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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고난의 계절
설교본문 마 4:1-11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2-18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218m.mp3

20180218m 

마 4:1-11

고난의 계절


(마 4:1-11, 개정)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매년 사순절 첫째주일에는 오늘 본문으로 설교하는 게 개신교의 오랜 전통입니다. 부활절 전 고난기간이 왜 굳이 40일일까요? 그것은 주님의 40일간의 광야 고행을 그 기원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순절 첫째주일에는 늘 주님의 40일간의 금식기도와 마귀에게 당한 시험의 의미를 되새기는 게 교회의 오랜 전통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은 동양권에서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주님이 마귀에게 당한 시험을 다른 말로 하면 유혹을 당하셨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세 번씩입니다. 주님이 마귀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는 것은 어쨌든 마음이 흔들렸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의문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어떻게 주님 같은 분이 마귀에게 유혹을 당하실 수 있을까 하는 겁니다. 공자님은 논어에서 불혹(不惑)이라고 했습니다. 더는 유혹을 받지 않는 나이인데 40세면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당시 주님은 아직 40이 아니어서 수양이 부족해 유혹을 받으셨습니까? 공자님에 따르면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어디에도 불혹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 순간까지 유혹에 시달립니다. 과제가 크면 클수록 그 유혹도 그만큼 큽니다. 주님은 처음 공생애를 시작할 때도 마귀의 유혹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앞두고도 유혹에 시달립니다. 겟세마네에서 주님이 처절하게 기도하며 이 고난의 잔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피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 겁니다. 당시 주님이 당한 유혹을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은 세 가지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주님뿐만 아니라 우리도 겪고 당하는 가장 보편적인 유혹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와 똑같이 당하면서도 가장 모범적이고 성공적으로 이기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그 시험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첫 시험은 돌을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입니다. 주님은 완전한 하나님이면서 완전한 사람이었기에 배고프고 목마른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이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했습니다. 이것은 말이 필요 없는 한계상황입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마귀는 주님을 시험합니다. 마귀는 당연히 떡으로 유혹합니다. 안 그래도 광야에 널린 돌멩이가 떡으로 보이는데 그 돌을 떡이 되게 하라고 유혹합니다. 마귀의 말을 보십시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주님은 돌이 떡이 되게 해서 주린 배도 채우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떡은 가장 절실한 생존의 조건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보란 듯이 돌로 떡을 만들어 주린 배도 채우고, 보란 듯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면 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4절에서 정답을 제시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마귀는 떡 제일주의, 물질지상주의, 맘몬이즘을 강요합니다. 이것이 이 시험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세웁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떡으로 우리를 미혹합니다. 떡이면 다 된다고 합니다. 떡만 있으면 누구나 최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현대인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 버린 에서의 후예들입니다. 우리는 팥죽 한 그릇이면 양심도 신앙도 하나님도 팔아버릴 태세가 되어 있습니다. 짐승에게는 떡만 있으면 됩니다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떡만 필요한 육체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필요로 하는 영혼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어떻습니까? 모두 떡에만 미쳐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돌로 떡을 만듭니까? 그럼에도 보십시오. 우리 사회의 온갖 불법, 편법, 투기, 뇌물, 비자금 등은 모두 돌로 떡을 만들자는 반칙이요 억지입니다. 우리는 자기 먹을 것을 잔뜩 쌓아 놓고도 그렇게 하는데 주님은 40일을 굶으시고도 떡으로만 이라는 마귀의 유혹을 칼처럼 물리치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평생 뼈에 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두 번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입니다. 5절 이하입니다. “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이것은 정신적인 시험, 명예심, 허영심, 영웅심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도 얼마나 교활한 시험인지 모릅니다. 주님은 지금 공생애를 앞두고 계십니다. 만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는데도 털끝 하나 상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주님 앞으로 몰려왔겠습니까! 그러니까 한 방에 사람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을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번 역시도 그 절호의 기회를 단호히 물리치십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일은 굉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하는 불경한 일입니다. 뛰어내려서 죽으면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살면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표가 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회의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물리치신 것입니다. 


어떤 신앙 좋은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사랑하는 사람임을 증명하겠다고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이 네 믿음이 좋다고 하시며 살려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절대 그런 사람의 장난이나 영웅심, 허세에 놀아나지 않습니다. 번지 점프를 하면 살아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파트 꼭대기에 올라가 뛰어내리면 백이면 백 다 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공명심 따위를 챙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사람들은 주님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내려와 보라고 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당장 내려왔을 법도 한데 주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자 죄입니다. 누가 자꾸만 나를 사랑하냐며 시험만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랑이 오래 가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고 완전한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자꾸만 그 사랑을 시험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며 단 칼에 물리치신 것입니다. 


세 번째는 가장 치명적인 시험입니다. 8절 이하입니다. “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것은 돌로 떡을 만들라는 물질적 시험이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정신적 시험을 뛰어넘는 하나님을 배반하라는 영적 시험입니다. 그 시험의 고도를 보십시오. 땅에서 성전 꼭대기, 저 높은 산입니다. 이것은 유혹의 강도와 정도를 뜻합니다. 마지막 시험도 눈앞에 펼쳐진 모든 영화와 부귀가 한 번에 내 것이 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얼마나 식은 죽 먹기 시험인지 모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 절 한 번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분만 섬겨야 한다고 하십니다. 주님께는 하나님만 경배의 대상입니다. 주님은 떡 시험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만 내세우셨는데, 마지막 시험에서도 하나님만을 내세우십니다. 우리가 툭하면 왜 마귀의 시험에 넘어갈까요? 하나님만 이라는 절대가 약하고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주님처럼 하나님만 이라는 절대를 놓치지 맙시다. 이것이 흔들리면 모든 게 다 무너집니다. 마귀의 유혹에는 백신이나 면역이 없습니다. 그 유혹은 날마다 순간마다 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약하나 주님은 이 세 가지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주님처럼 우리도 이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부디 갈수록 더 교활해지는 마귀의 물질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 유혹을 주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만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으로 승리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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