙만큼은 아이들의 선택에 맡긴다는 무책임한 말을 하지 맙시다. 부모의 책임을 다 합시다. 신앙교육은 부모의 가장 신성한 의무이자 사명입니다. 


자녀들을 양육하되 주의 교양과 교훈으로 하라고 합니다. 자녀양육의 규범이 주의 교양과 교훈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구약 성경이 자녀양육의 교과서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교양도 필요합니다. 진학, 취업, 출세하는 데 필수입니다. 우리에게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의 교훈입니다. 옛날에 어떤 분이 고3인 딸에게 교회 출입을 금지시켰습니다. 딸이 원해도 엄마는 대학 들어간 다음에 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심하다고 했더니 엄마는 버럭 화를 내며 천국은 못 가도 서울대에는 가야한다는 내 심정을 아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걸 못 잊습니다. 아무리 세상 지식이나 교양이 중요하다 해도 주의 교양과 교훈을 우선시 하는 사람이 진정한 신자입니다. 세상 지식보다 주의 교양과 교훈에 내 자식의 영원한 운명을 거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세상 지식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왜 주의 교양과 교훈이 더 절대적일까요? 


세상 교육은 내 자식들이 좋은 대학을 가고, 직장을 얻고, 출세를 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내 자식의 영혼을 살리고 천국으로 인도하지는 못합니다. 주의 교양과 교훈, 주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만나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녀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가이드북입니다. 어디서 세상 지식과 주의 교훈을 비교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자녀에게 세상 지식만 강요하는 부모는 자식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세상에서 아무리 출세한다고 한들 그 영혼이 천국에 가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잘 아시듯 유대인들은 오늘날까지도 쉐마를 고집합니다. 세상 지식 이전에 아비가 자식들에게 쉐마 교육부터 합니다. 신명기부터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쉐마는 히브리말로 ‘들으라’는 뜻입니다. 신명기 6장 4-9절이 쉐마의 주제 요절입니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자녀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쉐마 교육입니다. 


자녀들에게 주의 교양과 교훈으로 양육합시다. 그리하면 늙어서도 그것이 떠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고 청년과 성인이 되어 교회를 등지고 신앙을 떠난 것은 어릴 때 주의 교양과 교훈으로 양육하지 않은 탓입니다. 그것 또한 다 부모와 아비 책임입니다. 어릴 때, 가장 순수할 때 제대로 신앙교육을 하면 늙어서도 절대 그것이 떠나지 않습니다. 좀 더 책임적인 부모와 아비가 됩시다. 우리의 자녀가 주님을 믿고 천국 가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을 노엽게 말라고 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 지켜야 할 또 하나의 지침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꾸짖지 말라는 게 아니라, 자녀들의 마음과 정서, 영혼에 상처를 입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흠집을 남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꾸중이나 징계를 받을 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하라는 겁니다. 아무리 내 자식이라 해도 인격적인 모욕이나 영혼을 해칠 권리는 부모에게 없습니다. 자식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이 부모에게 양육을 맡겼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부모라 해도 함부로 화를 내거나 감정을 폭발하고 분풀이 할 권리는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말로는 사랑의 매라 하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그것도 다 부모의 감정풀이의 한 방식입니다. 언어폭력은 얼마나 심하고 파괴적입니까? 어른들의 언어폭력의 최대 피해자가 자녀들이라고 합니다. 남에게 함부로 말했다가는 값 비싼 대가를 치르기 때문에 남에게는 할 수 없는 욕도 자녀들에게는 거침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자녀들은 부모의 매보다 언어폭력으로 받는 상처가 20~30배 더 많다고 합니다. 또한 자녀양육에 일관성이 없습니다. 부모의 기분에 좌지우지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들이 부모의 기분을 살핍니다. 이런 게 다 아이들을 해치는 못난 짓입니다. 그들 가슴에 상처를 남기며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죄악입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자녀들을 지키고 양육해야 할 부모가 무방비 상태의 자녀들을 해치고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기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들을 양육하지 못해서 그들이 천국 여정에서 탈락하거나 낙오하게 만들면 하나님이 반드시 부모에게 책임을 물으십니다. 


랍비들의 가르침입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전까지, 자식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 전에는 절대 죽어서 안 된다고 합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 그분께로 돌아가도록 만들어 놓고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디 자식들에게 신앙을 남깁시다. 주의 교양과 훈계를 자식들에게 남깁시다. 어린이주일을 맞아 부모, 특히 아비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골수에 새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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