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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피로 사신 교회
설교본문 행 20:28-31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4-29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429m.mp3

20180429m

행 20:28-31

피로 사신 교회


(행 20:28-31, 개정)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으로부터 15년 전만 해도 한국교회 교인수가 1200만이 넘었습니다. 2002년에 발표한 문화관광부 통계에 의하면 12,825,000명 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0년 전 쯤에는 1000만 이라고 하더니 2013년 인구 센서스 때는 860만이었고, 지금은 다시 700만 명대로 내려 앉았습니다. 몇 년 전 우리 총회 교육자원부에서 개최한 목회포럼에서는 2028년이 되면 헌금이 반토막이 나고, 2050년이 되면 교인수가 지금보다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고 예측했습니다. 전에는 교인들이 수평이동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전체 분위기는 매우 유동적이었지만 절대 수치는 안 줄었습니다. 


아무래도 작은 교회들은 부흥이 지상과제이기에 열심히 전도합니다. 그런데 전도해서 개척교회로 온 신자들이 그 교회에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좀 더 환경이 낫고 덜 고생스러운 중대형 교회로 수평이동을 한 겁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들은 죽도록 전도해도 다 빠져나가기에 늘 힘들었고, 기성 큰 교회들은 이미 충분히 큰데도 더 큰 초대형 교회로 비대해졌습니다. 이것이 지난 10-15년 전까지 한국교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뚜렷한 추세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회를 찾아 교회를 전전하다, 이 세상 어디에도 그런 이상적인 교회는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에서 실망하고 다른 교회를 찾아 나서지만 그곳에서도 역시 같은 아픔을 겪고 좌절합니다. 어느 교회나 처음에는 순수한 것처럼 보이나 어느 순간이 되면 본색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입만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치지 다른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습니다. 당회가 편 갈라 싸우고, 제직회만 했다하면 진흙탕 싸움이고, 부서가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 위로와 평안을 얻기보다 오히려 상처를 잔뜩 입고 피를 흘리며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선호하는 신앙생활의 행태는 등록 안 하고 직분 안 맡고 심방이나 성경공부 구역예배 없이 주일 낮예배 한 번 참석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대신합니다. 그것도 기도할 때 들어왔다가 축도할 때 살짝 빠져나갑니다. 그런 신앙생활을 다른 사람이 모른 척 해주기를 바랍니다. 괜히 그런 사람 붙잡고 이것저것 들이밀면 그 사람 역시 다른 곳으로 갈지 몰라 상관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달라졌습니다. 그동안 잘 나가던 대형교회들이 최근에 사고를 많이 쳤습니다. 여기저기서 재정비리가 터지고, 세습문제가 교단뿐 아니라 사회문제로 번지고, 목회자들과 장로들의 싸움, 각 신학대학의 내부갈등 등을 사회법에 호소함으로써 다 밝혀지게 되었고, 최근에는 미투 열풍에 교회도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좋으나 교회는 싫다는 겁니다. 목사 같지 않은 목사, 장로 같지 않은 장로가 많아서 차라리 자기는 가나안 신자(교회 안 나가는 신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무교회주의자가 된 겁니다.


무교회주의는 외국에도 많이 있습니다. 퀘이커나 브루더호프 같은 단체가 있고, 일본에는 우찌무라 간조, 우리나라에는 김교신, 함석헌 같은 사람이 모두 무교회주의자입니다. 여러분은 무교회주의자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앙은 가져도 교회는 부정하는 사람들이 세련되고 멋있어 보이십니까? 현실 교회들의 모순과 한계를 생각해보면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신앙인들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여러분, 교회는 근본적으로 사람이 만든 조직이나 기구가 아닙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신앙 편의를 위해 교회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무교회주의자들이나 교회 생활을 포기하는 요즘 우리나라의 수십 만 수백 만의 가나안 신자들이 착각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를 주고 사신 공동체입니다. 28절 하반절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합니다.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라도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교회는 절대 거부되거나 과소평가되거나 절대 폄하될 수 없습니다. 피는 곧 생명이라는 뜻인데, 사람의 피가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 피를 바쳐 세운 기관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당신 생명을 바쳐 세운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니 그 의미가 얼마나 크고 그 목적이 얼마나 중하겠습니까? 피로 산 백성, 피로 산 자녀가 아닙니다. 피로 산 교회입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대로 교회에는 참 문제가 많습니다. 현실 교회는 절대 천국이 아닙니다. 교회 출석하는 성도들도 절대 천사가 아닙니다. 본문의 에베소 교회를 보십시오. 하나님이 피로 세운 교회인데도 이리가 와서 양떼를 물어 죽일 것이라고 합니다. 또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교인들을 선동할 것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5절 이하입니다.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처음 개척해서 3년간 목회한 곳입니다. 바울이 3년간 한 교회에 머문 것은 에베소 교회가 유일합니다. 그런데도 얼마나 실망스러운 모습입니까? 왜 교회가 작은 천국이 아닐까요?


교회는 굳이 비유하자면 병원입니다. 영적으로 병든 자들이 모여 치유를 받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병원이지 천국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는 각종 병자뿐 아니라 미투에 걸린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교회는 병원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렇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거나 상처받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런 환자, 죄인들이 와서 치유 받고 새롭게 되고, 새 출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에 대한 가장 고전적이고 오래된 비유와 해석은 교회가 노아의 방주라는 것입니다. 옛날 노아 방주가 신약시대 교회의 가장 완벽한 모형입니다. 노아시대의 방주는 하나님이 허락한 유일한 구원의 방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방주의 환경은 결코 쾌적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최악이었습니다. 3층으로 된 축구장만한 직사각형 배 안에 창이라고는 공중으로 난 환기구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온갖 짐승과 노아의 여덟 식구가 무려 1년이 넘도록 함께 지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방주 안이 얼마나 냄새가 고약하고 시끄럽고 갑갑했겠습니까? 그렇다고 그게 싫어 못 견디겠다며 그 방주에서 탈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사람도 별 수 없이 수장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고약한 냄새도 참고 갑갑함도 견디고 짐승의 울고 싸우는 소리도 인내했기에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그 방주를 통해 노아의 가족이 다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교회 생활이 어려울 때마다, 교회 생활에 회의를 느낄 때마다 반드시 이 두 가지를 기억합시다. 교회는 멀쩡한 사람, 의인들의 공동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죄인들, 영적 환자들의 공동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라도 다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시다. 그리고 교회가 구원의 방편인 것은 맞으나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그 내부 환경은 결코 쾌적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래도 최후의 승자가 되려면 교회를 고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해 간곡하게 두 가지를 당부합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입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우선 남을 불쌍히 여기라고 합니다. 환자니까 이해하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께 치료 받는 환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주를 탈출하면 안 됩니다. 우리 눈엣가시로 보이는 사람을 불쌍히 여깁시다. 다음은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라고 합니다. 바울의 권면은 늘 그렇습니다. 바울은 ~을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말 다음에는 ~을 하라는 긍정적인 말로 권면을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안 된다는 말보다는 된다는 말을 해야 하고, 하지 말자는 말보다는 하자고 해야 합니다. 고칠 수 없다는 말보다는 반드시 할 수 있다고 해야 합니다. 기적은 절대 부정적이고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데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데서 발생합니다. 


우리 푸른교회가 창립 23돌을 맞았습니다.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고 희망과 비전을 가집시다. 안 된다, 못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음을 믿읍시다. 희망을 접지 맙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반드시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변심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이 피로 사신 교회인 방주에 남아 단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모두 구원에 이르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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