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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부활의 진수
설교본문 고전 15:51-58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4-01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401m.mp3



20180401m 부활주일

고전 15:51-58

부활의 진수


(고전 15:51-58, 개정)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여러분의 가정마다 부활의 새 기운이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의 진수를 말하는 바울의 위대한 부활 논문이자 부활의 대서사시입니다. 51절 상반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당연히 부활의 비밀입니다. 비밀이란 말이 정수, 진수, 숨겨진 진실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부활의 숨겨진 진실을 공개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실로 위대한 선언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이지만, 부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기원은 성탄절이 아니라 부활절입니다. 성탄절은 다른 종교에도 다 있습니다. 우리는 12월 25일, 불교는 4월 초파일, 유교는 9월 28일입니다. 그러나 부활절은 오직 기독교에만 있습니다. 부활절은 기독교의 전유물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기독교의 시작이고 마지막 날 성도의 부활이 기독교의 끝입니다. 부활로 시작해서 부활로 끝납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부활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주님이 아니어도 죽었다 살아난 사람은 성경에 여럿 있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있고, 나흘 만에 살아난 나사로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도 모두 부활한 것입니까? 성경이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한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 같은 이들의 살아남을 부활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회생, 소생한 것입니다. 부생입니다. 


부활은 무엇입니까? 51절을 다시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마지막 나팔은 이 세상 종말을 고하는 천사들의 최후의 나팔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알리는 나팔입니다. 천사의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됩니다. 변화가 부활의 핵심입니다. 이어지는 52절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우리가 살다 죽으면 육신이 썩어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훗날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부활하면 그때는 썩지 않는 신비한 몸인 부활체로 변화됩니다. 53절입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더는 썩지 않고 죽지 않는 신비한 몸으로 홀연히 변화되는 사건이 부활입니다. 


부활은 죽은 사람에게만 해당할까요? 산 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을까요? 본문 52절을 다시 보십시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여기서 바울이 말씀하는 우리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세상 종말을 우리가 죽었을 때 맞을 수도 있지만 살아 있을 때 만날 수도 있습니다. 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대로, 산 자들은 산 자들대로 변화되는 것이 부활입니다.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죽은 자나 산 자 모두 신비한 영의 몸인 부활체로 홀연히 변화되는 사건이 부활의 진수입니다. 


부활체는 어떤 것입니까? 54절을 보십시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이것이 부활체의 비밀입니다. 우리는 늙고 죽고 썩는 것을 허무해하며 두려워합니다. 부활의 몸으로 변하면 더는 늙거나 죽거나 썩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사로나 야이로의 딸이나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부활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다시 살아났으나 부활체로 변화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일정기간 살다가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본래의 몸, 모친 마리아의 태에서 가져 나온 자연의 몸이 아닌 신비한 몸으로 되살아 나셨습니다. 주님만 그렇게 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보다 먼저 죽었다가 되살아난 사람이 있었음에도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주님은 영으로 천국 가신 것이 아닙니다. 부활의 몸으로 천국 가셨습니다. 지금도 부활체로 천국에 계십니다. 


그러면 부활에서 변화가 왜 핵심일까요? 우리가 부활 이후에는 영생해야 합니다. 지금의 육체로는 영원히 살지 못합니다. 우리의 육체는 그저 100년 남짓 사용할 수 있습니다. 부활을 통해 영원히 썩지 않는 몸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마치 곤충이 탈피하여 새로운 몸으로 변화하듯이 말입니다. 부활의 세계에서 영원히 살려면 그 환경에 맞는 부활체가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부활을 통해 갈아입을 신령한 몸이란 무엇일까요? 바울은 이것을 꽃과 꽃씨에 비유합니다. 꽃씨는 모두 작고 초라합니다. 그런데 땅에 심겨 꽃을 피우면 아름답게 변신합니다. 지금 우리의 몸과 훗날 부활체의 몸도 그런 변화를 겪습니다. 배추벌레가 나비가 되듯 부활은 우리 몸을 아름답고 신비롭고 온전하고 완전하게 변화시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 이하입니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꽃씨처럼 볼품없는 육의 몸을 심어 꽃처럼 아름답게 영의 몸으로 변화하는 것이 부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때는 누구나 완전하고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새로워집니다. 그때는 키 작은 사람도 장애인도 없습니다. 성형도 필요 없고, 뱃살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두 최상의 모습,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오죽하면 주님은 모두 천사 같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매장한 사람이든 화장한 사람이든 모두 새로운 몸으로 부활합니다. 그 때는 우리의 병든 마음도, 혼미한 정신도, 뒤틀린 정서도, 왜곡된 세계관도 다 변합니다. 인간 관계, 국가 관계, 인종 관계 모두 변합니다. 물론 의식의 연속성은 있습니다. 상대가 내 남편, 아내, 자식이었다는 것을 다 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더는 지금과 같은 인간적 정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중심으로 모두 한 가족 한 형제로 만납니다. 어떤 분은 부활한 후에도 지금의 남편이나 아내를 만날까봐, 빚쟁이를 만날까봐, 배신했던 사람을 만날까봐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우리가 모두 아름다운 관계로 변하기에 누구도 무섭지 않고 피할 일이 없습니다. 주님은 부활 때 시집 장가 안 가고 하늘의 천사처럼 산다고 하셨습니다. 각종 관계가 모두 새롭게 재편되는 것이 부활의 세계입니다. 


2000년 전의 주님의 부활사건이 오늘 내게 과연 어떤 실존적 의미를 줍니까? 우리가 왜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까요? 주님의 부활이야말로 내 부활의 진정한 담보, 보증, 확증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과수원을 하는 분은 첫 열매를 기대합니다. 첫 열매가 달리면 앞으로 계속 열매를 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우리 부활의 길을 여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나팔이 울리기만 하면 우리도 주님처럼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절입니다. 다시 한 번 부활에 대한 깊은 확신을 갖고 부활의 산 소망으로 승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