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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쓴 물을 만나다
설교본문 출 15:22-26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3-11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311m.mp3

20180311m

출 15:22-26

쓴 물을 만나다


(출 15:22-26, 개정)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출애굽기 14장은 내용이 홍해 도하입니다. 출애굽기 15장은 노래입니다. 1-18절까지는 모세의 노래이고, 19-21절은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들은 당연히 홍해 건넌 구원과 기쁨, 그리고 승리의 노래입니다. 바로가 마지막 장자 재앙에서 굴복해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허용합니다만, 막상 그들이 떠나자 전차 군단을 풀어 그들을 추격합니다. 이스라엘의 앞은 홍해입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절체절명의 순간인데,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홍해를 가르십니다. 하나님은 애굽 군대를 이스라엘의 눈앞에서 완벽히 수장하십니다. 출애굽기 14장 27절 이하입니다. “[27]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28]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이스라엘은 그 현장에서 이 모습을 다 보았으니 얼마나 통쾌했겠습니까! 그래서 출애굽기 15장 21절까지는 승리의 기쁨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런데 22절부터는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22절 이하입니다.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기적처럼 홍해를 건너고, 애굽 군대가 수장될 때는 좋았는데, 이스라엘은 그 홍해를 떠난 지 불과 사흘만에 물이 없어 극심한 고통을 당합니다. 그들은 천신만고 끝에 마라에서 물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그 물이 너무 썼습니다. 염분이 너무 많아 짜다 못해 약처럼 쓴 물이 된 것입니다. 마라는 쓰다는 뜻입니다. 룻기 21장을 보면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이제 자기를 마라라 부르라고 합니다. 각주를 보면, 나오미는 기쁨, 희락이고 마라는 괴로움입니다. 불과 사흘 전만 해도 홍해 도하라는 기적을 체험하고 나오미의 노래를 불렀는데, 지금은 마라에서 쓴 물을 만나 백성들이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옛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여정이었고, 우리의 세상살이입니다. 홍해도 마라도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입니다. 하나님이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해 오셨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그들에게 홍해의 감격을 더 누리게 하지 않고 불과 사흘 만에 마라의 쓴 물을 만나게 하셨을까요?


여러분이나 주변에 이스라엘의 처지와 같은 분들 안 계십니까? 홍해에서 개가를 부른 게 엊그제 같은데 마라에서 쓴 물을 만나 절망하고 계신 분 안 계십니까? 살다보면 누구나 좋은 날도 있지만 마라의 쓴 물을 만나기도 합니다. 주님도 마지막 겟세마네에서 당신이 받을 쓴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주님도 쓴 물을 만난 겁니다. 그러면 마라의 쓴 물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마라의 쓴 물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본문 25절 하반절입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이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고 뒤쫓던 애굽 군대가 수장당할 때 뿐만 아니라 쓴 물을 만났을 때도 여전히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신뢰하는지를 하나님이 시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쓴 물을 통해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평안할 때는 드러나지 않지만, 아픔과 쓴 물을 마실 때에는 그 사람의 진상이 드러납니다. 누구나 일이 잘 풀리고, 싸움에서 승리할 때는 기뻐합니다. 하지만 사흘 길을 가도 물이 없을 때, 혹은 겨우 찾은 샘물이 쓴 물일 때는 그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낯색이 변하고 온갖 원망과 원성을 다 쏟아냅니다. 이스라엘이 바로 그랬습니다. 24절입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원망했다는 뜻입니다. 마라의 진정한 의미가 하나님의 시험이라고 했는데, 이로써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다가 마라를 만날 때 조심하십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추한 인간성을 드러내며 자신의 불신앙을 있는 대로 폭로할 것이 아니라, 끝까지 인내하며 주님처럼 내 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바라는 기도를 하십시다. 그래야만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만큼 위험한 발상도 없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없던 문제도 새롭게 생깁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그런 일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시려고 그런 시험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은 번번이 그 시험에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사흘 전 홍해 앞에서도 모세를 원망하며 갖은 악을 다 썼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1절 이하입니다.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우리는 각종 일반 시험도 잘 봐야 하지만 하나님의 시험도 잘 통과해야 합니다. 특히 마라의 쓴 물 시험을 잘 통과해야 복 됩니다. 하나님의 시험을 잘 통과하면 그분의 큰 은혜를 입습니다.


마라의 쓴 물은 하나님의 놀라운 계시입니다. 어떤 계시입니까? 본문 26절 하반절입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치료하는 여호와로 계시한 사건이 마라의 쓴 물입니다. 치료하는 여호와는 히브리말로 ‘여호와 라파’입니다. 마라의 쓴 물은 이를 드러내기 위한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쓴 물 때문에 난리도 아닙니다. 백성들이 당장에 어떻게 할 기세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은 한 나무를 지시하셨습니다. 그 나무를 쓴 물에 던지라고 처방하셨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했더니 그 쓴 물이 단물로 변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하신 말씀이 26절 하반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이니라’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당신이 치료하는 하나님이란 사실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쓴 물을 단물로, 맹물을 포도주로, 괴로움을 기쁨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치료하는 여호와, 의원이신 여호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도 정서도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민족도 다 고치십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무엇으로 그렇게 고치십니까?


25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이것이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이 세상 모든 나무가 아니라 하나님이 특정하신 한 나무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처방이 무엇입니까? 베드로전서 2장 24절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하나님이 가리킨 한 나무는 주님이 골고다에서 달리신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이 특정하신 나무, 십자가가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켰습니다. 십자가가 바로 고치고 살리고 새롭게 하는 한 나무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주님의 수난 기사를 보면, 주님의 십자가 주변에는 온통 마리아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5절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마태복은 27장 55절 이하입니다. “ [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이렇게 십자가 주변에는 온통 마리아 뿐입니다. 사실 예수님 시대에 마리아는 흔한 이름입니다. 당시 주님 십자가 주변에 온통 마리아인 것은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마리아는 대단히 고상한 것 같지만, 뜻밖에도 마리아가 마라입니다. 마라의 파생어가 마리아입니다. 마라 한복판에 주님의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이 얼마나 계시적인 의미입니까! 그 옛날 모세가 마라의 쓴 물에 하나님이 가리킨 한 나무를 던진 형국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십자가가 우리의 답입니다. 십자가가 유일한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이 특정하신 한 나무입니다. 부디 사순절에 하나님이 가리키신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합시다. 쓴 물로 고통을 겪는 우리의 가슴에 가정에 그것을 던지십시다. 그래서 단물로 변화되고 새롭고 건강하게 치유함을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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