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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양은 오른편 염소는 왼편
설교본문 마 25:31-46
설교자 조성노 목사
설교일자 2018-01-28
설교듣기 http://file.ssenhosting.com/data1/thegreen/20180128m.mp3

20180128m

마 25:31-46

양은 오른편 염소는 왼편


(마 25:31-46, 개정)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주님의 유명한 양과 염소 비유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비유라기보다 마지막 심판에 관한 주님의 예언입니다. 이런 그림으로 마지막 심판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최후심판을 팔레스틴 목자들의 일상적인 목자들의 양식에 빗대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 시대 팔레스틴 목자들은 양과 염소를 함께 방목했다고 합니다. 낮에는 양과 염소를 함께 풀을 뜯게 하지만, 밤에는 둘을 구분해서 우리에 넣었다고 합니다. 양은 털이 많아 탁 트인 우리를 좋아하고, 염소는 바람막이가 잘 되는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재워야 탈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에서 주님은 마지막 심판의 모형을 보신 것입니다. 낮에는 모든 족속이 뒤섞여 지내지만, 해가 저물어 심판의 때가 오면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리하듯 모든 인류를 칼처럼 양쪽으로 가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기막힌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양과 염소는 털부터 대비됩니다. 양은 하얀데 염소는 까맣습니다. 흰색은 의로움, 순결, 속죄, 구원을 상징하나, 검은색은 죄, 진노, 저주를 상징합니다. 역사의 최후에는 흰 양과 검은 염소를 구분하듯 인류를 그렇게 양분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모든 민족과 개인이 주님 앞에 불려갑니다. 거기서 양과 염소처럼 심판주의 오른편과 왼편으로 철저히 구분당합니다. 이것이 최후심판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심판과 분리가 복음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마태복음 3장 12절입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3장 30절입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13장 49절 이하입니다.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오늘 본문 34절과 41절도 보십시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알곡은 천국으로 쭉정이는 영원한 불에 들어간다는 게 마태복음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본문에서 가장 주목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심판주가 오른편의 의인과 왼편의 악인을 구분하고, 주인이 알곡과 쭉정이를 양쪽으로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35절 이하에 나옵니다. 양으로 분류된 오른편 사람들은 주님이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염소로 분류된 왼편 사람들은 주님이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오른편 사람들은 주님이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고, 왼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른편 사람들은 주님이 나그네 되고, 헐벗고, 아플 때, 옥에 갇혔을 때 주님을 챙겼지만, 왼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양과 염소를 가르는 기준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모두가 자선이고 봉사고 구제요 선행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구분 짓는 척도가 윤리고 도덕입니다. 이것은 유교입니다. 이것은 모두 율법이고 유대교입니다. 복음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윤리나 도덕, 행위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의인과 악인을 가르는 잣대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정말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잣대입니까? 선행을 하면 누구나 천국 간다는 이야기가 본문의 내용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도덕이나 윤리를 설명하고 계신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본문을 그렇게 해석하시면 곡해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진정한 의미는 마지막 심판 때 양으로 분류되고 의인으로 분류되어 심판주 오른편에 서게 될 사람들은 평소에 주린 사람들, 나그네들, 병든 사람들, 나그네를, 옥에 갇힌 자들을 돌보며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 때 악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평소에 선행이나 자선하지 않고 비정하게 이기적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은 누구도 선행하고 자선하고 구제해서 양이 되고 의인이 되어 심판주 오른편에 서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누구도 선행을 하지 않아서 염소로 분류되고 악인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염소와 양은 운명적입니다. 태생적입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하얀 양으로, 태어날 때부터 까만 양으로 태어납니다. 선하게 살면 양이 염소 되고, 염소가 양이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남을 구제하고 동정하고 자선하며 착하게 살아야 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양은 처음부터 하얀 양으로 태어나 양답게 구제하고 자선하며 동정하고 배려하며 삽니다. 염소는 처음부터 새까맣게 태어나 염소답게 악하게 삽니다. 사과나무를 보십시오. 사과가 사과나무를 만듭니까? 사과나무가 사과를 만듭니까?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습니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는 것입니다. 나무가 그 열매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무의 정체성입니다. 사과나무는 처음부터 사과나무였습니다. 사과가 열리기 전에도 사과나무였다는 것입니다. 때가 되어 사과를 맺음으로써 사과나무임을 확증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양은 양으로 태어나고, 염소는 염소로 태어난 것입니다.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이 우리를 양으로 알곡으로 의인으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사과나무가 때가 되면 열매를 맺듯이, 양이 양다운 모습으로 살 듯 의인도 이 세상을 살며 의인답게 선을 행하며 의롭게 삽니다. 의롭게 살아서 의인되는 게 아닙니다. 의인으로 태어났기에 의로운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어서 구원을 얻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믿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믿고 싶어서 하나님을 믿습니까?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강제하셔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믿음이 강제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달아나도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 선행, 자선 등등은 열매이지 전제가 아닙니다. 의로움의 열매가 열려서 의인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로 이 부분에 대한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양이 되고 염소가 되는 것은 나의 선행이나 내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자선이나 구제 등은 내가 양이 되는 데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34절입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나는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심판주 오른편에 서는 것이지 내 선행이나 헌신이 나를 양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자선, 헌신, 희생에 대한 상급이 아닙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요 양으로 택하셔서 주시기로 예비한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 나라를 상속 받으라고 합니다. 종에게는 상속이란 게 없습니다. 종은 아무리 잘 나도 칭찬은 받아도 상속은 없습니다. 아들은 제아무리 못나도 상속을 받습니다. 천국은 상속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천국을 상속합니다. 


그러면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다 양으로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창세 전에 하나님의 선택을 입고 예정을 받은 것입니다. 본문은 양들이 세상을 살 때 자선과 구제와 선행을 행하며 살면서 자신이 선한 양임을 증거하며 산다고 합니다.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으며 자신이 사과나무임을 확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의인은 의의 열매로 자신이 의인임을 확증하며 삽니다. 그러면 이것이 사실입니까? 우리는 누가 뭐라 해도 양이고 알곡이며 의인입니다. 그러면 양처럼 깨끗하게 자선하고 구제하면서 의인처럼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상 우리의 문제요 모순입니다. 새까만 염소들이 악하게 살 듯 양이면 양답게 깨끗하게 살아야 하는데 현실은 거의 그렇지 못하다는 것 말입니다. 사과나무면 당연히 탐스러운 사과를 맺어야 하는데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더라는 겁니다. 


주님이 오늘 본문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도 바로 이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서입니다. 사과를 못 맺는다고 해서 사과나무가 더 이상 아닌 것은 아닙니다. 다만 열매를 못 맺는 사과나무는 유명무실한 사과나무일 뿐입니다. 주인에게 아무 도움이 못 되고 애물단지인 사과나무입니다. 비참한 사과나무, 부끄러운 사과나무입니다. 그렇다고 의인이 악인 되고, 양이 염소 됩니까? 그런 법은 없습니다. 양이 염소처럼 굴어도 양은 양입니다. 다만 염소 같은 양일뿐입니다. 의인이 의인답게 살지 못하고 악인처럼 산다고 해도 의인이 악인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악인 같은 의인입니다. 못난 의인입니다. 천덕꾸러기 의인입니다. 반대로 착하게 사는 염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 안 믿는데 오히려 믿는 사람보다 훨씬 착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염소가 착하게 산다고 의인 되는 법도 없습니다. 마치 양 같은 염소일 뿐입니다. 종은 종이고, 아들은 아들입니다. 아들이 아들답지 못하면 주님께 말할 수 없는 민폐가 됩니다. 사과나무가 사과를 못 맺으면 농부가 좌절하듯 우리가 악하게 살면 우리를 당신 백성이요 자녀로 택하신 하나님이 우울해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들은 희생과 헌신과 봉사하며 살아야 옳다는 것입니다. 최후심판 때 주님 우편에 설 의인들은 의인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비유가 우리에게 깨달음과 결단의 메시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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