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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하늘과 땅 사이에서
설교본문 요 19:23-30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3-25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325m.mp3

20180325m 종려주일

요 19:23-30

하늘과 땅 사이에서


(요 19:23-30, 개정) [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주님은 고난주간 금요일 아침 6시 경에 빌라도로부터 십자가형을 선고 받습니다. 당일 오전 9시에 못 박히신 후 6시간 동안 고난당하시다 오후 3시에 운명하십니다. 왜 십자가가 인류가 고안한 사형방식 가운데 가장 잔인할까요? 절대 빨리 죽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형이 끔찍한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자는 끝까지 죽음의 고통을 느끼며 서서히 죽어가기에 사형방식 가운데 가장 비인도적입니다. 예를 들어 총살이나 참수형, 전기 충격이나 교수형 등은 몇 초 만에 죽습니다. 십자가형은 최악의 고통을 최대한 오래 당하다 죽게 합니다. 보통 10시간에서 15시간에 걸쳐 죽어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죄수의 가족들이 빨리 죽게 해달라고 형 집행관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나마 주님은 6시간이어서 빨리 돌아가신 겁니다. 


그 시간 동안 주님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비명과도 같은 일곱 마디의 말씀을 남깁니다. 이것을 우리는 가상칠언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주님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화해를 청하시며 남기신 탄원입니다. 


제1언은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눅 23:46)’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십자가 아래에서 주님의 옷을 서로 가지려고 제비뽑기를 하는 인간들의 몽매함을 보고 드린 사죄의 기도입니다. 어떻게 이런 기도가 가능할까요? 주님은 인생들의 무지와 몽매함에 연민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그들이 알았다면 어찌 그렇게 했겠습니까? 그들은 어리석고 몰라서 그랬을 겁니다. 주님처럼 우리도 남에 대해 연민을 느껴야 합니다.


제2언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자기를 기억해 달라는 예수님의 한쪽 편 강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는 숨넘어가기 직전에 회개하여 막차를 타고 천국 간 경우입니다. 우리는 이 강도를 부러워합니다. 우리는 제 마음대로 살다가 강도처럼 죽기 전에 회개하고 천국 가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강도는 턱걸이로 구원을 받았지만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는 이 땅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기에 성경이 말씀하는 부끄러운 구원의 전형입니다. 그는 구원은 받았으나 천국에서 누릴 영화가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이 사건에서 확인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택한 백성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에라도 기어이 회개시켜 천국에 데려가신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살인자라도 숨넘어가기 직전에 그 영혼을 챙기십니다. 우리는 실제 이런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생 예수 믿지 않고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사람 가운데도 실은 마지막 순간 회개하고 천국 간 사람이 없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주님의 한 편 강도 같은 경우에도 성경에 기록되었으니 알고 있지 기록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겁니다. 주님과 그 당사자만 압니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이 강도처럼 마지막에라도 회개시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으로 살기를 실패해도 하나님께는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이라도 그로 하여금 깨닫고 회개하게 하여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제3언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고 한 말씀입니다. 주님이 어머니 마리아를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이때부터 요한은 마리아를 자기 어머니로 섬기며 어디든 모시고 다녔습니다. 요한이 말년에 소아시아 에베소에서 목회할 때 거기도 마리아를 모시고 갔습니다. 아직도 에베소에 마리아 성지가 많습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실한 사랑입니다. 주님은 사회적 약자들을 끔찍이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세리들, 창녀들, 가난한 사람들, 중환자들, 옥에 갇힌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이 사랑하신 사람들을 우리도 사랑할 수 있어야 우리의 사랑이 위선이 되지 않습니다. 


제4언은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입니다. 이것은 왜 나를 심판하셨느냐는 뜻입니다. 주님은 제자들로부터도 버림을 받았지만 하나님께로부터도 철저히 버림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겟세마네에서 피땀으로 기도하셨던 것도 단지 육체적 고통이 두려워서 만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버림, 저주를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죄 없는 의인으로 돌아가셨습니까? 흉악한 죄인으로 돌아가셨습니까? 주님은 유사 이래 둘도 없는 그런 흉악한 죄인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죄인이 죽으면 지옥 갑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만 천국 갑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사흘 동안 지옥에 가셨습니다. 주님의 영혼이 구천을 떠돈 것이 아닙니다. 지옥에서 우리가 당해야 했던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오랜 전통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교회는 주님이 지옥에 가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원래 사도신경에는 있는 내용인데 그 부분을 빼버렸습니다. 스위스 바젤대학에 오스카 쿨만이라는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주님이 지옥가시지 않았다면 우리가 반드시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육신만 십자가에 달리고, 그 영혼은 지옥에 가지 않았다면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은 반쪽짜리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 우리 대신 죽으셨고, 우리 대신 지옥의 고통을 사흘간 당하셨습니다. 죗값으로 말하면 전 인류가 영원히 받을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몸값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지옥의 형벌을 사흘만 받는 것으로 족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 이하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 이것은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가르침입니다. 주님이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하면서 두려워했던 것은 지옥의 형벌 때문입니다. 


제5언은 ‘내가 목마르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6시간 동안 물과 피를 다 흘리셨기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타는 목마름도 우리의 기갈을 대신한 것입니다. 지옥은 최악의 목마름이 영원히 지속되는 곳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불구덩이에서 부자가 천국의 아브라함에게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한 방울만 떨어뜨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물 한 방울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만큼 물 한 방울이 간절한 곳이 지옥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지옥의 목마름을 당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 대신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신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를 보장 받은 사람들입니다. 


제6언은 ‘다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간 구원 프로젝트를 다 이루셨다는 선언입니다. 주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다 당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관철하셨습니다. 그렇게 당신 한 분이 그렇게 당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당신의 사랑도 영원히 성취하셨습니다. 십자가가 수직과 수평으로 교차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교차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과 지혜를 성취하신 사건입니다. 


제7언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합니다’입니다. 여러분, 주님뿐만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우리 생애 최후에 이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음 앞에서 자기 영혼을 부탁할 아버지가 없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우주의 고아입니다. 나그네로 사는 내가 돌아갈 아버지 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아버지 집,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어서 돌아갈 아버지 품, 아버지 집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신앙의 선진들이 이 기도를 드리고 죽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있고 아버지 집, 품이 있지만 평소에 아버지 뜻대로 살지 못한 사람은 이 기도를 드리기가 거북할 것입니다. 주님은 죽음을 앞에 놓고도 자기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을 찾은 분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아버지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게 죽음 앞에서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부디 사는 동안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서 죽음 앞에서 자신 영혼을 아버지께 의탁하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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