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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갈릴리의 봄
설교본문 마 13:1-9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4-22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422m.mp3

20180422m

마 13:1-9

갈릴리의 봄


(마 13:1-9, 개정) [1]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2]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가 앉으시고 온 무리는 해변에 서 있더니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이 비유의 말씀은 마가와 누가복음에도 나옵니다. 1절입니다.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그 날은 언제입니까? 갈릴리의 어느 봄날입니다. 2000년 전 어느 봄날 갈릴리 호숫가의 전경을 연상해 보십시오.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습니다.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 현장감이 넘칩니다. 시기적으로는 요즘 시기입니다. 주님의 화두는 농사 이야기입니다. 왜 씨 뿌리는 이야기를 주님이 하셨을까요? 봄에 잘 어울리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뭍에서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들의 뒤쪽으로 드넓은 밭에서 농부들이 열심히 씨를 뿌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화술은 항상 그렇습니다. 공중의 새가 날아가면 저 새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 새를 하나님이 기르신다고 하시며 너희는 저 새들보다 귀하다고 하셨고 왜 걱정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요즘 라일락 향기가 극렬합니다. 마침 들에서 백합화 향기가 실려오자 저 백합화를 보라고 하시며 하나님이 저 꽃을 기르신다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의 영광도 저 꽃 만하지 못했다고 하시며 왜 걱정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늘 구체적입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야말로 9절 말씀처럼 귀 있는 자는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어느 봄날 한 농부가 지금 저 밭에서 씨를 뿌리고 있는 농부처럼 밭에서 밀을 뿌렸습니다. 갈릴리는 팔레스틴의 곡창지대입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비해 곡창지대라 불릴만하지 그곳은 땅이 척박했습니다. 돌투성이에다 엉겅퀴 같은 가시나무가 많은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린다 해도 옥토에 떨어진다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씨는 돌밭에, 가시떨기에, 길가에, 옥토에 떨어졌습니다. 갈릴리의 낱알은 최저 35개에서 100개까지 열렸다고 합니다. 


주님이 이 비유를 13장 19절 이하에서 설명하십니다. 씨는 천국 말씀, 복음입니다. 밭은 말씀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의 토양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들으시면서 각자의 마음 밭을 정직하게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토양은 길가입니다. 3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길 가는 밭둑 같은 것을 말합니다. 씨앗을 뿌릴 때 한 움큼씩 쥐고 흩뿌립니다. 그러다보니 밭둑 같은 데도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런 땅은 사람들이 밟고 다녀 단단합니다. 우리가 흔히 씨도 안 먹힌다고 하는데 바로 그런 땅이 길 가입니다. 그런데 씨가 떨어지면 당장 새가 와서 먹어버립니다. 사람들 가운데 길 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해석인 19절입니다.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이런 사람은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말씀이 그 사람의 마음 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마음 문이 닫혀 있어서 그렇습니다.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 있어서 아무리 말씀을 선포해도 용납되지 못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아무 감동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받은 말씀도 빼앗깁니다. 새는 19절을 보면 악한 자라고 했고, 마가복음에서는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8장 12절에서는 사탄이 즉시 씨를 빼앗아 가는 이유를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두 번째 토양은 돌밭입니다. 5절 이하입니다.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돌밭에서는 농사가 안 됩니다. 작물이 뿌리를 못 내립니다. 겨우 움은 틔우지만 뿌리를 내리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곧 말라 죽습니다. 20절 이하에 나오는 주님의 해석입니다. “[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주님의 적나라한 해석입니다. 밭은 밭인데 흙이 깊지 못한 밭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말씀의 씨가 뿌려지면 일단 수용은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그들은 조금만 시련이 와도 당장 넘어집니다. 마치 냄비신앙 같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눈물도 흘리고 서원도 하지만 작은 어려움만 닥쳐도 낙심합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신앙이 얕아서 툭 하면 시험에 들기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세 번째 토양은 가시밭입니다. 7절입니다.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이 말씀에 대한 주님의 해석입니다. 22절입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이 해석 또한 극명합니다. 마음이 가시밭 같은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말씀보다는 늘 세상의 욕망과 물질에 대한 애착이 훨씬 강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해도 가시나무에 기운을 빼앗기듯 말씀이나 성령의 역사가 세상의 욕망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이 강해서 그렇습니다. 세상의 욕구가 성령의 역사를 이기는 꼴입니다. 씨가 가시나무 기운에 압도당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은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 부릅니다. 성령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데 육에 잡힌 영혼인 것입니다. 지극히 세속적인 신자입니다. 세상과 한통속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지만 늘 딴 생각을 합니다. 몸은 교회에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토양의 사람도 믿음이 자라거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옥토입니다. 8절입니다.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씨앗이 옥토에 떨어지면 최고 100배에서 최저 30배는 건집니다. 옥토는 23절에서는 이런 땅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입니다. 한마디로 씨가 먹히는 땅이 옥토입니다. 누가복음 8장 15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옥토는 착한 마음, 사모하는 마음, 순종하는 마음, 결단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풍성한 열매를 내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왜 말씀을 들어야 할까요? 지적 만족을 위해서 입니까? 한 시간 예배드리는 순서에 들어 있기에 들어주는 것입니까? 아니면 목사가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 설교한다고 하니까 목사 체면을 생각해서 들어주는 것입니까? 우리는 말씀대로 살기 위해, 말씀 앞에서 결단하기 위해 듣습니다. 말씀의 씨앗을 받아 내 마음 밭에 품어 싹을 틔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농부는 겨우내 굳은 땅을 갈아엎습니다. 이게 가장 힘이 드는 일입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어 토양을 부드럽게 하고 거름을 뿌려 옥토로 만든 다음에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래야 수확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도 ‘마음의 밭을 갈아엎으라’고 했습니다. 


이제 봄입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엽시다. 굳은 마음을 다 갈아엎읍시다. 그래서 올해 우리는 최소 30배에서 100배의 결실을 얻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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