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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여기서 겨울을 지내자
설교본문 행 27:9-32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2-11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211m.mp3

20180211m

행 27:9-32


(행 27:9-32, 개정)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12]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14]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27]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28] 물을 재어 보니 스무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29]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니라 [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 [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 이에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예루살렘에서 전격 체포된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대목입니다. 바울은 아시는 대로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로마 시민권자였기에 황제에게 직접 재판 받을 항소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지만 그곳 로마 총독에게 재판을 받지 않고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호송 당하던 중입니다. 바울이 왜 굳이 황제가 주재하는 로마대법정에 항소했을까요? 어떤 식으로든 로마 심장까지 들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때가 주후 59년 겨울입니다. 당시 바울이 탄 배는 이집트 국적의 알렉산드리아호였습니다. 그 배는 유람선이 아니라 이집트에서 생산되는 밀이나 보리를 수송하던 상선이었습니다. 죄수 호송관인 백부장이 그 배편을 이용해 바울을 로마까지 호송하려고 했던 겁니다. 당시 그 배에는 276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오직 바울은 죄수였습니다. 그러니 당시 그 배의 사람들이 바울을 보며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그들은 바울의 비참한 최후를 예상하며 측은하게 봤을 겁니다. 


알렉산드리아호가 지금의 크레타 섬의 미항(칼루스 리메나스)에 정박했을 때, 바울이 호송관인 백부장과 선장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0절입니다.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바울은 항해를 계속하지 말고 여기서 겨울을 나자고 합니다. 바닷길의 전문가인 선장이나 뱃사람들이 있는데, 그 배로 호송당하던 죄수가 거기서 겨울을 나자고 합니다. 얼마나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었겠습니까? 사람들은 바울이 탈출하려고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사람들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다고 합니다. 12절입니다.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바울이 왜 거기서 겨울을 나자고 했을까요? 바울의 영적 통찰력 때문입니다. 화물이나 배뿐 아니라 사람의 생명까지도 위태로울 수 있다고 한 걸 보면 틀임없이 주님의 계시가 있었을 겁니다. 24절입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니 미항에서도 분명 주님의 계시가 있었을 겁니다. 주님도 어부 출신은 아니셨지만 때로는 어부들을 향해 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대로 했더니 그물이 찢어지거나 두 배에 가득 차도록 고기를 많이 잡았다고 했습니다. 대개 주님의 종이 권고를 하면 잘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바울의 말보다 선장이나 선주의 말을 들은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잠시 순항을 했습니다. 13절입니다.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크레타 섬 앞바다에서 유라굴로라는 초대형 태풍을 만난 겁니다. 유라굴로는 주로 겨울에 지중해에서 발생하는 단어 뜻 그대로 미친 바람입니다. 18절 이하입니다.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이때 바울이 다시 나섭니다. 21절 하반절입니다.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바로 이 대목에서 그 알렉산드리아호의 운명이 전적으로 바울의 손으로 넘어갑니다. 그 최후의 순간에 자유인들은 다 떨며 절망하고 있는데, 그 배의 유일한 죄수인 바울 만큼은 홀로 담대합니다. 22절 이하입니다. “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4절에서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누가 누구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까? 알렉산드리아호에 탄 모든 사람이 바울 때문에 목숨을 건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그 배에서 가장 초라하고, 다 끝난 인생인 죄수였습니다만, 이제는 그 배의 유일한 생명줄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역할이자 존재의 이유입니다. 주님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든지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한 공동체의 운명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달렸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비웃습니다. 요즘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무슨 발언권이 있습니까? 그야말로 알렉산드리아호에 타고 있던 바울 같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우리를 향해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네게 다 주었다고 하십니다. 275명의 운명이 다 네 손에 달렸다고 하십니다. 벤허가 노예가 되어 로마 군함 밑창에서 죽도록 노를 젓습니다. 그러나 그 배가 격침 되고 맙니다. 벤허가 사령관 아리우스 제독을 널빤지에 태웁니다. 아리우스는 몇 번이나 자결하려 하지만 벤허가 막습니다. 극적으로 그들은 아군을 만나 구출됩니다. 사령관이 묻습니다. 전쟁은 어떻게 되었는가? 승리했다는 말을 들은 사령관이 벤허에게 물 한 바가지를 떠주며 ‘네가 믿는 하나님이 너를 구하기 위해 우리 로마군에게 승리를 안겨주었구나!’라고 하며 끼고 있던 반지를 벤허에게 줍니다. 벤허는 아리우스의 양자가 됩니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운명이 달렸습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시대 대한민국의 운명을 책임져야 합니다. 긍정하든 부정하든지 이것은 사실이고 진리입니다. 주님이 역사의 주인이신 한, 이것은 운명적입니다. 알렉산드리아호의 경우를 보십시오. 바울이 비록 쇠고랑을 차고 있지만, 바울을 보고서 그 배의 사람들을 살리십니다. 


이제 바울이 처방을 내립니다.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31절입니다.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누구든 배에 있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겁니다. 절대 배를 떠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것이 당시 바울이 내린 구원의 처방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32절 말씀을 보면 아예 거룻줄을 끊어 아무도 그 배에서 탈출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세상 풍파가 아무리 험하다 해도 배를 떠나면 안 됩니다. 배가 무엇입니까? 배는 언제나 교회를 상징합니다. 이 시대 구원의 방주는 교회입니다. 극심하고 혹독한 환난에도 불구하고, 유라굴로에도 불구하고, 절대 배에서 탈출하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배에서 떠나면 안 됩니다. 이것은 태풍 속에서 바울이 엄중하게 받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요즘 교회마다 초비상입니다. 사람들이 배를 자꾸만 떠나려고 합니다. 멀미가 나더라도 배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노아의 가족이 방주에 있지 않았으면 절대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과 같습니다. 


당시 노아의 방주는 그게 유일한 구원의 배였음에도 환경은 결코 쾌적하지 않았습니다. 그 큰 배에 창이라고는 하늘로 난 창 하나 있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럼에도 노아의 가족은 그 배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견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배에 타지 않았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수장 당했습니다. 우리는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여러 날 여러 해 칠흑 같은 어둠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구원의 여망을 잃고 배에서 탈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살까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이 시대의 운명이 달렸음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배를 떠나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배 안의 사정이 좋지 않고, 오히려 최악입니다. 그럼에도 그 배가 구원의 방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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